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111편

2024. 12. 10. 08:32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11

수호지 제45-3

한편, 석수는 매일 저녁 점포 정리를 하고 자기 방에서 잠을 잤는데, 항상 부인의 일이 마음에 걸려 고민했지만 결단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중놈이 왕래하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매일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났는데, 어느 날 그 사건을 알게 되었다.

새벽을 알리는 중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염불하는 것을 듣고, 석수는 대충 눈치를 채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 골목은 막다른 곳인데, 저 중은 어째서 매일 같이 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할까? 뭔가 수상한 일이 있는 것 같다.”
11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석수가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목탁 소리가 들리면서 중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 뒷문 앞에서 큰소리로 염불하는 것이 들렸다.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고난을 구원하시는 부처님과 보살이시여!”
석수가 일어나서 문틈으로 내다보니 두건을 쓴 검은 그림자가 집안에서 나와 떠나고, 뒤에서 영아가 문을 잠그는 것이 보였다.
석수는 그걸 보고 혼자 말했다.

“형님과 같은 호걸이 저런 음부(淫婦)를 얻다니! 저년이 남편을 속이고 저런 짓을 하고 있었구나!”
날이 밝자 돼지고기를 문 앞에 걸어 놓고 아침 장사를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고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정오 무렵에 관아로 양웅을 찾으러 가다 마침 다리 곁에서 양웅을 만났다.
양웅이 물었다.

“아우! 어디 가는가?”
석수가 말했다.

“외상값 받으러 왔다가 형님 찾아가는 길입니다.”
“내가 관아 일로 항상 바빠서 아우랑 술 한 잔 제대로 못했네. 저기 가서 앉자고.”
양웅은 석수를 데리고 다리 아래 주점으로 들어가 이층의 조용한 방에 자리를 잡았다.

점원을 불러 술과 안주를 시켜 두 사람은 술을 마셨다.
양웅은 석수가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웅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바로 물었다.

“아우! 뭔 근심이 있나? 집안에서 누가 자네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도 했나?”
석수가 말했다.

“집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형님께서 늘 친형제처럼 대해 주시니 감히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왜 오늘은 이렇게 어려워하는가? 무슨 말이든 해도 괜찮네.”
“형님은 매일 출근해서 관아의 일을 보느라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모를 겁니다. 형수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 번 목격했지만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자세히 보게 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형님을 찾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나는 등 뒤에 눈이 없네. 자네는 누굴 말하는 건가?”
“전에 집에서 제사 지낼 때 배여해란 중놈이 형수와 눈이 맞은 걸 제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절에 혈분경을 독송하러 갔는데 술에 취해 돌아왔습니다.
근래에 어떤 중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는데, 그놈이 아무래도 수상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보니 과연 그 중놈이 두건을 쓰고 집안에서 나오는 여자와 함께 가는걸 보았습니다. 그런 음부를 어디다 쓰겠습니까?”
양웅은 크게 노하며 말했다.

“저 천한 년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형님! 일단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오늘 저녁에는 아무 말 마시고 평소처럼 지내십시오. 내일 당직을 선다고 말해 놓고 자정쯤에 다시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놈이 필시 뒷문으로 달아날 것이니 그때 제가 그놈을 붙잡아 형님께 처분을 맡기겠습니다.”
“아우 말이 옳네.”
석수가 또 부탁했다.

“오늘 저녁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내일 자네 말대로 하겠네.”
두 사람은 술을 몇 잔 마시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헤어지려고 했는데, 4~5명의 우후가 양웅을 불렀다.

“절급이 여기 계셨네! 부윤이 화원에서 절급을 찾아와 우리랑 봉술 시범을 보이라고 하셨으니 빨리 갑시다! 빨리!”
양웅이 석수에게 분부했다.

“부윤이 부르니 가 봐야겠네. 아우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석수는 집으로 돌아가 점포를 정리하고 잠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양웅은 화원으로 가서 봉술 시범을 몇 번 보였다.
부윤은 기뻐하면서 상으로 술을 권했고, 양웅은 연거푸 큰 잔으로 열 잔 정도 마셨다.

화원을 나와서 주점으로 가서 사람들이 양웅에게 또 술을 권했다.
양웅은 잔뜩 취해서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남편이 많이 취한 것을 보고 부축해 온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영아와 함께 남편을 부축하여 이층으로 올라갔다.

양웅을 침상에 앉혀 놓고 등촉을 환하게 밝혔다.
영아는 신발을 벗겨 주고, 부인은 두건을 벗겨 주었다.

양웅은 부인을 보고 있다가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예로부터 ‘술에 취하면 도리어 깨어 있을 때 해야 할 말을 한다.’고 했다.
양웅은 부인을 가리키며 욕을 했다.

“너! 이 천한 종년아! 내가 널 죽여 버릴 것이다!”
부인은 깜짝 놀랐으나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양웅을 시중들어 잠자게 했다.
양웅은 침상에 누워 잠이 들면서도 입으로는 욕을 해댔다.

“너 이 천한 년! 발정 난 더러운 년! 네년이 감히 호랑이에게 침을 뱉어? 네 손에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부인은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양웅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새벽녘이 되자 양웅은 술에서 깨어나 마실 물을 달라고 했다.
부인은 일어나 물을 떠다 주었다.
탁자 위에는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양웅이 물을 마시고 물었다.

“당신은 밤새도록 옷도 안 벗고 잤소?”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엉망으로 술에 취했기에 토할까 걱정이 되어 옷도 못 벗고 당신 발밑에서 밤을 샜어요.”
“내가 뭐라고 말을 했소?”
“당신은 평소 술버릇이 좋아서 취하면 그냥 자잖아요. 그래도 어젯밤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한동안 석수 형제와 기분 좋게 술을 마신 적이 없었으니 당신이 집에서 술을 마련하여 대접해 줘.”
부인은 대답하지 않고 침상 밑 발판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양웅이 말했다.

“여보! 내가 어젯밤에 취했지만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무슨 일로 근심하는 거야?”
부인은 눈을 가리고 울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영웅이 몇 번이나 물어도 부인은 얼굴을 가리고 거짓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양웅은 부인을 발판에서 침상으로 끌어올리고 왜 그러는지 또 물었다.
부인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애초에 나를 왕압사에게 시집보내면서 백년해로하길 바랐는데, 그가 도중에 죽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시집오게 되었는데, 당신 같은 호걸이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요? 누가 감히 당신을 괴롭히기에 나더러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거요?”
“내가 본래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 사람 말을 들을까 두려워요. 그런데 내가 말을 하면 또 당신이 화를 참지 못할 것도 두렵고요.”
“당신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내가 말할 테니 당신은 화내지 말아요. 당신이 석수를 의형제로 삼아 집에 데려왔는데, 처음에는 좋았어요.
그런데 그 후에 점점 속내를 드러내더니 당신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항상 나한테 말하기를 ‘형님이 오늘 또 안 들어오시니 형수 혼자 주무시려면 외롭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내가 부엌에서 세수하고 있는데, 그놈이 뒤에서 다가오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등 뒤에서 손을 뻗어 내 가슴을 더듬으며, ‘형수! 임신했어요?’라고 하기에 내가 손을 뿌리쳤어요.
본래는 소리치려고 했는데, 이웃이 들으면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 당신에게 이를 거라고 말하고 말았어요. 당신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는데, 당신이 엉망이 되도록 취해서 말할 수가 없었어요.
난 그놈을 씹어 먹지 못하는 것이 한인데, 당신은 오히려 석수형제에게 잘하라고만 하네요!”
양웅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욕을 했다.

“‘용이나 호랑이를 그려도 뼈까지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의 얼굴은 알아도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하더니, 이놈이 도리어 내게 배여해가 어쩌고저쩌고 지껄여댔는데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였구먼! 이놈이 당황해서 내게 선수를 치고 잔꾀를 부린 것이었어. 어차피 친형제도 아니니 내쫓으면 그만이야.”
날이 밝자 양웅은 아래로 내려와 반공에게 말했다.

“이미 잡은 가축은 소금에 절여 버리고, 오늘부터 장사 그만두십시오.”
그리고는 순식간에 계산대와 도마를 다 부숴 버렸다.

석수는 아침에 고기를 꺼내 점포를 열려고 하다가 도마와 계산대가 다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석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어찌된 일인지 알아채고 혼자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양웅이 술에 취해서 다 털어 놓았고, 그래서 눈치 챈 여편네가 도리어 내가 무례하게 굴었다고 뒤집어씌워 남편으로 하여금 푸줏간을 닫게 만들었군.
내가 변명을 하게 되면 양웅을 더욱 추하게 만들게 될 거야. 내가 일단 한 발 물러서서 다른 계책을 세워야겠다.”
석수는 자기 방으로 가서 행장을 수습했다.

양웅은 석수가 부끄러워할까봐 나가버렸다.
석수는 짐을 들고 고기 써는 날카로운 칼을 차고 반공을 찾아가 말했다.

“제가 댁에서 오랫동안 폐를 끼쳤습니다. 오늘 형님이 점포를 닫고 저더러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장부는 깨끗이 정리해 놓았으니 한 푼도 착오가 없을 겁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속였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반공은 이미 사위가 다짐을 해놓았기 때문에 만류하지 못했다.

석수는 반공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근처 골목 안에서 객점을 찾아 방 한 칸을 빌려 투숙했다.
석수는 생각했다.

“양웅은 나와 의형제를 맺었다. 내가 이 일을 명백하게 밝히지 않으면 자칫 그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가 비록 일시적으로 부인의 말을 믿고 나를 의심하겠지만, 내가 지금 변명할 수는 없고, 그에게 이 일을 명백하게 밝혀 줘야 한다.
그가 언제 당직인지 알아보고, 새벽에 일어나서 사태를 파악하자.”

석수는 객점에 이틀간 머물면서 양웅의 집 앞에 가서 정탐했다.
그날 저녁 옥졸이 이불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석수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 당직이니까, 새벽에 알아보면 되겠군.”

그날 저녁 석수는 객점으로 와서 자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칼을 차고 조용히 객점을 나가서 양웅의 집 뒷문 골목으로 가서 어두운 곳에 잠복했다.

얼마 후 중이 목탁을 들고 골목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석수는 잽싸게 중의 등 뒤로 다가가 한 손으로 중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목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꼼짝 마라! 소리 내면 죽여 버리겠다! 사실대로 말해라! 배여해가 너한테 무슨 일을 시켰느냐?”
중이 말했다.

“목숨만 살려 주시면 다 말하겠습니다.”
“살려 줄 테니 얼른 말해라!”
“배여해가 반공의 딸과 정분이 나서 매일 밤 왕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뒷문에 향 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그를 불러 집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새벽에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하여 그가 나오게 합니다.”
“그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는 지금 집안에서 자고 있을 겁니다. 제가 목탁을 치면 그가 나올 겁니다.”
“너의 옷과 목탁을 내게 빌려 다오.”
석수는 중의 옷을 벗기고 목탁을 빼앗은 다음 목을 찔러 죽여 버렸다.

석수는 승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렸다.
배여해는 자고 있다가 목탁 소리를 듣고 황망히 일어나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영아가 문을 열어 주자 배여해는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석수가 계속 목탁을 두드리자 배여해가 조용히 말했다.

“뭘 자꾸 두드리는 거야!”
석수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다가 골목 입구에 다다랐을 때 배여해를 넘어뜨리고 멱살을 잡고 말했다.

“소리 내지 마라! 소리 내면 죽여 버린다! 내가 옷을 벗길 때까지 기다려라!”
배여해는 석수를 알아보고 소리도 못 지르고 있었다.

석수는 배여해의 옷을 벗겼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발가벗겼다.

그리고는 칼로 서너 번 찔러서 죽여 버리고, 칼은 목탁 치던 중 옆에 놓아두었다.
옷 두 벌은 둘둘 말아 하나로 묶고 객점으로 돌아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다.

한편, 계주성 안에서 죽을 파는 왕공이 그날 아침 일찍 죽통을 메고 등불을 든 아이 뒤를 따라 시장으로 가다가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죽을 모두 쏟고 말았다.
아이가 시체를 보고 소리쳤다.

“아이고! 여기 중이 취해서 쓰러져 있네!”
노인이 더듬거리며 일어났는데, 두 손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 112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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