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400화

2021. 7. 22. 07:21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40화

☞ 유방이 말하는 항우의 10가지 죄

유방은 즉석에서 반박한다.

“그대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자신의 죄과를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그대의 죄를 낱낱이 일러 줄 테니 명심해 듣거라.

첫째, 그대는 회왕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나를 파촉으로 좌천시켰으니, 그 죄가 하나요.
둘째, 그대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경자군(卿子軍) 대장 송의(宋義) 장군을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셋째, 조(趙)나라를 맘대로 점령하고,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셋이요,
넷째, 진(秦)나라의 대궐을 불태워 버리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재화(財貨)를 맘대로 횡령했으니, 그 죄가 넷이요,
다섯째, 진 3세 황제 자영을 죽여 버렸으니, 그 죄가 다섯이요,
여섯째, 진나라의 죄 없는 군사들을 20여만 명이나 생매장해버렸으니, 그 죄가 여섯이요,
일곱째, 점령지구의 관리들을 적폐(積弊)를 구실로 쫓아내고, 자기 부하들을 그 자리에 앉혔으니, 그 죄가 일곱이요,
여덟째, 의제(義帝)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王)을 자칭했으니, 그 죄가 여덟이요,
아홉째, 의제를 시해하여 시체를 강물에 내던졌으니, 그 죄가 아홉이요,
열째, 이왕 왕위에 올랐으면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성들을 잘살게 해줘야 할 일인데, 검증되지 아니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측근들이 비위를 저지르는 등의 일로 인하여 백성들이 근심과 걱정을 하게 만들었으니, 그 죄가 열이로다.

그대가 이상과 같은 죄를 범했으므로 나는 오로지 제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그대의 죄를 다스리고자 할 뿐이다.
내 어찌 이와 같은 대의명분이 없이 그대를 상대로 부질없는 싸움을 일삼겠느냐?”
유방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항우는 너무도 격분한 나머지 장극을 휘두르며 번개같이 유방을 향하여 돌진해 왔다.

애시 당초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유방을 호위하던 장수들이 항우를 결사적으로 막아내는 사이에 유방은 후방으로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몇몇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안으로 쫓겨 가고 있었는데, 별안간 성문 근처 숲속에 매복해 있던 종이매가 수천 군사들과 함께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대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유방이 쫓겨 갈 것을 알고, 그곳에 종이매를 미리 대기시켜 두었던 것이다.
유방은 쫓기고 싸우며 하다가 마침내 왼쪽 팔에 적의 화살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군사들이 사기를 상실할까 두려워 자기 손으로 화살을 힘차게 뽑아 버렸다.
그러자 장수들이 여기저기서 다가와 묻는다.

“대왕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 화살이 옷에 꽂혔기에 뽑아 버렸을 뿐이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들 싸우기나 하여라!”
말을 달려가며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화살을 맞는 순간부터 고통은 전신으로 엄습해 왔고, 피가 겨드랑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유방이 화살을 맞은 사실이 알려지자 초군의 사기는 별안간 왕성해져 노도와 같이 휘몰아쳐 나오며 한나라 군사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 때 별안간 동남방으로부터 한신이 대군을 일진광풍처럼 휘몰아쳐 오며, 초군병사들을 마치 풀을 베듯 베어 버리며 다가온다.
게다가 언제 나타났는지 팽월 장군이 한왕을 엄호하면서

“대왕 전하! 적의 양도(糧道)를 차단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적은 이제 독 안에 든 쥐이니 걱정 마시옵소서.”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한왕을 추격하던 종이매가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군사를 거두어 후방으로 급히 달려와 항우에게 고하니,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뭐야? 한신과 팽월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고 여기까지 대군을 몰고 왔다고?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그럼 유방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삼군을 급히 철수시켜라.”
하고 긴급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한왕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고 본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의외로 심하여 당분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장량이 장중으로 달려와 위로의 말을 한다.

“초군을 깨끗이 쫓아 버렸사오니 주공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상처 치유에만 전념하시옵소서.
한신 장군이 대군을 거느리고 성고성으로 떠나갔으니 초군을 머지않아 섬멸하게 될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그러나 이 중대한 시국에 이 정도의 상처로 어찌 만사를 전폐하고 누워만 있을 수 있겠소?”
“대왕 전하! 천하 대사를 뜻대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대왕 전하의 상처를 신속히 치유하는 일이옵니다. 대왕 전하께서 건강하지 못하시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해낼 수가 있으오리까?”
“선생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러면, 오늘부터 만사를 제쳐두고 상처 치유에만 전념하겠소이다.”
그로부터 10여 일쯤 한왕이 상처 치유에 전념하니 건강이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진중을 순찰했다.
장량은 크게 기뻐하는 장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말한다.

“대왕 전하께서 건강을 회복하셨으니 우리들은 이제 성고성에 있는 한신 장군과 협동하여 초군을 본격적으로 쳐부술 때가 되었소이다.”
한편, 항우는 본진으로 철수하여 긴급회의를 열어 금후의 대책을 논의하였다.

“적장 팽월에게 군량 수송로를 차단당한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타격이오. 제아무리 막강한 우리의 군사라도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소. 게다가 한신이 성고성을 지키고 있어서 형양성을 함락시키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구려.
그렇다면 일단 광무(廣武)로 후퇴하여 새로운 수송로부터 개척해 놓고 나서 형양성을 공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여러 장수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대장 종이매가 나서며 말한다.

“폐하의 성견(聖見)은 참으로 훌륭하시옵니다. 오늘 밤 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산을 넘어 광무로 떠날 것이니, 폐하께서는 호위병만 거느리고 편하게 큰길로 이동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폐하께서 행군하시는 길에는 적들이 감히 근접을 못할 것이옵니다.”
항우는 종이매의 의견을 옳게 여기고, 군사들은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산을 넘어가게 하고, 자신은 당당하게 대로를 거쳐 광무로 출발했다.

한나라 첩자들이 적의 이동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런 사실을 즉시 장량에게 보고하였다.
장량은 첩자들의 보고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모든 장수에게 명한다.

“내가 예측한 대로 적은 지금 대이동을 개시하였소. 우리들은 지금부터 대왕을 모시고 아무도 모르게 적의 뒤를 따라가야 하오.
우리가 성고성으로 무사히 이동하려면,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오.”
한왕은 한신 장군이 주둔하고 있는 성고성으로 가기 위해 적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가기로 하였다.

얼마를 그렇게 가다가 도중에 하후영과 주숙 두 장군을 만났다.
그들은 한왕에게 이렇게 고했다.

“한신 장군은 성고성에서 대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원수께서 1만의 군사를 주며, 대왕 전하를 무사히 호위하여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고 왔사옵니다.”
“한신 장군이?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한왕은 기쁜 마음으로 성고성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왕과 일행은 성고성에 도착하였다.
한왕은 한신의 영접을 받으며 말했다.

“장군은 오랫동안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특히, 이번에는 나를 돕기 위해 멀리서 와주어 고맙소이다.
우리는 초패왕과 70여 번이나 싸워 왔건만 아직도 끝장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결판을 내었으면 좋겠소.”
“홍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결판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전쟁만 끝낼 것이 아니라 초패왕에게 붙잡혀 계신 태공 내외분도 이번 기회에 무사히 모셔 와야 하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우리 군사가 총출동하여 항우를 궁지에 몰아넣으면, 항우인들 어찌 태공 내외분을 돌려주지 않고 견딜 수 있으오리까?”
“나는 장군만 믿겠소. 장군은 하루속히 나를 편하게 해주시오. 거듭 부탁하오.”
“대왕 전하의 분부 깊이 명심하겠사옵니다.”
한신은 그날부터 항우가 옮겨간 광무를 공략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 시작하였다.

- 제 14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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