★ 수호지(水湖誌) - 103
제11장 흑선풍 이규
제42편 기령산의 죽음 42-3
조태공이 술대접을 하려고 했지만 이운은 사양하고 결박당한 이규를 앞세워 그곳을 떠났다.
일행이 산길을 넘었을 때 주부가 나타났다.
“사부님, 뵈온 지 오랩니다. 흑선풍을 관가로 잡아간다는 말을 듣고 약간의 소찬을 마련해 왔습니다. 시장할 테니 한 잔 드시고 가십시오.”
그가 술병을 들어 큰 잔에 가득 부어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주귀가 쟁반에 고기를 받쳐 들고 하인이 과일 그릇을 올렸다.
이운은 제자의 정성을 생각해서 황망히 말에서 내렸다.
“이럴 일이 아닌데 자넬 괜히 번거롭게 했구먼.”
주부가 간곡히 권하자 그는 거절할 수가 없어 술 한 잔과 고기 두어 점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관군들도 모두 한 잔씩 마시게 되었다.
관군들은 술이 들어가자 모두들 입을 딱 벌리면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운도 ‘속았구나’하는 순간 자신도 머리가 아찔해지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쓰러져 버린다.
그때 결박당해 있던 이규가 큰 소리를 한 번 지르며 용을 쓰자 묶였던 밧줄이 툭 끊어져 버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이운에게 달려들어 목을 치려고 했다.
“안 됩니다. 이 분은 제 사부님입니다. 어서 빨리 도망갑시다.”
그러나 이규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바빠도 조가 놈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이규는 그 길로 달려가 조태공을 한 칼에 죽이고, 가짜 이규의 계집과 이장의 목숨을 끊어 놓았다.
피를 보면 미치는 흑선풍 이규였다.
그는 사람을 죽이자 흡사 신들린 듯 사냥꾼과 관군들을 모조리 죽이고 돌아왔다.
“우리 사부님을 이대로 버려두고 어찌 가겠소? 군사가 모두 죽고 죄인을 놓쳤으니 우리 사부님께서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오. 형님은 이 두령하고 먼저 가시오. 나는 사부가 깨어나면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가자고 권해 보겠소.”
주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 도두가 깨어나서 네게 분풀이를 하려 들면 큰일이니 이 두령은 여기 남아 있고, 나만 먼저 십리 패로 가 보겠다.”
그들은 간밤에 짐을 말끔히 꾸려 수레에 싣고 주부의 처자를 먼저 출발시켜 십리 패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주귀가 그 곳을 떠난 후에 이운은 정신이 들었다.
그는 원래 술을 한 잔만 마셨기 때문에 일찍 깨어났던 것이다.
그는 주부와 이규를 보자 분노가 솟구쳐 곁에 있는 칼을 들고 이규에게 달려들었다.
이규도 칼을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싸워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 주부가 칼을 들고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들며 외쳤다.
“사부님, 잠시 멈추시고 제발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두 사람이 모두 손을 멈추자 그는 이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가 사부님 은혜를 저버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 형님이 양산박에서 송공명의 명령을 받고 이 두령을 보호하러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터에 이 두령이 사부님께 잡혀가게 되었으니 제 형님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생각하다 못해 그런 일을 꾸미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또 이 두령을 놓치셨으니 오직 살 길은 사부님께서도 저희와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가시는 길입니다. 사부님 의향은 어떠신지요?”
제자의 말을 듣고 보니 이운 역시 갈 길이 없었다.
더구나 송공명의 명성을 알고 있던 그는 길게 한숨을 쉰 뒤 처자도 없는 몸이라 마침내 이규와 주부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네 사람은 함께 십리 패로 가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부의 처자들과 수레를 끌고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양산박에 가까이 오자 산채의 두령들이 모두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다음 날 네 명의 호걸들은 송강 이하 여러 두령과 만났다.
“이분은 기수현 도두 이운이고 이쪽은 제 아우 주부입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흑선풍 이규는 송강 앞에 나가 그동안 겪은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그러자 오용이 나서서 말했다.
“근래에 우리 산채에 이렇게 영웅호걸들이 구름처럼 모이니 이것은 조 두령과 송 두령 두 분의 덕망이 큰 탓입니다. 이것은 여러 형제들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소이다.
이제 우리 산채의 세력이 워낙 커져서 예전 같지 않으니 다시 산남(山南), 산서(山西), 산북(山北) 세 곳에도 주점을 내서 길흉사정(吉凶事情)을 탐지하고, 의로운 자들을 산에서 받아들이는 한편 조정에서 혹시 관군들을 보내 조사하는 일이 있다면 곧 대채에 보고하여 그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조개와 송강 이하 여러 두령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인다.
곧 오용은 여러 두령들에게 일을 분담시켰다.
- 104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