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84)

2022. 7. 3. 07:00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84)

발 없는 말[言]의 위력

 

사마의와의 지략 대결에서 승리한 공명은 기산으로 돌아와 훗날을 위하여 군사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성 안 팎에서 모두가 제 할일에 열심인 와중에 군량미를 그득하게 실은 마차가 드디어 성 안으로 들어왔다.

군량이 높이 쌓여 있는 첫 번째 마차에는 군량만 실린 것이 아니었다.





영안성(永安城)에 있는 이엄(李嚴)의 명령으로 군량 전달의 임무를 맡은 도위(都尉) 구안(苟安)이라는 자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마차가 성 안에 진입한 줄도 모르고 군량 위에서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져있다.

뒷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사마의 군의 뒷 모습을 보며 아쉬워 했던 상장군 강유가 그 꼬락서니를 보고는 구안의 멱살을 움켜쥐고 마차 아래로 패대기치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대체 뭐 하는 자냐! 왜 이제야 온 것이냐! 너 때문에 중요한 기회를 날려 버렸다!"

아직도 술인지 잠인지가 덜 깬 구안은 어리벙벙해서는 사지 분간을 못하고,

"네가 누군데 야단이냐! 당장 나를 승상께 안내하여라!"

하고, 강유에게 오히려 호통을 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강유는 구안의 면상을 후려 갈겼다. 그리고

"네가 무슨 염치가 있어서 승상을 뵙겠다는 것이냐! 이 천하의 무쓸모한 놈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구안을 끌어다 공명 앞에 대령하였다.





제갈량은 강유에게 두드려 맞아 코피가 흐르는 얼굴로 꿇어 앉아 있는 구안에게 엄중하게 묻는다.

"구안, 군량을 옮기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리 늦게 도착한 것이냐?"





구안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위수에서 큰 싸움이 있다고 하여 혹시나 적에게 군량을 빼앗길까 두려워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무너진 곳이 많아서 더 지체되었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구안의 말을 듣고 서있는 위연, 강유, 왕평 등 여러 장군의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명 또한,

"군량을 운반하는 것도 전쟁의 일부일진데 적군이 무서워 숨어 있었다고? 게다가 내가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줄 아느냐! 어디 얕은 수를 쓰려 하느냐! 술을 마시느라 늦었겠지! 술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한다! 당장 저 놈을 끌어다 참형에 처하라!"

하고, 분연히 화를 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제발...!"

목숨을 구걸하는 구안을 군사들이 끌고 나갔다.

그때, 장사 양의(長史 楊儀)가 들어와서 참형을 지시한 공명을 말렸다.

"승상, 구안은 상서령 이엄의 조카입니다. 지금 구안을 죽여 버리면 이엄이 어떤 나쁜 마음을 먹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옵니다. 그러하니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주심이 어떨지요."





공명은 인상을 쓴다. 그리고는,

"그렇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반성하라는 의미로 곤장 여든 대를 때려라."

하고, 형을 감해주었다.

공명의 명으로 구안은 형 집행을 위해 끌려나갔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강유가 공명 앞에 나섰다.





"승상, 저 녀석 때문에 우리 군은 좋은 기회를 날렸습니다. 그런데 왜 구안을 살려 두십니까? 철저히 군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강유의 말에 공명은 강유의 심정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구안은 이엄의 심복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 자를 죽이면 앞으로 무서워서 누가 군량 운반의 책임을 맡으려고 하겠느냐."

공명의 명령에는 다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공명의 아량으로 목숨을 건진 구안은 고마워하기는 커녕 두고보자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 길로 위군 진영으로 찾아가 사마의에게 항복을 한다.







사마의는 눈 앞에 있는 구안을 향해 쓱 눈길을 한 번 주고는, 시덥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묻는다.

"넌 누군데 곤장을 맞고 여기에 와 있느냐?"

사마의의 물음에 구안은 물만난 고기처럼 사마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공명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사마의는 구미가 당기는 듯, 돌렸던 고개를 다시 구안으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너의 말을 믿지 못 하겠다면? 제갈양은 워낙 꾀바른 사람이라 널 믿지 못하겠다."

하였다. 그러자 구안은,

"저를 믿으실 수 있도록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사마의는 구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구안에게 명을 하나 내렸다.



구안이 사마의를 찾아가고 며칠 후, 촉의 성도(城都)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져가기 시작하였다.

그 소문은 황궁(皇宮) 안까지 스며들어가 후주의 귀에까지 닿게 되었다.

‘공명이 제위를 찬탈하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후주의 근심과 막연한 두려움은 깊어져만 갔다.





후주는 선황(先皇: 유비)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아들이 부족하거든 자네가 나라를 맡아 주게.’ 하던 아버지의 말씀에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던 공명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려 하였으나 거듭 생각할 수록 불안한 마음은 커져갔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환관들은,

"폐하, 공명을 불러들이셔야 합니다.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성도로 불러 들여 병권(兵權)을 삭탈함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하고, 말하며 불안으로 인하여 불타고 있는 후주의 마음에 기름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그리하여 결국 후주는 공명에게 성도로 돌아오라는 조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공명은 책상 앞에 앉아 황제가 보낸 조서를 찬찬히 읽어 내려 간다.

그 앞에서는 강유가 초조하게 서성인다.





"폐하께서는 육손이 십 오만 대군을 이끌고 왔는데 이를 막을 사람이 없으니 나를 돌아오라 하시는구나."

하고, 제갈량이 강유에게 조서의 내용을 말해준다.

강유는 조서의 내용을 듣자마자,

"동오가 우리를 침범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공명에게 물었다.

"동오의 침범은 구실일뿐이고, 실은 나를 부르시려는 것이겠지."

하고, 공명은 말한다.

강유는,

"승상, 이제 우리는 군량이 충분하고 주도권이 아군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훈련도 완벽하게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승상이 자리를 비우신다니요? 이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고, 흥분하여 말한다.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누군가의 계략에 당하고 있는 것 같다.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그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 하는 수가 없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공명은 결국 회군을 결정하였다.

공명의 회군령에 강유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공명에게 묻는다.

"승상, 우리가 돌아갈 때 사마의가 우리 뒤를 추격해오면 어쩝니까?"

공명은 씩 웃고는,

"걱정할 것 없다. 우리가 다섯 갈래로 나누어 회군을 하되, 후방에 군사 일천씩을 남겨라. 그리고 후방 군이 후퇴할 때 첫째 날은 밥 짓는 구덩이를 이천 인분을 파고, 둘째 날은 삼천 인분, 그 다음날부터는 사천 인분을 파도록 해라."

하고, 명령하였다.

과연 사마의는 늘어나고 있는 밥 구덩이 수에 놀라 촉군의 매복이 두려워 감히 추격해오지 못했다.



공명이 성도로 회군하여 곧 후주 앞에 섰다.





공명은 후주에게,

"폐하, 신이 기산을 점령하였고, 곧이어 장안까지 치고 올라가고자 하였는데 어인 일로 신을 다시 불러들이셨습니까?"

하고, 아뢴다.

후주는 두리번 거리며 대답할 말을 찾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해맑은 표정으로,

"짐이 승상을 만난지 오래라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래간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고, 싱겁기가 그지 없는 답을 하는 것이었다. 육손이 쳐들어온다는 조서의 내용은 물론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제의 밝은 표정과는 달리 공명의 표정이 심각하다.

공명은 후주에게,

"삼십 만 대군이 기산까지 가려면 얼마나 힘든지, 군량은 또 얼마나 많이 드는지, 폐하께서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군사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또한 잘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는 간신배들의 참소(讒訴)에 신을 부르신 것이 아니옵니까? 신은 선제로부터 크디 큰 은혜를 입어 그 은혜를 목숨으로써 갚고자 애쓰고 있사옵니다. 신이 만약 다른 뜻을 품고 있다면 어찌 자나깨나 역적의 무리를 퇴치하고자 힘쓰겠사옵니까?"

하고, 거의 울먹이며 충심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공명의 말을 들은 후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승상,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뜬 소문을 믿고 아버지와 같은 승상을 불러들인 것은 제 실수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어전에서 물러나온 공명은 곧 소문의 시작을 찾기 위해 진상을 조사하였다.

그리하여 소문의 주동자로 찾아낸 것은 공명이 내심 예상했던 자, 구안이었다.

그는 이미 위나라로 달아나고 없었다.

공명은,

‘이 나라가 사마의의 작은 이간책에 속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마음이 유약한 후주의 옆에서 불안한 마음에 부채질을 했던 환관들을 잡아다가 처벌하고, 장완(藏碗)과 비위(費褘)를 불러서 엄하게 꾸짖었다.

"그대들까지 환관들의 주둥아리에 놀아났으니 어쩐단 말이오? 내가 나라의 일을 그대들에게 모두 믿고 맡기었는데... 이제 누구를 믿고 대사를 도모하겠느냐 말이오."

공명 앞에 불려 나온 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잘못을 빈다.



공명에게는 아직 할 일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갈 길이 바빴다.

급히 후주에게 하직의 인사를 올리고 다시 한중(漢中)으로 돌아갔다.

한중으로 돌아간 공명은 군사를 재정비하고, 이엄(李嚴)에게 군량을 실어오라 부탁하였다.

이때, 참군(參軍) 양의(楊儀)가 공명에게 군사를 운영할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 군은 이미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군사들이 많이 지쳐 있습니다. 군사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은 기산으로 보내어 적에게 대비하도록 하고, 한 쪽은 한중에 머물게 하고, 이 둘을 백 일마다 교대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군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늘 병사들을 살피는 공명은 양의의 말이 옳다고 여겨져서,

"좋은 생각이다. 기산에 오래 주둔하면 적지 않게 피로하겠지. 군사들을 둘로 나누어 백 일마다 교대하게 하라. 그리고 이를 어기는 자는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

하고, 명령하였다.

이때가 촉의 건흥 구년(九年)이었다.



공명이 기산에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 위나라에 전해지자, 위 황제 조예와 사마의는 공명의 소식 하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조예는 사마의를 불러 말한다.

"공명이 다시 나온다는군. 숙부(조진)도 돌아가셨고, 공명을 대적할 자는 경밖에 없네. 짐은 경을 믿으니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해주기 바라네."

이에 사마의는,

"대도독을 대신하여 신이 신명을 다해 역적을 없애어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결전의 의지를 보였다.


조예와 사마의의 만남 이틀 후, 촉군의 침입이 있다는 급보가 사마의에게로 날아들었다.

공명과 사마의의 격돌이 다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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