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0편

2024. 7. 12. 07:55수호지


★ 수호지(水湖志) - 10

제1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5편 하산 5-2

노지심은 대장장이 말대로 값을 치른 후에 술집에 갔다.
주막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탁자를 두드렸으나 주인은 못내 어려운 낯빛을 하며 말했다.

“우린 주지스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습니다. 스님께 술을 팔면 장사를 못하게 되니 이해해 주십시오.”
“이거 원, 별소리를 다 듣는군. 싫으면 그만둬라. 술집이 여기 밖에 없는 줄 아느냐?”
그러나 다른 집도 술을 안 팔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너 집을 들렀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노지심은 마침내 꾀를 내어 다음에 들어간 술집에서는 주인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나는 여기저기 떠도는 중이오. 여긴 처음인데 술 한 잔 주시오.”
“오대산 스님이면 안 되는뎁쇼.”
“아닙니다.”
술집 주인은 마침내 노지심에게 속아 술을 내놓았다.

노지심은 개고기를 안주 삼아 잠깐 사이에 술 두 통을 다 마셔 버렸다.
그는 먹다 남긴 개다리 하나를 소매 속에 넣고 말했다.

“술값 남은 건 내일 또 와서 먹을 테니까 거스름은 놔두시오.”
그때서야 술집 주인은 그가 오대산 중인 줄을 알고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노지심은 단숨에 산을 뛰어올라가 정자 앞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잠시 쉬는 동안 점차 술기운이 오르면서 몸이 무거워졌다.

“내가 요즘 힘을 안 썼더니 몸이 무거워졌군.”
그는 생각난 듯 한마디 중얼거리고 나서 정자 기둥을 두 손으로 잡고 어깨를 대고 힘껏 밀어보았다.

그가 세 번째 힘을 쓰자 기둥이 한편으로 쏠리면서 정자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때 산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정자 무너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살펴보다가 노지심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질겁했다.

“어서 문을 닫자, 안으로 들여보냈다가는 또 큰일 나겠네.”
그들은 부리나케 절문의 빗장을 굳게 질러버렸다.

“문 열어라. 문 열어!”
노지심은 주먹으로 문짝을 두드렸다.

그는 문을 두드리다 말고 문득 고개를 돌려 좌편에 서 있는 금강신장(金剛神將)을 보고 크게 소리 질렀다.

“네 이놈! 주먹을 들고 나를 노려보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아느냐?”
노지심은 그대로 달려들어 창살을 하나 뽑아 들고 금강의 넓적다리를 마구 치고, 이번에는 우측에 있는 금강신장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금강 조각상은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노지심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다시 산문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문을 안 열면 절에 불을 질러버린다.”
문지기는 할 수 없이 슬그머니 빗장을 빼놓고 멀리 물러서서 동정을 살폈다.

그것도 모르고 노지심은 다시 한번 힘을 다하여 온몸으로 문에 부딪치다가 문이 활짝 열리는 바람에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즉시 일어나 선불장으로 뛰어 들어가 마룻바닥에 한바탕 토사물을 쏟아버렸다.
악취가 진동하자 수좌승, 감사, 도사들이 또 주지승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지심이 놈이 술에 취해 정자를 무너뜨리고 금강상을 쓰러뜨렸으며, 선불장 바닥에 토사물을 쏟아 냈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러나 장로는 놀라지 않는다.

“자고로 천자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하신다고 했다. 낸들 어쩌는 수가 있겠나?
정자와 금강상이 부서졌다면 나중에 조원외더러 새로 해 달래야겠구나.“
“금강은 산문의 주인입니다.”
“금강이 아니라 전상(殿上)의 불존을 부숴도 어쩔 수가 없다. 녀석이 하는 대로 그냥 두고 보자.”
장로는 도무지 노지심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찰의 사무원과 승려들이며 노랑, 화공, 직청, 교부 수백 명을 상대로 노지심이 몽둥이를 휘둘러 사람을 친다는 말을 들은 주지승은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마침내 법당 밖으로 나와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었다.

“네 이놈~~ 지심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러느냐?”
그때 술이 거의 깬 노지심은 장로를 보자 황망히 그 앞에 엎드린다.

“우리 오대산 문수보살 도령은 천백 년 동안 청정향화(淸淨香火)를 받들어 온 곳이다. 너 같은 놈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가 없구나! 다른 곳으로 보내야겠구나.”
노지심은 용서를 빌었으나 장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날 동경 대상국사의 주지 지청선사에게 편지를 써서 노지심에게 주고 그의 평생을 점쳐 주었다.

遇林而起 우림이기 (숲을 만나면 일어나고)
遇山而富 우산이부 (산을 만나 풍부해지며)
遇州而遷 우주이천 (고을을 만나면 옮기고)
遇江而止 우강이지 (강을 만나면 멈추리라)

“너는 숲을 만나면 일어나고, 산을 만나면 풍부해지고, 물을 만나면 흥하고, 강을 만나면 멈추어야 하느니라.”
노지심은 네 구(句)의 계언을 받고, 아홉 번 장로께 고개를 숙여 하직을 고한 다음 마침내 행장을 수습하여 하산하고 말았다.
그로써 말썽 많던 노지심의 산사 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 11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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