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01 편

2024. 11. 26. 08:08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01

제11장 흑선풍 이규

제42편 기령산의 죽음 42-1

이규가 고향 집 동점에 이르자 날은 이미 저물어 황혼 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염불을 하다가 놀라 일어났다.

“어머니, 철우(鐵牛)가 왔어요!”
“얘야, 넌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지냈느냐! 네 형은 밤낮 남의 집에 가서 날품팔이 하느라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나는 자나 깨나 네 생각에 눈물로 날을 보내다가 이렇게 두 눈이 멀어버렸다.”
이규는 눈물을 흘리며 거짓말을 했다.

“전 지금 관원이 되어 먼 고을로 벼슬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러 왔어요.”
“그래? 너무 좋구나. 하지만 내가 이처럼 늙고 눈까지 멀었으니 어떻게 널 따라가겠느냐?”
“제가 어머니를 업고 가다가 수레를 빌려 태워 가겠습니다.”
“그럼 네 형이 오거든 의논하자.”
“그럴 필요 없어요. 어머니와 나만 가면 됩니다.”
이규가 형이 돌아오기 전에 집을 떠나려고 할 때 마침 공교롭게 형 이달이 밥 한 사발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형님, 못 뵈온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이규를 보자 욕을 퍼부었다.
이규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노모가 말했다.

“네 아우가 벼슬길에 올라 나를 데리러 왔단다.”
그 말을 듣자 이달은 펄쩍 뛰었다.

“어머니, 저놈 말을 믿어요? 저놈이 집 나갈 때도 남과 시비 끝에 사람을 때려죽이고 도망가서 나만 관가에 잡혀가 온갖 곤욕을 다 치르지 않았어요.
한데 저놈이 요즘에는 양산박 도둑놈들하고 함께 어우러져 강주에서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도둑 괴수가 되었습니다.
전에 강주에서 이놈을 잡아 바치라는 공문이 와서 제가 대신 잡혀서 들어가게 된 것을 내가 일하는 주인댁 양반이 관원에게 돈을 주고 간신히 모면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관가에서는 각처에 벽보를 붙여 3천 관 상금을 걸고 이놈을 잡으려는 판입니다.
네 이놈. 어디 가서 죽으려면 혼자서나 죽을 일이지 집에는 왜 또 와서 못살게 구느냐?”
이규는 그 말을 듣고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형님, 화 내지 마시오. 이번 기회에 아예 형님도 함께 산으로 가서 어머니 모시고 편히 살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달은 더욱 성이 나서 이규에게 달려들다가 홀연히 손에 들고 있던 밥사발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규는 평상에 돈을 내놓고 노모를 들쳐 업고 지름길로 달아났다.
한편 이달이 주인집으로 달려가 사정 얘기를 하고 10여 명의 장객을 거느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규와 노모는 보이지 않고 평상 위에는 돈 보따리만 보였다.
그 무렵 이규는 노모를 업고 산속으로 들어가 걸음을 재촉하여 기령산에 도착했다.

“철우야, 목이 마르다. 어디서 물 좀 가져오너라.”
그는 노모를 바위에 앉혀 놓고 물을 구하려 골짜기를 더듬어 내려갔다.

거기에는 옥같이 맑은 물이 바위틈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물을 담을 그릇이 없었다.

그가 서쪽을 보니 멀리 산 위에 암자가 하나 보였다.
이규는 깎아 세운 듯한 벼랑길을 따라 칡넝쿨에 매달려 간신히 기어 올라갔다.

암자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사주대성사당(泗州大聖祠堂)이었다.
눈 앞에 돌 향로가 보였다.

이규는 그것을 집어 들려고 했으나 향로는 돌에 붙박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규는 사당의 대좌를 번쩍 들어 앞 돌층계에 내리치자 대좌가 깨지며 향로만 손에 남았다.

이규는 향로를 들고 냇가로 내려가 물을 가득 떠 손에 받쳐들고 노모가 있는 바위로 돌아왔다.
그러나 노모는 바위 위에 없고 소나무 아래 큰 청석 위에는 칼 한 자루만 놓여 있을 뿐이다.

“어머니, 물 떠왔어요.”
이규는 소리를 질렀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어머니의 종적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바위에서 삼십 여 걸음쯤 떨어진 풀밭에 피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규는 크게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핏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이윽고 앞에는 큰 굴이 앞을 막아섰는데 호랑이 새끼 두 마리가 노모의 다리를 핥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이규는 기가 탁 막혔다.

‘내가 오직 어머니를 모실 욕심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놈의 호랑이 좋은 일만 했단 말이냐? 저게 과연 우리 어머니 다리란 말인가? 어머니 다리란 말인가?’
그는 머리끝에 피가 솟구치고 머리털이 하늘로 치솟았다.

- 102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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