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06 -107편
2024. 12. 4. 08:18ㆍ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06
제12장 사랑과 음모
제44편 미녀 반교운 44-1
양웅의 집에서는 그의 아내가 나와 그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석수는 양웅의 아내가 너무 미인인 데 놀랐다.
검은 머리에 가는 눈썹, 빛나는 눈빛, 향내 나는 입과 곧고 높은 콧날이며, 붉은 뺨을 가진 얼굴에 몸매는 간드러졌으며, 손이 가늘고 허리는 나긋나긋하고, 편편한 아랫배와 풍만한 젖가슴이 농염스러운 미인이었다.
석수가 평생 처음 보는 미인의 이름은 반교운(潘巧雲)이었다.
그녀는 계주의 관리 부인이었으나 2년 전 과부가 되었다가 양웅에게 시집왔다.
석수가 형수의 예절을 차려 반교운에게 네 번 절을 하고, 교운은 석수에게 두 번 절하여 예의를 갖추었다.
그 다음 날 반공은 석수와 의논 끝에 정육점을 열기로 했다.
양웅의 집 뒷문 밖은 막다른 골목인 데다가 마침 문 옆에 빈 방이 있고 우물이 가까워 가게 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반공은 전에 자기 집에서 일하던 칼잡이를 고용하여 고기며 그릇이며 다듬잇돌과 칼을 마련하고 좋은 날을 택하여 가게 문을 열었다.
세월이 흘러 석수가 양웅과 의형제를 맺고 뒤채에 정육점을 낸 지 두 달이 지났다.
가을이 다 간 겨울 어느 날 절에서 도인이 불경을 갖고 나와 그 집 대청에 사당을 만들고 불상과 그릇과 북과 쇠종과 꽃과 등촉을 갖추어 놓았다.
그날이 바로 반교운의 전 남편 왕압사의 제삿날로 보은사(報恩寺)에서 스님을 청해 와 예불을 드리기로 한 것이다.
그날 양웅은 석수에게 당부를 했다.
“내가 지금 일을 나가면 내일 새벽에 들어오니 오늘밤일은 자네가 내 대신 질 알아서 하게.”
“형님,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양웅이 나간 후에 곧 보은사에서 중이 나왔다.
스님은 반듯하게 잘생긴 젊은 중이었다.
석수가 스님을 정중히 맞이했다.
다락 위에서 반교운이 가벼운 화장을 하고 내려와 중에게 인사를 했다.
불경을 드리러 온 젊은 중은 본래 융선포에서 관리생활을 하다가 출가한 사람으로 이름이 배여해(裵如海)였다.
그의 사부가 바로 반공의 문하생이었으므로 배여해는 반공을 아저씨라 불렀고 반교운은 그가 두 살이 위여서 사형(師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염집 부인이 젊은 중을 사형이라 부르고, 젊은 중놈이 남의 집 부인을 누이라 부르는 것부터 석수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보다 배여해와 반교운은 서로가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
석수는 그들이 처음 몇 마디 얘기를 나눌 때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낌새로 알아차렸다.
곧 이어 보은사에서 온 행자가 먼저 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더니 뒤이어 배여해가 여러 중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석수가 반공과 함께 그들을 접대하여 차를 마신 후에야 불공이 시작되었다.
스님들이 쭉 늘어앉아 북 치고 방울을 흔들며 노래도 부르고 찬불을 외치는데, 배여해는 젊은 화상과 함께 앉아서 방울을 계속 흔들면서 불공을 드린다.
그 모든 것이 반교운의 죽은 전 남편 왕압사의 극락왕생을 비는 일이었다.
그때 부인도 소복에 머리를 단정히 빗고 단 위에 올라 향을 피우고 예불을 드렸다.
배여해는 정신을 가다듬어 계속 방울을 흔들며 불경을 외우고 있는데 방 안에 모인 중들은 모두 반교운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서 불경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 107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107
제12장 사랑과 음모
제44편 미녀 반교운 44-2
향 피우는 행자는 화병을 쓰러뜨리고, 촉을 잡는 행자는 잘못하여 그릇을 들었다.
이름을 호명할 때는 송나라를 당나라로 잘못 호칭하고, 어느 구절에 가서는 왕압사를 압금이라 잘못 불렀다.
징 치는 사람은 자꾸 허공을 헛치는가 하면, 방울 흔드는 사람은 방울을 자꾸 땅에 떨어뜨리며, 가래를 두드리는 놈은 힘이 한꺼번에 몰리고, 북 치는 놈은 마음이 황홀하여 사람 손을 치고, 쇠종을 치는 놈은 눈이 어지러워 노승의 머리를 갈겼다.
그야말로 십년 고행이 허사로 돌아가고 만 개의 단단한 금도 모래가 될 판이었다.
석수는 곁에서 그 꼴을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불공이 저 지경이면 무슨 공덕이 있단 말인가.’
잠시 후 예불이 끝나고 중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잿밥을 먹을 때 석수가 지켜보니 배여해란 놈은 다른 중들 뒤에 앉아 계속 반교운 쪽을 바라보고 싱글벙글 웃고 있고, 계집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연방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눈길 사이에 오가는 것은 단지 듬뿍 실린 뜨거운 정뿐이었다.
재가 끝나고 중들이 다시 도량으로 갔으나 석수는 두 년 놈들의 눈 맞추는 꼴이 보기 싫어서 옆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도량에서는 중들이 계속 경을 읽고 절을 하며 영혼을 부르고 있었다.
사경에는 배여해가 소리 높여 경을 외는데, 발 뒤에서 반교운의 눈빛은 정염에 불이 붙어 억제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계집 하인을 시켜 배여해를 불러 소매를 덥석 잡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내일 오셔서 예불 사례금을 받으실 때 우리 아버지께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불공을 드리자고 청하세요.”
“누이, 잘 알았소.”
도량이 파한 것은 그날 밤 오경이 넘어서였다.
양웅이 돌아온 것은 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아침을 먹고 양웅이 다시 집을 나가려 하자 배여해가 찾아왔다.
반공과 반교운이 그를 안으로 맞아들여 차를 대접하고 지난밤의 수고를 사례하자, 배여해는 반공에게 죽은 부인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예불을 올려줄 것을 얘기한다.
반공은 평소에 유념하고 있던 일이어서 딴 뜻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딸에게 말했다.
“내일 나와 절에 가서 네 어머니 예불을 올려주자.”
다음 날 양웅이 새벽에 관가로 들어간 후에 반교운은 유별나게 화장을 짙게 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고, 향합(香盒)과 지촉(紙燭)을 들고, 반공과 하녀 영아(迎兒)를 데리고 보은사로 갔다.
배여해가 산문 밖까지 나와서 그들 부녀를 영접하여 수륙당(水陸堂)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예불 준비가 끝나 10여 명의 중들이 경을 읽고 있었다
반교운이 참배를 끝내자 배여해는 그녀를 이끌고 지장보살 앞에 가서 참배시켰다.
참배가 끝나자 배여해는 그들 부녀를 자기 처소로 청해 흰 찻잔에 좋은 차를 타서 대접했다.
벽에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고, 작은 탁자 위에서는 야릇한 향내가 피어올랐다.
출가인의 거처는 그윽하고 정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차를 마시고 나자 반공이 교운을 재촉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배여해는 황급히 말했다.
“참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우동이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시지요.”
배여해가 소리를 지르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이 어린 중 하나가 아주 보기 드문 과자와 모양이 특이한 채소며 여러 먹을 것을 가져왔다.
배여해는 술 한 잔을 반공에게 권했다.
“그 술 맛 참으로 희한하게 좋군.”
배여해가 반공에게 권한 술은 독주였다.
반공은 본래 술을 잘 못하는 처지에 독주 한 잔을 마시자 그만 취해 마침내 몸도 잘 가누지 못했다.
그러자 배여해는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가 벌써 취하셨군. 좀 누우셔야 겠는데?”
그는 곧 어린 중들에게 그를 부축하여 따로 떨어진 조용한 방으로 모시도록 하고 나서 반교운에게 술을 권했다.
“누이도 한잔 들어야지.”
- 108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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