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志) - 8
제1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4편 취련 4-2
정도가 노여움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큰 식칼을 집어 드는 것을 보자 노달은 곧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 들었으나 감히 나서 말리는 자는 없었다.
정도는 식칼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와 노달을 잡았다.
노달은 발로 정도의 배를 차서 쓰러뜨리고 발로 가슴을 밟았다.
“네놈이 고관대작이라면 모르지만 돼지 멱이나 따는 백정 주제에 불쌍한 취련이를 어찌 못살게 굴었더란 말이냐?”
노달이 억센 주먹으로 코, 허리를 내리치자 코가 납작 붙어버리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정도는 버둥거렸지만 노달의 다리가 천 근인데다 손에 들었던 식칼도 이미 놓친 후였다.
노달은 다시 정도의 미간을 쥐어박았다.
이마가 깨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노달이 무서워 감히 말리지 못했다.
정도는 더 배겨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잘못했소. 살려주시오.”
세 번째 주먹이 정도의 정수리에 떨어지자 그는 사지를 쭉 뻗고 말았다.
노달은 그가 주먹 세 방에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튼 그대로 있다가 붙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노달은 즉시 행낭을 꾸려 여섯 자 길이 몽둥이를 들고 그대로 남문을 향해 달아났다.
부윤(府尹, 지방의 최고 행정관)은 곧 각처에 살인범 노달을 잡는 자에게 1천 관의 현상금을 주겠다는 벽보를 내걸었다.
노달은 황망히 위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 당한 일이라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달포가 지나서야 마침내 대주 땅 안문현(雁文縣)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문현 성내로 들어갔으나 거기도 안전한 곳은 못 되었다.
거리에는 벽보가 붙어 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노달은 일자무식이어서 벽보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그 벽보가 1천 관의 현상금이 붙은 노달 체포령이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 크게 놀랐다.
그런 와중에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장대가(張大哥)아니오? 여긴 어떻게 오셨소?"
누가 등 뒤에서 팔을 덥석 잡았다.
노달이 소스라치게 놀라자 그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팔소매를 휘어잡아 길 건너로 끌어냈다.
노달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보니 그는 뜻밖에도 취련의 아버지 김 노인이었다.
“나으리, 담대하셔도 분수가 있지. 나으리 잡으라는 벽보 앞에 그렇게 태평하게 서 계시다니 말이 됩니까? 도대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날 영감과 헤어진 후 장원교 다리로 가서 정도 놈을 때려죽이고 그길로 곧장 도망가는 길이오. 영감이야말로 동경에 가지 않고 여긴 웬일이오?”
“생각을 바꾸었습죠. 다행히 예전에 이웃에 살던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 소개로 딸년이 조원외(趙員外)라는 이 곳 갑부의 소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녀는 지금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다 나으리 덕분입니다. 아무튼 우선 우리 집에 갑시다.”
김 노인의 집에 가자 취련이 황망히 안에서 달려 나와 반갑게 노달을 맞이하여 다락 위로 안내했다.
잠시 후에 젊은 계집종이 상에 먹을 것을 가득 차려왔다.
노달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취련의 영감 조원외가 들어왔다.
조원외는 노달을 극진히 대접했다.
이미 취련에게서 노달에 대한 말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성내에는 남의 이목이 많다는 이유로 성 밖의 칠보촌에 있는 자기 별장에 편히 숨어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노달이 숨어 산다는 소문이 관가에 쫙 돌았다.
조원외는 할 수 없이 노달에게 안심하고 숨어살 수 있는 도피처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오대산 문수원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저희가 조상 때부터 다니던 절인데, 주지승인 지진장로(智眞長老)와는 각별한 사이라 제 청이면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가하셔서 스님이 되시는 길이 숨어사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달은 그 수밖에는 달리 좋은 도리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리라 마음을 정했다.
- 9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