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6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4편 황니강 탈취 사건 14-1
그때 북경 대명부에서는 양중서와 채 부인이 후당에 마주 앉아 예물 보낼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10만 관의 생일 선물을 동경까지 무사히 가져가느냐이었다.
그때 채 부인이 섬돌 아래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어때요?”
양중서는 채 부인이 가리키는 양지를 바라보았다.
그처럼 적격자는 없었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양지를 불렀다.
“내가 너를 잊고 있었구나. 이번 생신 행차에 네가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
“은상의 분부시라면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상공의 생신 선물을 어떻게 보내시려는지 알고 싶습니다.”
“마련이 다 되어 있느니라. 태평 거 열 채에 예물을 나누어 싣기로 했는데, 수레마다 <태사 생신축하>라고 쓴 노란 기를 꽂고 군사 한 명씩 수레 뒤를 따르게 하겠다. 모레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여라.”
양지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일은 아무래도 소인이 감당키 어려울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소인이 듣기로는 작년에도 예물을 올려 보내시다가 도중에 도적을 만나 모두 강탈당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경까지는 수로가 없고 오직 길이 하나뿐인데, 그 가운데 자금산, 이룡산, 도화산, 산개산, 황니강, 백사오, 야운도, 적송림 등지는 모두 도적들이 출몰하는 유명한 곳 들입니다.
만약 금은보화가 통과한다는 소문이 나면 저들이 곱게 보낼 까닭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관군을 넉넉히 줄 테니 나서겠느냐?”
“관군들이란 정작 도적의 무리들과 만나면 앞을 다투어 도망하기만 골몰하는데, 1만 명을 거느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 말을 들으면 갈 수가 없겠구나.”
양중서의 이마에 주름살이 굵어지자 양지가 조용히 대답한다.
“은상께서 만약 제 어리석은 생각을 따르신다면 비록 소인이 재주는 없지만 이번 소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네게 맡긴 터에 어찌 네 말을 안 듣겠느냐, 어서 네 생각을 말해 보아라.”
“소인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예물을 그저 보통 나그네가 돈을 꾸려가지고 가는 것 같은 행색으로 꾸미고, 군사들 10명도 예사 짐꾼들처럼 꾸며서 각기 한 짐씩 지고 가게 한다면 비로소 길이 무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 말이 그럴듯하다. 어서 그대로 행하여라.”
양지는 곧 특별히 가려낸 열 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예물을 꾸리고 출발했다.
양지는 갓을 쓰고, 몸에 푸른 견직물 적삼을 입고, 허리에 전대를 차고 나섰다.
때는 5월 중순, 날은 맑았으나 심한 더위로 고생이 극심했다.
양지는 새벽 서늘한 시간에 길을 떠나고 한낮의 불볕더위에는 쉬었지만 북경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자 차츰 인가가 적어지고 행인이 드문 산길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관군들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걷기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관군들은 그늘만 나타나면 짐을 부리고 쉬기 때문에 양지는 계속 재촉을 해야 했고, 말을 안 들으면 채찍을 들기도 했다.
그러자 일행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북경을 떠난 지 보름이 되는 6월 초나흘, 일행은 마침내 황니강에 도착했다.
험한 산과 좁은 산길을 더듬어 20여 리, 해는 한낮이었고, 구름도 없이 햇빛만 이글이글 타올라 세상은 흡사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날개를 접고 숲속 깊이 그늘을 찾아드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랴.
일행이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고개 위의 나무 그늘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황니강으로 가는 도중 가장 악명 높은 도적떼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므로 쉬어서는 안 되는 지역이었다.
“일어나거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쉬려는 거냐?”
양지가 채찍을 들고 외쳤으나 관군들은 꼼짝도 안 했다.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못 가겠소.”
군사들은 땅에 쓰러진 채 꼼짝 안 했다.
양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채찍을 어지럽게 쳤으나 한 놈을 일으켜 놓으면 한 놈이 쓰러지고 또 한 놈을 일으키면 또 한 놈이 쓰러져 도리가 없었다.
- 2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