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2. 08:25ㆍ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13
수호지 제46회-2
석수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몽둥이를 들었다.
양웅은 요도를 차고 박도를 들었다.
막 무덤 곁을 떠나려고 할 때 소나무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오면서 소리쳤다.
“이 태평한 세상에 사람을 죽이고서 양산박에 투신하러 가겠다고! 내가 다 들었다!”
양웅과 석수가 보니 그 사람은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양웅이 아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시천(時遷)이고 고당주 사람인데, 이곳으로 흘러든 사람이었다.
그는 지붕 위를 나는 듯이 달리고, 벽을 타고 오르며, 울타리를 뛰어넘고, 말을 잘 다루는 자였다.
계주부에 고발당했었는데 양웅이 구해주었었다.
사람들은 그를 ‘북 위에서 튀는 벼룩’ ‘고상조(鼓上蚤)’라고 불렀다.
양웅이 시천에게 물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시천이 말했다.
“절급 형님께 아룁니다. 소인이 근래에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이 산에서 무덤을 도굴하여 재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형님께서 일을 처리하시는 걸 보고 감히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양산박에 투신하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소인이 지금 여기서 닭이나 개를 훔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두 분 형님을 따라 양산박으로 가고 싶은데, 소인을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석수가 말했다.
“자네도 강호의 인물이고 그곳에서는 인재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한 사람 더 있다고 뭔 문제가 되겠나? 우리랑 같이 가지.”
시천이 말했다.
“소인이 지름길을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은 지름길로 산을 내려가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한편, 두 가마꾼은 산 중턱에서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렸는데, 세 사람이 내려오지 않았다.
분부를 받았기 때문에 감히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발길 가는 대로 산을 올라갔는데, 까마귀가 떼 지어 오랜 무덤 위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두 가마꾼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까마귀들이 내장을 서로 빼앗으려고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가마꾼들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황망히 집으로 돌아가 반공에게 알리고, 함께 계주부로 가서 고발하였다.
부윤은 즉시 현위로 하여금 검시관을 데리고 취병산으로 가서 시체를 검사하게 하였다.
검시관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부인 반교운은 소나무 옆에 토막이 나 있고, 계집종 영아는 오래된 무덤 아래 죽어 있습니다. 무덤 근처에는 부인과 중 그리고 도인의 옷이 있습니다.”
부윤은 보고를 듣고 지난번의 배여해와 호도인의 일을 상기하고 반공에게 자세히 물었다.
노인은 승방에서 술이 취했던 일과 석수가 집을 나가게 된 연유를 자세히 애기했다.
부윤이 말했다.
“짐작컨대 부인이 중과 간통했는데, 계집종과 도인이 다리 역할을 했고, 석수란 놈이 그걸 보고 참지 못하고 중과 도인을 죽였구먼.
그리고 양웅이 오늘 부인과 계집종을 죽인 것이 틀림없다. 양웅과 석수를 잡아들이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즉시 공문을 작성하고 상금을 내걸어 양웅과 석수를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가마꾼들과 반공은 돌아가 대기하게 했다. 반공은 관을 사서 시신을 장례 지냈다.
한편, 양웅·석수·시천은 계주를 떠나 밤에는 자고 새벽부터 걸어서 하루 만에 운주 지방에 당도했다.
향림와라는 호수를 지나자 높은 산이 나타났는데, 어느덧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앞쪽의 시내 옆에 객점이 하나 있어 세 사람은 객점 문 앞으로 다가갔다.
점원이 문을 닫으려다가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손님들은 멀리서 오시느라 늦었나 봅니다.”
시천이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백리를 걸어오느라 이렇게 늦었네.”
점원이 세 사람을 객점에 들어와 쉬게 하고 물었다.
“끼니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천이 말했다.
“우리가 알아서 해먹겠네.”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부뚜막의 솥 두 개가 깨끗하니 그냥 사용하시면 됩니다.”
시천이 물었다.
“술과 고기는 파는가?”
“오늘 아침에는 고기가 있었는데, 인근 마을사람들이 다 사갔습니다. 술 한 항아리가 남아 있을 뿐 찬거리는 없습니다.”
“할 수 없지. 밥이나 지어 먹게, 쌀 다섯 되만 빌려 주게.”
점원이 쌀을 가져오자 시천은 쌀을 씻어 솥에 밥을 안쳤다.
석수는 방에서 짐을 정돈했고, 양웅은 비녀 한 쌍을 점원에게 주고 먼저 술 한 동이를 가져오게 하고 내일 한꺼번에 계산하기로 했다.
점원이 비녀를 받고 안에서 술 항아리를 가져오고 익힌 채소 한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시천이 뜨거운 물 한 통을 가져와서 양웅과 석수에게 손발을 씻으라고 하였다.
시천은 술을 거르고 점원도 불러 한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석수는 객점 처마 밑에 박도 10여 개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점원에게 물었다.
“이 객점에 어찌 저런 무기가 있는가?”
점원이 말했다.
“모두 주인이 놔 둔 겁니다.”
“이 집 주인은 어떤 사람인가?”
“손님은 강호를 다니는 분이 어찌하여 이곳의 이름도 모르십니까?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이 독룡산이고, 산 앞에 있는 높은 언덕이 독룡강인데, 그 위에 주인의 집이 있습니다.
여기 사방 30리가 축가장(祝家莊)이고, 장원 주인이신 태공 축조봉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는데 축씨삼걸(祝氏三傑)이라 불립니다.
장원 앞뒤에 6~7백의 인가가 있는데 모두 소작농이며 집집마다 박도 두 자루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기는 축가점(祝家店)이라 불리고 항상 수십 가구의 사람들이 이 객점에서 자기 때문에 박도를 저기 놔 둔 겁니다.”
“객점에 무기가 왜 필요한가?”
“여기서 양산박이 멀지 않기 때문에 그 도적들이 양식을 빌리러 올 것에 대비하는 겁니다.”
“자네에 은자를 줄 테니 나한테 박도 하나 주면 안 되겠나?”
“그건 안 됩니다. 무기마다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인의 법도가 엄해서 저는 주인의 몽둥이질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석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농담 한번 해 본 거니까 당황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게”
“소인은 더 마실 수 없어서 먼저 들어가 쉬겠습니다. 손님들은 편안히 몇 잔 더 드십시오.”
점원은 안으로 들어갔다.
양웅과 석수는 술을 더 마셨는데, 시천이 말했다.
“형님들! 고기 먹고 싶지 않으십니까?”
양웅이 말했다.
“점원이 팔 고기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는 어디서 고기를 얻으려 하는가?”
시천이 헤헤 웃으며 부뚜막으로 가서 수탉 한 마리를 들어 보였다.
양웅이 물었다.
“그 닭은 어디서 가져왔나?”
시천이 말했다.
“제가 좀 전에 측간에 갔다가 우리 안에 닭 한 마리가 있을 걸 봤습니다. 형님들이 술 마시는데 안주거리가 없어서 제가 시냇가에 가서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한 통 뒤뜰로 가져가서 깨끗이 씻고 삶아서 형님들 드시라고 준비했습니다.”
양웅이 말했다.
“네놈은 아직 도둑질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구나!”
석수가 웃으며 말했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죠.”
세 사람은 한 바탕 웃고는 닭을 뜯어 먹고 밥도 먹었다.
점원은 잠이 들락 말락 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일어나 나와서 앞뒤를 살펴보았다.
부엌 탁자 위에 닭털과 뼈가 있고 솥 안을 들여다보니 닭국물이 반쯤 차 있었다.
점원은 황망히 뒤뜰로 달려가 우리 안을 들여다보니 닭이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들어와 물었다.
“손님들은 어찌 도리를 모르시오? 어찌하여 새벽을 알려주는 우리 객점의 닭을 잡아먹었습니까?”
시천이 말했다.
“귀신을 보았나? 우리는 오는 도중에 사 온 닭을 먹은 것이고, 자네 닭은 본 적이 없네.”
“그럼 우리 닭은 어디 갔단 말입니까?”
“들 고양이가 물어갔거나 삵쾡이가 잡아먹었나 보지. 아니면 매가 채갔나?”
“우리 닭은 우리 속에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면 누가 훔쳐갔겠어요?”
석수가 말했다.
“다투지들 말게. 몇 푼 안 되니까 내가 배상하지.”
점원이 말했다.
“우리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닭이기 때문에 우리 객점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이 은자 열 냥을 배상한다 해도 안 되니, 우리 닭을 돌려주시오!”
석수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놈이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 이 어르신이 배상 못하겠다면 어쩔 건대?”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들! 여기서 불장난 할 생각 마세요! 우리 객점은 다른 객점과는 다릅니다. 당신들을 장원으로 끌고 가서 양산박 도적으로 만들어 관아에 넘길 수가 있어요!”
석수가 그 말을 듣고 욕을 했다.
“우리가 양산박 호걸이라면 네놈이 어떻게 우리를 잡아서 상을 청하겠다는 거냐!”
양웅도 노하여 말했다.
“호의로 돈을 주려고 했는데, 이제 배상 못 하겠으니 어디 잡아가 봐라!”
점원이 소리쳤다.
“도적이야!”
그러자 객점 안에서 웃통을 벗은 너덧 명의 사내가 튀어나오더니 양웅과 석수에게 덤벼들었다.
석수가 한 주먹에 한 명씩 쓰러뜨렸다.
점원이 다시 소리치려고 하다가 시천에게 얼굴을 한 방 맞고 찍소리도 못했다.
사내들은 모두 뒷문으로 달아났다.
양웅이 말했다.
“아우! 저놈들이 사람들에게 알리러 갔을 테니 우리는 얼른 밥을 먹고 달아나는 것이 좋겠네.”
세 사람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보따리를 지고 요도를 찼다.
그리고 시렁에 놓여 있던 박도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석수가 말했다.
“어쨌든 간에 그냥 놔 둘 수는 없지.”
부엌에 가서 짚을 찾아 불을 붙이고 사방에 불을 놓았다.
초가는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활활 타올라 순식간에 천지가 환해졌다.
세 사람은 큰길로 달아났다.
세 사람이 얼마 동안 걸어갔는데, 앞뒤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횃불이 나타나더니 1~2백 명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석수가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샛길을 찾아 달아납시다.”
양웅이 말했다.
“멈춰! 한 놈이 오면 한 놈을 죽이고, 두 놈이 오면 두 놈을 죽이면 된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달아나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양웅이 앞에 서고, 석수는 뒤를 맡았으며, 시천은 가운데 있었다.
세 사람은 박도를 들고 장객들과 싸웠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창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가,
양웅이 휘두른 박도에 6~7명이 쓰러지자 앞에 있던 자들은 바로 달아났다.
뒤에 있던 자들도 급하게 물러서려고 했는데, 석수가 뛰어들어 6~7명을 쓰러뜨렸다.
사방에서 달려들던 장객들은 10여 명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모두 달아났다.
세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는데, 함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마른 풀숲에서 갈고리 두 개가 나오더니 시천을 걸어 풀숲으로 끌고 들어갔다.
석수가 몸을 돌려 시천을 구하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또 두 개의 갈고리가 튀어나왔다.
양웅이 재빠르게 알아채고 박도로 내리쳐 갈고리를 물리치고 풀숲 안으로 박도를 찔렀다.
비명이 울리면서 모두 달아났다.
두 사람은 시천이 붙잡힌 것을 보았지만 더 깊이 들어가기도 두려웠고 더 이상 싸울 마음도 없었다.
시천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길을 찾아 달아났다.
멀리서 횃불이 어지럽게 비치고 샛길에는 나무가 없어서 길이 잘 보였다.
두 사람은 곧장 동쪽으로 달아났고, 장객들은 더 이상 추격할 수가 없어 다친 사람을 구하여 시천을 묶어 축가장으로 끌고 갔다.
양웅과 석수는 날이 밝을 때까지 달아났는데, 앞에 시골 주점이 하나 있었다.
석수가 말했다.
“형님! 저 주점에서 밥과 술을 사 먹고 길도 물어 봅시다.”
두 사람은 주점으로 들어가 박도를 기대 놓고 마주앉았다.
점원을 불러 술과 밥을 가져오게 하였다.
점원이 야채와 안주를 차려놓고 술을 덥혀서 가져왔다.
두 사람이 막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덩치 큰 사내가 들어왔다.
얼굴이 크고 뺨은 각이 졌으며 눈이 선명하고 귀가 컸다.
용모는 추한데 형세가 거칠었다. 사내가 소리쳤다.
“대관인께서 너희들이 멜대를 지고 장원으로 가져오라고 하신다.”
주점주인이 황망히 응답했다.
“멜대에 담았으니, 잠시 후 장원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사내는 분부하고서 몸을 돌려 나가면서 다시 말했다.
“빨리 가져오너라!”
사내가 문으로 나가려고 양웅과 석수 앞을 지나가는데, 양웅이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나 좀 보게.”
사내가 고개를 돌려 보더니 말했다.
“은인께서는 어떻게 여기 오셨습니까?”
사내는 양웅에게 절을 했다.
- 114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