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46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2편 바람둥이 서문경 22-2
“그때 내가 저를 보고 이 어른이 바로 내게 수의감을 떠주신 시주관인이시라고 말을 하거든 대관인께서는 그녀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십쇼.
그런데 아무 대꾸가 없다면 또 글렀고, 만약에 제가 무슨 말을 하든지 대답이 있다면 일이 다섯 푼까지는 된 셈입니다.
또 내가 말하기를 ‘대관인께서는 돈을 내주시고, 이 아씨는 또 이렇듯 수고를 하여 주시니, 이 은혜를 뭣으로 다 갚나? 마침 대관인 오신 길에 내 대신 이 아씨한테 한턱 쓰세요.’라고 할 것이니 곧 돈을 내놓으십시오.
그때 그녀가 나가버리면 또 글렀고, 만약에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일이 여섯 푼은 된 것입니다. 나는 돈을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합니다.
‘아씨, 내 잠깐 나갔다 들어올 동안에 대관인 모시고 얘기나 하세요.’
그때 그녀가 일어나 집으로 가겠다면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앉힐 수 없는 노릇이니 또 글렀고, 만약에 그대로 앉아 있다면 일이 일곱 푼까지는 들어선 것입니다.
나는 곧 밖으로 나가서 안주를 장만하여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씨, 일은 천천히 하고 이리 와서 약주 한잔 드시오. 대관인께서 아씨 대접하신다고 모처럼 한턱 쓰신 게니.’
그때 한 상에서 먹고 싶지 않다고 나가버리면 또 글렀고, 만약에 말로는 가야겠다면서 몸을 꼼짝 않는다면 일은 여덟 푼까지 되어 가는 겁니다.
술이 웬만치 돌면, 나는 ‘술이 없다고 더 사오마.’하고 밖으로 나와 아주 문을 걸어버립니다.
그때 깜짝 놀라 방에서 뛰어 나온다면 또 글렀고, 만약에 내가 문을 닫아거는 것을 보고도 태연히 앉아 있다면 일은 아홉 푼까지 다 된 것입니다.
다음엔 급히 굴지 마시고 천천히 몇 마디 수작이나 하시다가 소매 자락으로 슬쩍 젓가락을 떨어뜨리십시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젓가락을 집으시는 체하고는 그녀의 발을 살짝 꼬집으세요.
그때 그만 질겁해서 소리라도 지른다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요, 그래도 가만있다면 그것은 저도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일은 아주 온전히 다 이루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내 계교가 어때요?”
서문경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했다.
“능운각(凌雲閣)까지는 못 올라갈지 모르겠네마는 아무튼 계교가 절묘하네 그려.”
“약속한 은자 10냥이나 잊지 마시우.”
“염려 말게, 한데 일은 언제 착수를 할 생각인가?”
“오늘 당장이라도 시작하죠.”
서문경은 즉시 거리로 나가 옷감 집에 가서 비단, 명주와 좋은 솜을 구해서 왕파에게 보냈다.
왕파는 반금련을 찾아가서 수의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반금련은 두말없이 응낙하고 이튿날부터 왕파의 집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셋째 날에 왕파가 방에서 나간 뒤 서문경이 마룻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는 체하고 그녀의 발등을 가만히 꼬집었어도 결코 소리치거나 몸을 빼거나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얄밉게 눈웃음치며 웃었다.
“아이, 왜 이러세요?”
일은 왕파가 예상한 대로 쉽게 이루어져 서문경은 그날로 반금련을 덮쳤고, 반금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끌어안았다.
그날부터 반금련은 매일 왕파의 집에 가서 서문경과 침실에서 어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운우의 정은 마치 아귀같이 악착같았고 옻칠처럼 끈질겼다.
그러나 예부터 좋은 일은 문밖에 새어나가지 않지만, 나쁜 일은 천 리까지 소문이 퍼진다 했다.
보름이 채 못 되어 두 사람의 뜨거운 사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어느 덧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모르고 있는 사람은 남편 무대뿐이었다.
당시 그 고을에 운가라고 하는 열대여섯 살 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늙은 아버지와 단둘이 과일을 팔아 근근이 살고 있었다.
서문경은 운가의 단골손님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운가는 배 한 바구니를 들고 서문경을 찾아갔으나 그가 집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서문경을 만나려면 자석가의 노파 집에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 4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