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83)

2022. 7. 1. 10:36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83)

공명과 중달, 진법 대결의 승자는?

 
앞 뒤 분간을 할 수 없게 모래 먼지가 날리고 굉음에 가까운 말발굽 소리가 광야를 가득 메운다.

잠시 후 요란했던 말발굽 소리가 그치고 모래 먼지 또한 차츰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드디어 제갈양(字: 공명)과 사마의(字: 중달)는 개미떼만큼 길게 줄지은 군사를 이끌고 전장(戰場)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공명은 늘상 그렇듯 머리에는 단정하게 윤건(綸巾)을 쓰고, 몸에는 학창의(鶴氅衣)를 걸치고, 손에는 우선(羽扇)을 쥔 채로 사륜거(四輪車)에 앉아 적군의 모양새를 차분하게 살핀다.

맞은 편에서 마상(馬上)에 있던 사마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말에서 내린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공명 앞에 선 사마의가 먼저 격식을 갖춘 인사를 건네자 공명도 사륜거 위에서 화답의 인사를 한다.

공명은 어쩐지 인자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머금고 사마의에게 안부를 묻는다.

"중달,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냈는가?"

그리고 이어 은근히 사마의의 속을 긁는 말을 흘린다.

"대도독에 복귀한 것을 축하하네. 내 도움이 없었다면 그대가 다시 대도독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겠지."

공명의 말에 사마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공명의 사륜거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어,

"공명, 남양에서 밭이나 갈아 먹고 있던 주제에 여기까지 나와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군. 조용히 엎드려 지낼 것이지 어찌하여 천명(天命)을 거스르고 군사를 일으키나? 자네가 우매한 건가, 아니면 아두(촉 후주 유선의 아명)가 아둔한 것인가?"

하고, 공명과 촉의 군주를 얕잡는 소리를 하며 맞받아친다.

사마의의 말에 공명은 코웃음을 치며 사륜거에서 몸을 일으켜 사마의의 곁으로 가 앉는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쉬고 입을 뗐다.

"선황(소열제 유비)의 명을 받았으니 충심을 다해 내 할 일을 해야 하겠지. 나는 역적을 토벌하고 말리라는 선황제의 뜻을 이어가고 있을 따름이라네. 나는 그러한데 중달 자네는 가문이 대대로 한(漢)의 녹을 먹고 살았으면서 어찌 역도(逆徒)의 무리에 붙어 있는가? 은공도 모르고 말일세. 하늘이 두렵지 않던가?"

공명은 우선을 매만지며 한마디를 더 보탠다.

"그동안 보아 온 바로는 내가 이 부채를 한 번 휘두르기만 해도 위군은 바람 결에 흩어지더군."

사마의는 공명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웃고는,

"필부(匹夫) 주제에 허장성세(虛張聲勢)가 과하군. 내 충고를 잘 들어보게. 자네와 나, 둘 모두 나이가 쉰이 넘었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수 있겠나? 그러하니 전쟁은 그만두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편안히 보내면 어떻겠나?"

하고, 제안한다.

공명의 입에서는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사마의가 듣기 좋지 않을 소리를 또 던진다.

"자네는 똑똑해. 자신을 잘 알고 있군. 스스로가 나 공명의 적수가 못 된다는 걸 알다니. 그럴 바에야 항복을 하게. 자네가 그렇게 한다고만 하면 내가 사륜차를 내어주고 우리 주군께 자네를 안내하겠네."

사마의는 말싸움으로 공명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공명의 나직하고 침착한 말투 속에 담긴 내용은 하나하나가 사마의의 가슴을 찌르는 것들이었다.

사마의는 모욕적인 말들을 듣고도 태연하게,

"말놀음으로는 결판이 나질 않겠구먼.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위나라는 면적이 촉보다 세 배는 넓지. 대세는 누구겠는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말게. 자네가 이러는 건 일개 개미 한 마리가 아름드리 나무를 쓰러뜨려 보겠다고 나무를 흔드는 격이라네. 싸워봤자라는 것이지."

하고, 공명의 의지를 꺾어보고자 하였다.

이에 공명은,

"결국 끝까지 싸워 보자는 것이군. 싸움에는 세 가지가 있지. 장수(將帥), 군사(軍士), 진법(陣法). 어떤 것으로 겨뤄볼 텐가? 자네가 고르게 해주겠네."

하고, 짐짓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진법으로 하세."

사마의는 짧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먼저 포진을 해보시게. 진영을 갖추는 동안에는 공격을 하지 않을테니."

공명의 말에 사마의는 말없이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여 보이고는 팔 하나를 번쩍 들어 아군을 향해 힘껏 휘저었다.

"와아!"

"워! 워! 워! 워! 워! 워!"

대도독의 명에 위군은 구령을 넣으며 질서정연하게 진을 갖추어간다.

공명은 진지하게 상대측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사마의의 진법은 훌륭하군. 진법에 능통한 자야.’

하고,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내 밑에 있는 일개 병사들조차 다 아는 것이지. 혼원일기진(混元一氣陣)이 아닌가?"

하고 말하며 사마의를 쳐다본다.

사마의는 계속해서 공명의 얼굴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럼 그대도 진법을 펴보이게. 나 또한 그동안 공격을 하지 않겠네."

하고, 말한다.

공명은 몸을 일으켜서 아군을 바라보며 부채를 든 손을 휘둘렀다.

"와!"

"우! 우! 우! 우! 우! 우!"

촉군 측에서도 힘찬 구령에 맞춰 진을 펴보인다.

사마의는 평온한 표정으로 그 모양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을 감고 촉군이 움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양측의 군사가 진을 치느라 요란하게 움직이자 잦아 들었던 모래 먼지가 안개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이 진법을 알겠는가?"

하고, 공명이 사마의를 향해 묻는다.

사마의는 눈을 깜빡이며 뜸을 들이더니,

"기문팔괘진(奇門八卦陣) 아닌가? 난 아홉살 때 깨쳤다네."

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 말에 공명이,

"그럼 깨는 법도 알겠군."

하고, 말한다.

"아는 걸 왜 못 깨겠나? 흐흐흐!"

사마의는 그까짓 것 별 것 아니라는 듯, 걸걸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좋네. 오늘 내가 이 진으로 패배하게 되면 한중으로 물러나서 영원히 나오지 않겠네."

공명은 자신만만하게 사마의에게 제안했다.

공명의 자신감에 생각이 깊어진 사마의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정말인가?"

웃고 있는 공명과는 다르게 자못 심각해진 표정의 사마의가 공명의 말을 재차 확인한다.

"군자일언중천금(君子一言重千金)이지."

대답하는 공명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다.

공명의 대답을 들은 사마의는 자기 군사들을 향해 휙 돌아선다.

본진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대릉(戴凌), 장호(張虎), 악침(樂綝), 세 장수를 불러 명한다.

"저들이 친 진은 팔괘진이다.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 이렇게 여덟 문이 있다. 이 중에서 생, 휴, 개의 세 문은 적을 깨치는 문이고, 나머지 다섯 문은 우리가 당하는 흉문(凶門)이다. 화려해 보여도 별 것 없으니 두려워할 것 없다. 정동(正東) 방향의 생문으로 들어가 서남(西南) 방향 휴문을 공략했다가 다시 재빨리 나와서 정북(正北) 방향으로 돌아간 다음, 개문으로 들어가면 진이 깨질 것이다!"

"네!"

세 장수는 사마의의 명을 듣고 생문 방향으로 말 고삐를 당겼다.

"아버님, 적이 진을 바꿉니다. 저건 양의 태극진이 아닙니까?"

본진에서 세 장수의 쇄도(殺到)를 지켜보던 사마소가 사마의에게 묻는다.

사마의는 가만히 지켜보더니,

"아니다. 양의 속에 팔괘가 있고, 팔괘 속에 양의가 있다."

하고, 말하는데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하다.

촉군이 짓쳐오는 위군 기마병의 앞과 옆으로 방패를 세워서 위군을 몰아 넣은 후, 사방을 둥글게 에워싸고 공격을 퍼붓는다.

위군은 촉의 병사들이 친 방패에 가로 막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다.

다른 쪽에서는 촉군이 방패로 벽을 쌓고 길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로 위군이 지나갈 때 촉군은 방패와 방패 틈으로 돌연 창을 뻗었다.

위군의 말들이 갑작스레 삐죽이 나온 창에 걸려 그대로 나자빠진다.

그리고 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위군을 촉군은 신속하게 방패 안 쪽으로 잡아 당겨 무차별 공격한다.

창과 검이 요란하게 격돌한다.

위군은 힘껏 대항하지만 촉군의 기세와 책략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잠시 후, 위군 진영에 흰 천으로 내용물을 가린 마차가 도착했다.

그 모습은 사마의를 위시(爲始)하여 여러 위군들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마차를 끌고 온 촉군의 병사는,

"이것은 승상의 선물이다. 이 흑돼지 세 마리로 그대들을 위로한다!"

하고, 외치고는 다시 촉군 진영으로 사라졌다.

위의 병사가 뛰쳐나와 마차를 사마의의 앞으로 끌고 가서 가려진 흰 천을 휙 제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인한 사마의의 미간이 크게 찡그려졌다.

사마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위군 셋이 발가벗겨진 채로 포승줄에 묶여 꿈틀거리고 있다.

사마의는 셋을 불러다가,

"어찌된 것이지?"

하고, 묻는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돌아 온 셋은 사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대도독, 분부하신 대로 생문으로 들어가 휴문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생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갈양이..."

하고, 말을 하다가 말끝을 흐린다.

"무어냐? 제갈양이 뭐라더냐!"

사마의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진다..

"제갈양이... 대도독께 병서(兵書) 공부를 십 년만 더 하고 오라고......"

사마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장탄식(長歎息)을 한다.

그리고 눈빛이 돌변한다.

"적진으로 돌격한다! 제갈양의 사륜거를 박살내라! 제갈양을 생포하라!"

노기와 살기가 등등해진 사마의는 모든 장수들에게 돌격을 명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촉진으로 휘몰아 쳐들어갔다.

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위군의 후방으로 한 무리의 군대가 엄습해왔다. 위군 병사들은 물론 사마의까지 적의 급습에 당황하여 위군은 질서 없이 흩어졌다.

그리하여 위군의 대부분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사마의는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도망친다.

공명은 왕평, 강유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 촉군이 도망가는 꼴을 지켜본다.

강유는 공명을 향해,

"승장, 군사 이만을 주시면 제가 도망가는 사마의의 뒤를 쫓겠습니다. 승상께서는 대군으로 추격하십시오!"

하고, 추격의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공명은 고개를 저어 보인다.

사마의의 군대를 완전히 깨칠 기회를 날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든 강유는,

"왜 그러십니까?"

하고, 공명에게 묻는다.

"우선, 사마의는 이미 멀리 도망갔다. 그리고 아군은 군량이 떨어져서 원거리 공격은 할 수 없다."

공명의 이와 같은 말에 곁에 있던 왕평이 놀라 묻는다.

"네? 군량이 떨어지다니요? 그동안 그런 말씀은 전혀 없으셨잖습니까?"

이에 공명은,

"군심이 동요할까하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미 열흘 전에는 후속 군량이 왔어야 하는데 어인 일인지 소식이 없구나."

하고, 대답하였다.

한편, 황급히 도망친 사마의는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공명이 뒤따라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아들 사마소에게 명한다.

"후퇴해서 성 안에 진을 치고, 명이 있기 전까지는 그 어떤 자도 출격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는 사마의의 표정은 그 기세가 꺾인 것은 물론이요 비통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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