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7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4편 황니강 탈취 사건 14-2
그때 도관이 나서서 말했다.
“여보게, 당신도 사람이면 털끝만큼이라도 인정이 있을 거 아니오? 저 사람들이 어디 꾀피우느라 저럽니까, 오죽 힘들면 저러겠소?”
“허허, 기막히군.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하시오?”
바로 그때 소나무 숲 사이로 웬 사내가 고개를 쑥 내밀고 살피는 기색이 보였다.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넌 웬 놈이냐?”
양지는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박도를 잡고 쫓아갔다.
숲 속에 들어가니 웃통을 벗은 장정 7명이 7채의 수레 옆에 앉아서 쉬다가 양지가 칼을 휘두르며 뛰어들자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놈들, 너희는 대체 뭣 하는 놈들이냐?”
“우리는 동경으로 가는 대추장수다. 그러는 너희들이야말로 뭣 하는 놈들이냐?”
“우리도 동경까지 가는 장사꾼이오.”
“노형들도 동경까지 간다니 동행합시다. 우리가 대추나 좀 드릴까요?”
“그만두시오.”
일행이 다시 행군을 시작하여 얼마쯤 갔을 때 어깨에 술통을 메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관군들이 술을 사 마시려 하자 양지가 말렸다.
“이놈들아! 길 가다 흔히들 땀 흘리는 독약 탄 술을 먹고 죽었다는 말 못 들었느냐?”
그 말에 술장수는 양지를 보고 비웃었다.
“이 양반아! 내가 언제 노형들한테 억지로 술 팔아 달랬수?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소릴 다 듣네. 개 눈깔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도적으로 보이는 모양이군.”
“뭣이라고?”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형세가 험악해지자 곁에 있던 대추장수들이 제각기 칼을 들고 뛰어나오다가 술을 보더니 우르르 술을 사 마신다.
술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안 관군들이 자기들도 한 잔씩 마시겠다고 덤볐으나 술장수는 관군들에게는 팔지 않았다.
“몽환약 탄 술 마시고 죽으면 내가 살인죄로 걸려드는데, 왜 내가 당신들에게 술을 팔겠소. 난 당신들한테는 못 팔아요.”
술장수가 버티자 관군들이 거의 빌다시피 해서 겨우 술 한통을 사 가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군관께서도 한 잔 하시죠.”
부하들이 말했으나 양지는 사양했다.
“어서 너희들이나 먹어라.”
“그러지 마시고 한 잔 드십쇼.”
양지도 더위를 견디기 힘든데다가 무엇보다 갈증이 심해서 마침내 반잔을 마시게 되었다.
순 두통을 다 판 술장수는 빈 통을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졌다.
그때 대추장수 일곱 명은 소나무 그늘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양지의 일행 열다섯 명을 손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어서 낮잠들을 자거라. 어서 쓰러져 자라구.”
그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술을 마신 양지의 일행은 모두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대추장수 무리는 곧 수레들을 밀고 나와 관군들이 메고 왔던 금은보화를 옮겨 싣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바로 조개, 오용, 공손승, 유당 그리고 원가 삼형제의 일곱 명이었고, 술장수로 가장한 사람은 안락촌에 사는 백승이었다.
모두가 오용이 꾸며낸 계략이었다.
얼마 후에 양지가 깨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예물들은 간 곳이 없고, 주위에는 오직 대추들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 관군들의 코고는 소리만 요란했다.
양지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분했다.
도대체 동경에 갈 예물들이 모두 털렸으니 무슨 낯짝으로 상공을 다시 볼 것인가!
“오늘의 이 치욕은 훗날 깨끗이 씻으리라. 우선 달리 살길을 찾아보기로 하자.”
양지는 마음을 굳게 다잡아먹고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이경이 지나서야 깨어난 도관과 관군들은 죄를 모면할 도리가 없자, 모든 죄를 양지에게 씌우기로 하고 북경으로 되돌아갔다.
- 28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