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09 편

2024. 12. 6. 09:24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09

수호지 제45-1

반공이 말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 이틀 동안 집을 떠나 있다가 오늘 돌아와 모든 집기가 없어진 것을 보고 폐업하는 줄 알고 떠나려고 한 것이겠지. 잘 되고 있는 장사를 그만두고 자네를 집에서 쉬게 할 리 있겠는가?
자네에게 솔직히 말하겠네. 내 딸이 처음에 왕압사에게 시집갔는데 불행하게도 그가 죽었네. 오늘이 2주기여서 그를 추모하느라 이틀간 장사를 쉰 것일세.
내일 보은사 스님이 와서 추도식을 할 건데, 자네가 접대를 해주면 좋겠네. 나는 이제 늙어서 밤을 새기가 힘들어 자네에게 부탁하는 걸세.”
석수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자네는 이제부터 의심하지 말고, 이전처럼 잘 지내보세.”
석수는 반공과 술을 마시면서 마음을 풀었다.

다음 날 중이 제사용품을 지고 와서 제단을 설치하고 불상·제기·북·종·향화·등촉 등을 벌려놓고, 부엌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양웅이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석수에게 분부했다.

“아우! 내가 오늘 밤에 당직을 서야 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올 수가 없네. 모든 일을 자네가 도와주게.”
석수가 말했다.

“형님은 마음 놓고 다녀오십시오. 형님 대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양웅이 떠나고, 석수는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젊은 중이 주렴을 걷고 들어와 석수에게 인사했다.
석수가 답례하고 말했다.

“스님! 잠시 앉아 계십시오.”
또 한 중이 상자 두 개를 지고 뒤따라왔다.
석수가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어르신! 스님이 오셨습니다!”
반공이 듣고 안에서 나오자 젊은 중이 말했다.

“의부(義父)께서는 어째서 한동안 절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반공이 말했다.

“점포를 개업해서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압사님의 제삿날인데 가져올 게 없어서 국수와 대추를 조금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그럴 필요 없는데, 스님이 돈만 쓰게 했습니다.”
석수는 물건을 받아 들여놓고, 차를 내와서 중들을 대접했다.

그때 이층에서 부인이 내려왔는데, 상복을 입지 않고 옅은 화장을 했다.
부인이 석수에게 물었다.

“아주버님! 누가 물건을 가져왔습니까?”
석수가 말했다.

“어르신을 의부라고 부르는 스님이 가져왔습니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배여해 사형인데 성실한 스님이에요. 털실 가게 배가의 아들인데, 출가하여 보은사에 있어요. 우리가 그 절의 시주라 우리 아버지를 의부로 모시고, 저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아 사형이라 불러요.
법명은 해공이에요. 아주버님도 밤에 그가 염불하는 걸 들어보세요.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석수가 말했다.

“그렇군요.”
석수는 이미 낌새를 눈치 챘다.

부인이 중을 만나러 가자 석수는 뒷짐을 지고 따라가 주렴 뒤에서 엿보았다.
부인이 다가가자 중은 일어나서 합장하고 인사했다.
부인이 말했다.

“사형은 왜 돈을 낭비하세요?”
중이 말했다.

“누이! 변변찮은 것이라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사형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출가인의 물건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어요?”

“우리 절에 수륙당을 신축했습니다. 누이가 와서 불공을 드리면 좋을 건데, 절급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남편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요. 엄마가 돌아가실 때 혈분경을 독송해 달라고 하셨는데, 조만간에 절에 가서 사형을 귀찮게 해야겠네요.”
“한 집안 일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분부만 하시면 소승이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사형이 우리 엄마를 위해 불경을 독송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
안에서 계집종이 차를 갖고 나오자, 부인이 찻잔을 받아 수건으로 가장자리를 닦고서 두 손으로 중에게 건네주었다.

중이 찻잔을 받으면서 은근한 눈길로 부인을 바라보았고, 부인도 웃음을 띠며 중을 바라보았다.
남녀는 색정이 발동해서 석수가 주렴 안에서 엿보고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석수는 마음속으로 혼자 말했다.

“‘정직하다고 하는 자를 믿지 말고, 어질다고 하는 자를 방비해야 한다.’고 했어. 저 여편네가 나한테 몇 번이나 음란한 말을 해도 나는 항상 친 형수처럼 대해 왔는데, 원래 못된 년이었군!
이제 내 손에 걸려들었으니, 양웅 대신 손보지 않으리라고는 장담 못하겠는 걸!”
석수는 대충 눈치 채고서 주렴을 걷고 들어섰다.
배여해가 찻잔을 놓고 말했다.

“형님! 앉으시지요.”
부인이 끼어들어 말했다.

“이분은 남편이 새로 맺은 의형제입니다.”
배여해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물었다.

“형님의 고향은 어디시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석수가 말했다.

“내 이름은 석수고 금릉 사람이오. 남의 일에 끼어들어 힘쓰는 걸 좋아해서 반명삼랑이라 불리는데, 내가 좀 거친 남자라 예의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스님은 용서하시오.”
배여해가 말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소승은 다른 스님들을 맞이하러 도량으로 가야겠습니다.”
배여해가 문을 나가자 부인이 말했다.

“사형! 빨리 갔다 오세요!”
배여해가 응답했다.

“빨리 오겠습니다.”
부인은 배여해를 배웅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수는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생각하다가 제사를 도우러 갔다.
행자가 먼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으며, 잠시 후 배여해가 다른 중들을 데리고 도량으로 왔다.

반공과 석수가 맞이하여 차를 내어 대접했다.
배여해가 나이가 비슷한 젊은 중과 함께 방울을 흔들며 염불하고, 젯밥을 올리면서 망부(亡夫) 왕압사가 극락왕생하기를 축원했다.

부인은 요염하게 화장을 하고 법단 앞에 가서 향을 피우고 예불했다.
배여해는 더 기운이 나서 방울을 세게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함께 염불을 하던 다른 중들도 양웅 부인의 요염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자신도 모르게 손발이 움찔거렸다.
석수는 옆에서 그 꼴을 보고 냉소를 띠며 혼자 말했다.

“저러니 무슨 공덕이 있겠나? ‘복을 짓기보다 죄를 피하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군.”
잠시 후 제사가 끝나고, 중들을 안으로 청하여 음식을 대접했다.

배여해는 중들 뒤에 앉아서 고개를 돌려 부인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띠었고, 부인도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둘은 눈빛으로 애정을 교환했다.

석수는 절반 정도 눈치를 채고 기분이 불쾌해졌다.
중들이 음식을 먹고 나서, 돈을 시주하고 반공이 말했다.

“스님들! 배부르게 드셨습니까?”
중들은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가 한 바퀴 돌고 다시 도량으로 들어갔다.

석수는 기분이 불쾌해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부인은 이미 욕정이 발동해서 남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들을 도우러 갔다.

중들이 방울을 흔들며 염불하고 있을 때 부인은 차와 음식을 가지고 갔다.
배여해는 다른 중들과 함께 불경을 독송하면서 망자의 죄를 참회했다.

자정이 되자 다른 중들은 지쳤으나 배여해는 더욱 기력이 솟아 목청을 높여 독송했다.
부인은 주렴 아래서 보고 있다가 욕정이 불길처럼 치솟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계집종을 시켜 배여해를 불러오게 했다.
배여해가 부인 앞으로 다가오자, 부인이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사형은 내일 공덕전(功德錢) 받을 때 아버지에게 혈분경 독송하는 일을 잊지 말고 말해 주세요.”
배여해가 말했다.

“소승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는 것이 좋죠.”
그리고 배여해가 또 말했다.

“자기 집 시동생이란 자, 사납게 생겼더라.”
부인이 말했다

“제까짓 게 뭔데? 친형제도 아니야!”
“그렇다면 나도 마음이 놓이네. 난 절급의 친형제인 줄 알았지.”
둘이 시시덕거리다가 배여해가 나가서 망자를 전송했다.

석수는 자는 척하면서 판자벽 뒤에서 모두 엿보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제사를 모두 마치고 중들은 돌아가고, 부인은 이층으로 올라가 잠을 잤다.
석수는 생각했다.

“형님 같은 호걸이 저런 음란한 여자를 만나다니!”
석수는 좆같은 기분을 참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양웅이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양웅이 밥을 먹고 나서 다시 나간 다음 배여해가 승복을 단정하게 갈아입고 반공의 집으로 왔다.

부인은 배여해가 오는 소리를 듣고 황망히 이층에서 내려와 맞이하였다.
안으로 청하여 차를 대접하면서 부인이 말했다.

“어젯밤에 사형이 애를 많이 썼는데, 아직 공덕전을 드리지 못했네요.”
배여해가 말했다.

“그런 건 말할 필요 없습니다. 소승은 어제 얘기했던 혈분경 독송에 대해 누이에게 말하려고 왔습니다.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리겠다면, 소승이 독경할 테니 와서 따라 하기만 하십시오.”
부인이 말했다.

“그러면 좋지요.”
계집종을 시켜 부친을 청하여 상의했다.
반공이 나와 사례하며 말했다.

“늙은이가 힘이 들어 어젯밤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에 석씨도 배가 아픈 바람에 아무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배여해가 말했다.

“의부께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부인이 말했다.

“제가 엄마의 소원인 혈분경 독송을 해드리려고 했더니 사형이 말하기를 내일 절에서 행사가 있으니 남들을 따라하면 된다고 하네요.
사형이 먼저 독경하고 있으면 우리가 내일 절에 가서 제사 지내고 따라 읊으면 된대요.”
반공이 말했다.

“좋지! 그런데 내일은 장사가 바쁠 건데 계산대 지킬 사람이 없구나.”
부인이 말했다.

“아주버님이 지키면 되지, 뭐가 걱정이세요?”
반공이 말했다.

“네가 소원이라고 하니 내일 가도록 하지.”
부인은 은자를 꺼내 배여해에게 주면서 말했다.

“사형의 노고에 비해 너무 적네요. 내일은 절에 국수 먹으러 갈게요.”
배여해가 말했다.

“향을 피워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은자를 받아 일어서며 말했다.

“시주를 이렇게 많이 해주시니, 다른 스님들과 나누어 쓰겠습니다. 내일 누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인은 문 앞까지 나가 배웅했다.

석수는 작업장에서 쉬다가 일어나 돼지를 잡아 장사 준비를 했다.
저녁에 양웅이 집에 돌아오자, 부인이 밥을 차려 주고 손발도 씻겨 주었다.
부인은 반공을 시켜 양웅에게 말하게 했다.

“마누라가 임종 때 보은사에서 혈분경을 독송하면서 참회하고 싶다고 했는데, 딸애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네. 내가 내일 딸애와 함께 절에 갔다 올 테니, 그리 알고 있게.”
양웅이 말했다.

“여보! 그런 일은 당신이 말해도 되잖아.”
부인이 말했다.

“제가 얘기하면 당신이 화를 낼지 몰라서 말 못했어요.”
다음 날 아침 양웅은 출근하고, 석수는 장사 준비를 했다.

부인은 짙은 화장을 하고 요염하게 꾸미고서 향합을 싸고 지전과 초를 사고 가마를 불렀다.
석수는 일찍부터 장사하느라 관여하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계집종 영아도 단장을 했다.
반공이 옷을 갈아입고 와서 석수에게 말했다.

“점포 잘 봐 주게. 딸애랑 얼른 갔다 오겠네.”
석수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잘 보고 있겠습니다. 형수님이랑 잘 다녀오십시오.”
석수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 110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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