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44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1편 요녀 반금련 21-3
그러나 무대는 무송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무송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말 함부로 하지 마. 남이 들으면 우리 모양만 부끄러워지겠소.”
그는 곧 무송의 방으로 갔다.
“너 점심 안 먹었거든 나하고 같이 먹자.”
그러나 무송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마침내 짚신을 벗고, 가죽신으로 갈아 신고, 웃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 전대를 메고 집을 나갔다.
무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어디 가는 거냐?”
그러나 무송은 역시 아무 대답 없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무대는 곧 안으로 들어가 금련을 보고 물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리니, 대체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웬일이에요. 지은 죄가 있으니까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이지. 이제 보세요. 오늘 밤으로 사람을 보내서 짐을 찾아갈 거예요.”
과연 잠시 후에 무송은 관군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짐을 챙겼다.
무대가 쫓아나가 물었다.
“송아, 너 대체 왜 이러는 거냐? 말 좀 해봐라.”
그러나 무송은 짧게 말할 뿐이었다.
“형님, 구태여 아실 것 없습니다. 그저 저 하는 대로 내버려두세요.”
무송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무대는 동생을 붙잡지 못했으나 다음 날 아우를 만나서 그 까닭을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우같은 금련은 죄가 드러날까 무서워 선수를 쳤다.
“만약 임자가 그 녀석을 만나면 나는 이 집에서 나가버릴 테니 그런 줄 아세요.”
무대는 그 말에 꼼짝도 못하고 형제가 한 고을에 살면서도 서로 소식을 모른 채 십여 일을 보냈다.
그 무렵 고을의 현감은 부임한 후에 많은 돈을 착복했으므로 그 돈을 동경으로 올려 보내 권력 있는 자에게 자신의 승진을 부탁할 작정이었다.
“동경에 예물을 보내야겠는데 자네가 수고 해야겠네.”
무송은 현감의 분부를 받고 술과 고기와 과일을 사들고 형을 찾아갔다.
“형님, 제가 이번에 동경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내일 떠나면 두 달을 못 뵙게 됩니다. 떠나기 전에 형님께 한말씀 당부하겠습니다.
부디 아침에 늦게 나가시고 저녁에는 일찍 들어오시며 밤에는 문단속을 잘하십시오.
또 남에게 욕을 당하시더라도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모든 걸 꾹 참고 모른 체하셔야만 됩니다. 제 말씀을 들어주시겠다면 형님께서 제 잔을 받으십시오.”
무대는 잔을 받아 들고 대답했다.
“모든 일을 네 말대로 하겠다.”
무송은 둘째 잔에 술을 가득 부어 형수를 향해 말했다.
“우리 형님은 워낙 순박하신 분이라는 것을 형수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모든 대소사는 형수님께서 알아서 하셔야만 합니다.
형수님만 매사를 잘 보살피신다면 우리 형님이야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옛말에도 울타리가 튼튼하면 강아지 새끼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반금련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변했다.
“원 참, 나중에는 못 들을 말이 없겠네. 울타리가 튼튼하면 강아지 새끼가 들어올 틈이 없다니, 그게 누구한테 하는 수작이야?
말이면 다 하나? 그래, 내 행실이 어때서 그따위 말을 하지? 아이구 분해, 아이구 분해.”
그녀는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층계를 뛰어 내려가더니 분에 못 이겨 흐느껴 울었다.
무송은 형과 몇 잔 술을 더 나눈 다음에 다시 형에게 당부했다.
“형님, 안녕히 계십시오. 부디 제가 한 말씀을 잊지 마세요. 그저 무슨 일이 있든 꾹 참고 지내십시오.”
무송은 거듭 당부하고 그 이튿날 새벽 예물 실은 수레를 거느리고 동경을 향하여 떠났다.
- 4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