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10편

2024. 12. 9. 07:50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10

수호지 제45-2

반공은 영아와 함께 가마 뒤를 따라 보은사로 갔다.
배여해가 산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맞이하였다. 반공이 말했다.

“스님이 노고가 많습니다.”
부인은 가마에서 내려 사례하며 말했다.

“사형이 노고가 많으십니다.”
배여해가 말했다.

“별 말씀을! 소승이 이미 다른 스님들과 함께 수륙당에서 새벽부터 독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서 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많은 공덕이 쌓였을 것입니다.”
배여해는 부인과 노인을 수륙당으로 인도하였다.

수륙당에는 이미 꽃과 등촉 등이 마련되어 있었고, 10여 명의 중들이 독경을 하고 있었다.
부인은 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참배하였다.

배여해는 부인을 지장보살 앞으로 인도하여 참회하게 하였다.
독경이 모두 끝나고 지전을 태운 다음 중들은 공양하러 가고, 제자들이 시중을 들었다.
배여해가 말했다.

“의부님과 누이는 소승의 방에 가서 찬 한 잔 하시지요.”
부인을 승방 깊은 곳으로 인도했는데,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시자 둘이 차를 가지고 왔는데, 주홍색 받침 위에 백설 같이 하얀 잔이 놓였고, 가늘게 썬 찻잎이 들어 있었다.
차를 마시고 나자 다시 더 안쪽의 작은 방으로 인도하였다.

검은 받침대 위에 거문고가 빛을 내고 있고, 명인의 서화가 몇 폭 걸려 있으며, 작은 탁자 위의 화로에는 오묘한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반공과 부인이 앉자 배여해는 맞은편에 앉았고, 영아는 옆에 서 있었다.
부인이 말했다.

“깨끗하고 고요하며 안락해서 출가인이 거처하기에 참 좋은 곳이네요.”
배여해가 말했다.

“누이는 농담하지 말아요. 어찌 귀댁과 비교할 수 있겠소?”
반공이 말했다.

“오늘 하루 고생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배여해가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의부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고, 오늘 누이가 시주도 많이 했는데, 어찌 공양도 안 하시고 그냥 가시겠습니까? 사형! 얼른 가져오세요!”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사형이란 자가 쟁반 두 개에 평소에 간직해 두었던 희귀한 과일과 채소 등의 음식과 술을 가져와 탁자 위에 가득 차려놓았다.
부인이 말했다.

“사형은 어째서 술까지 준비했어요? 도리어 번거롭게 했네요.”
배여해가 웃으며 말했다.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약소하나마 정을 표하고자 할 뿐입니다.”
사형이란 자가 술을 따르자, 배여해가 말했다.

“의부께서 오랜만에 오셨으니, 이 술을 한 잔 드셔 보십시오.”
반공이 한 잔 마시고 나서 말했다.

“좋은 술이군! 맛이 깊네.”
배여해가 말했다.

“전에 어떤 시주가 집안의 비법을 가르쳐 주어서 쌀 너덧 섬으로 빚어 봤습니다. 내일 몇 병 가지고 가셔서 사위에게도 맛보여 주십시오.”
반공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요.”
배여해가 또 권했다.

“대접할 게 없으니, 누이도 한 잔 하시오.”
두 중이 번갈아 가며 술을 따랐고, 영아도 몇 잔 마셨다. 부인이 말했다.

“술은 그만 할래요.”
배여해가 말했다.

“여기 오기가 쉽지 않으니 몇 잔 더 마셔요.”
반공이 가마꾼들을 불러 술 한 잔씩을 주려고 하자, 배여해가 말했다.

“의부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승이 이미 분부해 놔서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겁니다. 의부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몇 잔 더 드십시오.”
원래 이 중놈이 부인을 위해서 특별히 센 술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반공은 두 잔을 더 마시고 완전히 취하고 말았다.
배여해가 말했다.

“의부를 침상으로 모셔가서 주무시게 하시죠.”
배여해는 두 사형으로 하여금 노인을 부축해 조용한 방으로 데려가서 재우게 하였다.
배여해가 부인에게 말했다.

“자 이제 편하게 마셔!”
부인은 원래 마음도 있었는데 술까지 들어가자 더욱 정욕이 발동했다.
석 잔을 더 마시자 정신도 몽롱해져 주정을 했다.

“사형! 나한테 이렇게 술 먹여 놓고 뭐 하려고?”
배여해가 웃으며 말했다.

“난 낭자를 공경할 뿐이야.”
“난 이제 그만 마실래.”
“부처님 치아 사리 보러 갈까?”
“그래.”
배여해는 부인을 인도하여 이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은 배여해의 침실로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부인은 좋아하며 말했다.

“침실이 아주 깨끗해서 좋네.”
배여해가 웃으며 말했다.

“여자만 있는데.”
부인도 웃으며 말했다.

“여자 하나 못 얻어?”
“어디서 이런 시주를 얻겠어?”
“치아 사리 보여 줘.”
“영아를 내려 보내면 가져올게.”
부인이 말했다.

“영아야! 아버지가 깨어나셨는지 가 봐!”
영아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배여해가 문을 잠갔다.
부인이 말했다.

“사형! 날 여기 가둬 놓고 뭐 하게?”
중놈이 드디어 음심이 발동하여 부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가 낭자를 너무나 연모하여 2년 동안 마음을 앓았어. 오늘 낭자를 어렵게 이곳까지 오게 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 것 같아?”
“우리 남편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자기가 날 속인 걸 남편이 알면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중놈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낭자는 나를 가련히 여겨 줘!”
부인이 손을 펴며 말했다.

“중이 치근덕거리니 싸대기나 한 대 갈겨 줄까 보다!”
중놈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때리고 싶으면 때려! 하지만 낭자 손이 다칠까 걱정되네.”
부인은 음심이 발동하여 중놈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가 진짜로 자기를 때릴 것 같아?”
중놈은 부인을 끌어안고 침상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함께 환락을 즐겼다.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고 나서 중놈이 부인을 끌어안은 채 말했다.

“네가 나를 좋아하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오늘 비록 네 덕분에 내 소망을 이루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쾌락을 즐겼을 뿐 밤새도록 환락을 누리지는 못하겠구나. 오래도록 보지 못하면 난 죽을 것만 같아.”
부인이 말했다.

“허둥댈 필요 없어. 내가 이미 생각해 둔 계책이 있어. 우리 남편은 한 달에 20일은 감옥에서 숙직을 해. 내가 영아를 매수해서 매일 뒷문에서 기다리게 할게.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향 탁자를 바깥에 내놓고 향을 피우는 것을 신호로 하면 자기가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잠이 깊이 들어 새벽에 깨지 못하는 거야. 어디서 새벽을 알려주는 중을 하나 매수해서 뒷문에 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염불하게 하면, 좋지 않겠어?
그런 자를 하나 매수해 두면 밖에서 망을 보게 할 수도 있고, 새벽에 깨지 못하는 걸 방비할 수도 있잖아.”
중놈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절묘하다! 자기 말대로 하면 되겠네. 내가 아는 엉터리 중이 하나 있으니 그 자에게 부탁하면 되겠군.”
“같이 온 사람들이 의심할까봐 오래 있지 못하겠네. 나는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자기는 약속어기지 마.”
부인은 황급히 머리를 매만지고 얼굴에 분을 바른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영아를 불러 반공을 깨우게 하고 황망히 승방을 나갔다.
가마꾼들은 이미 술과 국수를 먹고 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여해는 산문 밖에까지 나와서 부인을 배웅했고, 부인은 가마에 올라 반공·영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배여해는 새벽을 알려줄 중을 찾아갔다.

보은사에는 서역에서 온 중이 하나 있었는데, 절 뒤편의 작은 암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호도인(胡道人)라고 불렀다.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목탁을 두드리며 새벽을 알려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고, 날이 밝으면 밥을 얻어먹었다.

배여해는 그를 방으로 불러 좋은 술을 대접하고 은자를 주었다.
호도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아무런 공이 없는데, 어찌 감히 이런 돈을 받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부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 내가 조만간에 돈을 대어 도첩을 사주고 머리를 깎아 정식으로 중이 되게 해주겠소. 우선 이 은자를 가지고 가서 옷이라도 사서 입으시오.”
원래 배여해는 평소에도 불사가 있으면 사형들을 시켜 호도인에게 음식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데려와서 독경하고 시줏돈을 받을 수 있게도 해주었었다.
호도인는 그동안 받은 은혜가 적지 않은데 아직 보답하지 못했음을 생각했다.

“오늘 내게 이 은자를 주는 것은 필시 나를 써먹을 데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 사람이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는 것이 좋겠다.”
호도인이 말했다.

“사부께서 저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얘기하니 나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반공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나랑 왕래하기로 하고, 뒷문 앞에 향 탁자를 내놓으면 내가 들어가기로 약정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얼쩡거리기는 어려우니, 당신이 먼저 가서 향 탁자가 있는지 보고서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번거롭겠지만 새벽에 염불하라고 사람들을 깨울 때 뒷문에 와서 사람이 없는 걸 보고 목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염불을 하면 내가 나오는데 편할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어렵겠습니까!”
호도인은 응낙하고 그날 반공 집 뒷문으로 가서 밥을 탁발했다.
영아가 나와서 말했다.

“도인은 어째서 앞문으로 와서 탁발하지 않고 뒷문으로 오셨어요?”
호도인이 염불을 하자 안에서 듣고 눈치를 챈 부인이 뒷문으로 나와 물었다.

“도인은 새벽을 알리는 스님 아니세요?”
호도인이 말했다.

“제가 새벽을 알리는 중인데, 어떤 사람이 잠을 깨워 달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향을 피우시면 복이 쌓일 것입니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영아에게 이층으로 가서 동전 한 꾸러미를 가져와 보시하라고 했다.
호도인은 영아가 안으로 들어가자 부인에게 말했다.

“저는 배여해의 심복인데, 길을 알아두려고 왔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어요. 오늘 저녁에 와서 향 탁자가 밖에 놓여 있으면 그에게 알려주세요.”
호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아가 동전을 가지고 와서 주자 호도인은 받고 돌아갔다.
부인은 이층으로 올라가 속마음의 얘기를 영아에게 했다.

영아는 다소라도 돈이 생기는 일이니 따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한편, 양웅은 그날 당직이어서 저녁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와서 이불을 가지고 다시 감옥으로 갔다.

영아는 황혼 무렵에 향 탁자를 뒷문 밖에 내놓았고, 부인은 옆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한 사람이 두건을 쓰고 몰래 들어왔다.
영아가 물었다.

“누구세요?”
그는 응답하지 않고 두건을 벗었다.

반짝거리는 민대가리가 드러났다.
부인은 옆에서 배여해를 알아보고 가볍게 꾸짖었다.

“민대가리가 뭐 볼 게 있다고?”
둘은 끌어안고 이층으로 올라갔고, 영아는 향 탁자를 치우고 뒷문을 잠그고 자러 갔다.

두 연놈은 그날 밤 아교처럼 딱 달라붙어서 꿀처럼 달콤하게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밤새도록 음란한 쾌락을 즐겼다.
예로부터 ‘환락을 즐길 때는 밤이 짧음을 탓하지 않고 닭이 새벽을 늦게 알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둘이 한참 잠에 빠져 있는데, 바깥에서 ‘똑똑’ 하는 목탁 소리와 염불하는 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연놈은 꿈속에서 깨어났다.
배여해가 일어나 옷을 입고 말했다.

“갈게. 오늘 저녁에 다시 봐.”
“오늘부터 뒷문 밖에 향 탁자가 있으면 약속 어기지 마. 만약 향 탁자가 없으면 절대 오면 안 돼.”
중놈은 다시 두건을 쓰고, 영아가 뒷문을 열어주자 밖으로 나갔다.

그날부터 양웅이 감옥에 숙직하러 갈 때면 중놈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에 노인이 있었지만 밤이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었고, 영아는 이미 한통속이 되었다.

다만 석수 하나만 속이면 되는데, 부인은 음심이 발동하여 그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중놈도 이미 여자 맛을 알게 되어 연놈은 이미 제정신을 잃고 있었다.

중놈은 호도인이 알려주기만 기다리다가 곧바로 절을 떠났고, 부인은 영아를 다리로 삼아 중놈을 출입시키면서 쾌락을 즐겼다.
이렇게 왕래한 것이 한 달이 넘었고, 중놈은 이미 십 여 차례나 다녀갔다.

- 111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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