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5. 19:21ㆍ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86)
말[馬] 대신 노루[獐]
촉병은 공명의 지시에 따라 성밖으로 나가서 위군을 기다렸다. 과연 공명의 말대로 위군은 노성 인근에 영채를 치는 것이 아닌가?
손례(孫禮)가 이끄는 위군의 군사들은 옹주, 양주에서 달려오느라 사람은 물론이요 말조차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전쟁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다.
촉군에게 그것은 큰 기회였다. 위군이 쉬려는 틈을 타서 촉군은 위군의 영채에 기습적으로 돌격한다.
"으악!" "윽!" "켁!"
갑작스럽게 촉군의 공격을 받은 위군은 변변히 힘도 써보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위군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위군의 피가 대지를 적신다. 얼마 남지 않은 위나라의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공명은 손례군을 대파(大破)한 군사들에게 후하게 상을 내렸다.
그런데 문득 영안성(永安城)에서 군수(軍需)를 책임지고 있는 이엄(李嚴)에게서 편지가 왔다.
동오(東吳)가 낙양에 사람을 보내 위와 화친(和親)을 맺으려는 기미가 보입니다. 위는 동오에게 촉을 치라고 부추기는 모양입니다만, 다행히 동오는 아직 군사를 일으킬 마음은 없어보입니다. 허나, 언제라도 그리할 수 있으니 승상께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시길 바라옵니다.
편지를 읽은 공명은 표정이 심각해지고, 생각은 복잡해졌다.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 촉의 명운(命運)이 달린 중대한 일이다. 지금껏 내가 북벌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동오와의 동맹 덕분이었는데 위와 오가 화친을 맺는다면...! 우리의 상황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다를 것이 없구나. 최선이 무엇일까...?'
공명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동오와 위가 동맹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선 우리는 기산을 버리고 한중으로 퇴각할 것이다!"
하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예! 승상!"
동오와의 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촉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장수들은 군소리 없이 공명의 명에 따랐다.
왕평, 장의, 오의, 오반은 병사들을 나누어 서서히 회군을 시작하였다.
공명은 철수를 시작하였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마충과 양의를 부른다. 공명은 두 사람에게,
"만 명의 궁노수를 이끌고 검각의 목문도(木門道) 양 편에 매복해라. 위군이 쫓아오면 내가 포향(砲響)을 쏠테니 그 소리가 들리거든 산에서 바위와 통나무를 굴려라. 돌아갈 길이 막힌 위군은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 활을 쏴서 그들을 물리쳐라."
하고, 비밀스러운 명령을 전달하였다.
마충과 양의가 나가고 공명이 이번에는 위연과 관흥을 불러들였다.
"두 장군은 적이 나타나면 적의 추격을 막도록 하라."
공명은 위연과 관흥에게 후방을 맡겼다.
그리고 모든 군사가 퇴각하여 성이 비었을 때, 성안 곳곳에 마른 풀과 짚을 쌓아 불을 놓도록 지시하였다.
촉군이 퇴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위(魏)의 장합은 사마의를 찾아간다.
장합은 사마의에게,
"대도독! 지금 촉병이 물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요?"
하고, 묻는다.
사마의는 시선을 먼 곳에 두고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제갈양 그 자가 무슨 궤계(詭計)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소. 또 무슨 이상한 계략으로 우릴 농락하려 들지 모르니, 추격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하고, 답하며 장합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마의의 말을 듣고 이번엔 대장 위평(大將 魏平)이 나선다.
"이번이야 말로 적을 칠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의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사마의는 장합과 함께 상규로 나왔다. 나와서 살펴보니 이미 촉군은 빠져나간 듯하고 노성에는 불이 붙어 있다.
사마의는 직접 성으로 가서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피식 웃더니,
"여긴 빈성이다. 제갈양이 정말로 퇴각을 했군."
하고, 군사들에게 말했다.
공명의 꾀에 또다시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던 의심이 사라지자 사마의는 표정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때 장합이 의욕적으로 나서서,
"대도독! 제가 제갈양의 뒤를 쫓겠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사마의의 명을 기다린다.
"공은 성미가 급해 내 마음이 놓이지 않겠소."
사마의의 대답은 장합이 기다리던 것과는 한참 멀었다.
장합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마의에게 따지듯 묻는다.
"대도독은 저를 선봉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제가 선봉장으로써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까?"
"틀림없이 제갈양이 그냥 가지는 않았을 것이오. 매복이 있을 터인데 꼼꼼히 살펴가며 뒤쫓을 수 있겠소?"
신중을 기하는 사마의의 말에 장합의 목소리는 더 드높아진다.
"저도 잘 압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임무를 주십시오!"
장합의 의지에 마침내 사마의의 고집이 꺾였다.
"좋소. 그러면 군사 오천을 줄테니 먼저 나서시오. 위평에게 이만의 군사를 주어 뒤를 보게 하겠소."
"감사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제갈양의 군대를 몰아내겠습니다!"
장합은 이미 승리라도 거둔 사람처럼 기쁜 표정으로 군막을 나섰다.
장합은 오천 군사를 이끌고 촉병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삼십여 리쯤 갔을까, 문득 뒤에서 큰 함성 소리가 들리고 숲 속에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매복해 있던 촉병이었다.
"역적 장합은 어디 가고 있는 것이냐!"
장합이 뒤돌아보니 그는 촉의 명장 위연이다.
장합은 불같은 성미대로 위연을 향해 달려든다.
뛰쳐나오는 장합을 상대로 위연은 두 세합쯤 싸우는 척하다가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꼼꼼히 살피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사마의의 당부는 온데간데가 없이 장합은 여러 생각을 않고 위연의 뒤를 쫓는다. 삼십여 리쯤을 쫓았을 때, 산 속에서 또 다른 촉군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비겁하게 어디를 달아나느냐! 관흥이 여기 있다!"
또 한 번의 매복에 당황한 장합 앞에 나타난 것은 관흥이었다.
장합은 관흥임을 확인하자 기세도 좋게,
"이놈! 네가 관운장의 아들 관흥이로구나! 내가 친히 너를 네 아비 곁으로 보내주겠다!"
하고, 외치며 칼을 휘두른다.
관흥과 장합 두 장수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관흥이 뒤꽁무니를 빼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장합은 위연을 쫓았던 것처럼 부지런히 관흥의 뒤를 쫓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흥이 사라지고 위연이 다시 장합 앞에 나타난다.
장합은,
"내가 두려운 것이냐! 둘이나 달려드는군!"
하고, 기세를 올린다.
위연은 얼마쯤 싸우다가 또 달아난다.
장합은 여지없이 위연을 쫓는다.
사라진 위연 앞에 또 관흥이 나타나서 장합에게 싸움을 건다.
번갈아 나타나서 화를 돋우는 위연과 관흥에게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장합은 싸움을 거듭하며 두 장수를 쫓아갔다.
사마의의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앞뒤 재지 않고 위연과 관흥을 쫓던 장합은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자신과 군사들이 목문도 깊은 산골짜기에 다달아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곳은 적이 매복하기에 딱 좋아보이는 지형이었다.
사태를 파악하고 급히 군사들에게 퇴각을 명하려고 할 때였다.
"쾅!"
포향이 한 차례 울리더니 산등성이에서는 불길이 일고 천하를 뒤흔드는 함성소리와 함께 절벽에서 바위와 통나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위와 나무로 앞길이 막힌 장합은 황급히 군사를 이끌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려고 하였다.
그 순간,
"휘이익-" "휙-!" "휘익- 딱!" 하고 화살이 장합의 군사를 향해 날아든다. 골짜기에 매복한 촉의 화살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날아온다.
조조 시절부터 수많은 전장을 누볐던 백전노장(百戰老將)도 위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살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촉의 날카로운 화살 촉은 상대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였다. 일개 병졸이나 이름깨나 날린 장수나 수많은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와 같은 형상이 된 것은 매한가지였다.
장합이 숨을 거두고 얼마 후, 위병들은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채로 목문도를 찾았다. 골짜기가 막혀 있는 것을 보고 장합의 무리가 이미 공명의 계책에 빠졌음을 직감한 위병은 말머리를 돌려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갈공명이 여기 있다!"
하는 소리가 산 위에서 들려와 돌아가려는 위병의 시선을 잡는다.
위군이 뒤를 돌아 산 위를 올려다보니 공명이 손가락으로 위군을 가리키며,
"내가 오늘 사냥에서 말[馬]을 잡으려 하였는데 오라는 말은 오지 않고 노루만 내게 달려들어 노루[獐]만 한 마리 잡고 말았다.1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줄테니 돌아가서 사마의에게 일러라. 조만간 내가 사로잡으러 갈 터이니 목을 씻고 기다리라고."
위군은 공명의 말에 기가 잔뜩 눌려 급히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목문도에서 있었던 일을 사마의에게 그대로 고해 바친다.
사마의는 장합의 처참한 죽음을 듣고 탄식에 탄식을 거듭했다.
"아... 장합이 전사한 것은 모두 내 탓이다. 공명이 틀림없이 무슨 계책을 쓸 것이라는 것과 장합의 성미가 급한 것을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장합에게 추격을 명했다. 장합이 죽게된 것은 나의 탓이다..."
사마의는 노장 장합의 죽음을 자책하며 군을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장합의 소식을 들은 위주 조예는 지극히 슬퍼하며 장합의 시신을 거두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사마의는 장합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공명의 말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1. 여기서 말은 사마의, 노루는 장합을 칭한다. 사마의는 성에 말 '마(馬)'자가 들어가고, 장합은 성의 '장(張)'자가 '노루 장(獐)'자와 발음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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