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82)

2022. 6. 30. 21:07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82)

다시 일어선 공명 그리고 조진의 말로(末路)

 

한중에서는 공명이 장군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진창성(陳倉城)을 비롯한 농서 지역에서 철군(撤軍)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 가을비가 많이 올 것을 예상하여 내 병을 핑계 삼아 한중(漢中)으로 철수하였다. 위군의 갑옷과 무기, 그리고 군량을 두 달 넘게 비에 젖게 두었지. 아마도 지금쯤 위군의 군심이 바닥을 치고 있을 것이다. 조진(曺眞)은 이제 끝이다.”

공명의 설명에 위연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승상, 명만 내려 주십시오! 우리 형제들도 위를 치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위연의 말에 응답하여 공명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위연과 왕평은 명을 받들라!”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치는 빗줄기 속에서 도롱이를 걸치고 말을 탄 촉군(蜀軍)의 군사가 진창을 향해 활기차게 진군한다.

“비가 그치기 전에 진창성에 가야 한다! 서둘러라!”

위연은 빗 속을 달리고 있는 군사들에게 소리친다.

“빨리 빨리 가자! 전속력으로 가자!”

진창으로 진격할 날만을 기다렸던 촉군에게 그깟 비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명의 군대가 짓쳐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진창의 조진은 무희(舞姬)들을 앞에 놓고 술이나 마시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아직 보급이 도착하지 않아 군사들은 곰팡이가 앉은 식사를 하면서 녹슬어 가는 무기와 갑옷을 보고 걱정들을 하는데 조진 혼자서만 희희낙락(喜喜樂樂), 천하태평(天下太平)이다.

그때 조상(曺爽)이 들어와서 제 아비의 꼴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 지금 즐거우십니까?”

이에 조진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그럼. 그럼. 너는 안 즐거우냐? 우리가 진창을 획득했고 폐하께 넉넉하게 상도 받았는데 말이다! 너도 뜨끈한 술이나 한 잔 하거라. 하하하!”

하고, 대답한다.

“지금 촉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버님!”

“뭐라고?”

조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지고 놀란 눈과 입이 크게 벌어진다.

“끝도 보이지 않는 군사가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상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의 깃발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제갈양도 틀림없이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해서 넋을 놓고 있는 조진에게 조상이 현재의 상황을 상세하게 고하였다.

조진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급하게 명을 내린다.

“장군들! 제갈양이 오고 있다! 적을 막아라!”

잠시 후 조진은 성루(城樓)에 올라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촉군의 정예군이 모두 몰려온다! 화살을 쏴라!”

대도독 조진의 명으로 성루를 방비(防備)하고 있던 병사들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아앗!”

“엇?”

힘차게 날아가는 화살 소리 대신 당황한 병사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아버님! 화살이 모두 삭아 버렸습니다. 이걸로는 안 되겠습니다!”

조상이 조진을 향해 다급하게 외친다.

위군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촉군은 맹렬한 기세로 위군을 압박하고 있었다. 촉의 화살은 거침없이 진창성을 향했고 검과 창도 위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기와 갑옷이 모두 상한 위군은 촉군을 맞아 맨몸으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진은 성루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안으로 들어왔다. 인근의 성으로 요청한 지원군은 아직 소식이 없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거리기만 하던 조진은,

“사마의! 날 망하게 할 셈이냐! 날 죽일 셈이냐!”

하고, 벌컥 화를 낸다. 한시가 급한 와중에 촉군을 물리칠 계책을 내놓기는커녕 음평에서 지원군을 빨리 보내지 않는다며 사마의를 탓하고있는 조진이었다.

이윽고 촉군이 성 안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진은,

“막아라! 막아야 한다! 반드시 막아라!”

하고, 다급하게 외치며 제 한 몸 지키겠다고 황급히 탁자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것 말고 조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아버님! 나오세요! 촉군 정탐용 촉군 갑옷을 가져왔습니다. 남문만은 아직 무사하니 이 갑옷을 입으시고 남문으로 피신하세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조상이 부하들을 이끌고 들어와 탁자 밑에 볼썽사납게 엎어져 있는 조진을 불렀다.

조진은 허둥지둥 탁자 아래에서 기어 나와 아들이 건네는 촉군의 갑옷을 꿰입고 헐레벌떡 아들의 뒤를 따랐다.

정신을 놓은 듯한 멍한 표정으로 말에 올라 아들을 따라가던 조진은 매복해 있던 촉군의 병사들이 일제히 등장하자 너무 놀라 그만 말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으윽!”

“아버님!”

“대도독!”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진의 표정은 말 그대로 죽을 상이다.

“허리를 다쳐 아무래도 난 말을 탈 수 없을 것 같다. 아들아, 차라리 그냥 날 칼로 찔러 죽여라...”

조진은 아들 조상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찌 제가 아버님을!”

“아니다. 내가 적에게 사로 잡히는 것보다는 그것이 백 배는 낫다. 대사마(大司馬), 대도독(大都督)으로서 적에게 잡히고 마는 것은 폐하께도, 나라에도 폐가 될 것이다. 어서 날 죽여라!”

조진은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조상의 눈빛이 흔들린다. 하지만 마침내 큰 결심을 한 듯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머리 위로 높게 치켜 들었다. 공중에서 빛나던 칼날이 조진의 가슴을 향해 내리꽂히려는 순간,

“지원군이 옵니다! 지원군입니다!”

하는 아군의 소리가 들린다.

조상은 벌떡 일어나 지원군을 향해 눈을 돌렸다.

“아버님! 지원군으로 사마의가 옵니다!”

사마의가 위풍당당하게 백발의 긴 머리와 수염을 휘날리며 위군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원군으로 사마의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조진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쓴 입맛을 다셨다.

사마의는 말에서 내려서 쓰러져 있는 조진의 옆에 척하니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는,

“대도독이셨군요. 촉군의 갑옷이 보이기에 적군인 줄 알았습니다. 대도독이신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왔을텐데 말입니다.”

하고, 능청스럽게 말하며 조진의 목덜미에 손을 탁 올려놓았다.

순간 조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사마의는,

“대도독 괜찮으십니까?”

하고, 말하며 조진의 목덜미에 손을 한 번 더 얹었다. 아니, 한 번 더 내리쳤다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조진은 고개를 돌릴 힘도 없어 곁눈질로 사마의를 쓱 쳐다보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조진의 입에서 선혈이 분수가 되어 나온다.

조진의 시선이 다시 옆에 앉아 있는 사마의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얼굴에 경련이 일고 눈빛이 흐려지며 머리가 바닥으로 쳐박혔다.

사마의는 표정 없는 얼굴로 숨이 끊어진 조진의 손을 꽉 쥐었다.




※ 조진을 그리는 다양한 시각


1. 실제 역사에서 조진은 조조 시절부터 여러 전투에서 공을 많이 세워 위나라의 대사마 자리까지 올랐고, 인덕 또한 갖춘 훌륭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늘 부하들과 함께 싸웠고, 승전 후에 나라에서 포상을 충분히 받지 못한 병사가 있으면 사재를 털어 격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큰 공과 높은 지위를 뽐내지 않고 겸손했다고 합니다.


2. 하지만 삼국지연의(소설 삼국지)에서는 늘 제갈양에게 당하고 사마의의 도움을 받는, 조금은 무능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전투에 패해 병상에 누워 있는 와중에 제갈양의 '조진, 약 올라 죽겠지?' 하는 편지를 받고는 정말로 약이 올라서 병이 덧나 죽고 말 정도로 조진에게 있어서 최고의 적수는 제갈양이었습니다.


3. 드라마 삼국지에서는 조진이 의리가 없고 성품이 가벼우며 지혜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겠지요. 전군을 통솔하는 대도독이라는 자가 적군이 무서워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장면은 매우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진지한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조진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조진과 제갈양(촉)의 관계보다 조진과 사마의의 관계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는 듯 합니다. 위군과 촉군의 긴박한 전쟁 가운데에서도 조진과 사마의 그 둘은 대도독의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입니다. 도저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상황이 아님에도 서로 아들의 재주까지 견주면서요. 드라마 속에서 조진은 이러나 저러나 사마의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내용과는 다르게 조진의 죽음은 사마의의 약올림(?)에 의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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