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45 편

2024. 9. 2. 07:44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45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2편 바람둥이 서문경 22-1

무송이 떠난 후로 10여 일 동안 무대는 아우가 신신당부한 대로 매일 아침 늦게 나가고,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귀가했다.
집에 와서는 앞뒷문을 잠가 버렸다.

그러자 반금련은 심통이 나서 무대에게 욕설을 퍼붓고 동네가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느니, 이건 무슨 흉가집이냐는 둥 며칠째 앙탈을 부렸다.

겨울이 다 가고 햇볕이 따뜻한 어느 날 반금련은 여느 때처럼 발을 걷어 들이려고 문간으로 나갔다가 실수로 발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때 공교롭게도 지나가던 한 남자의 두건 위에 발이 떨어졌다.

사내는 화를 벌컥 내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거기에는 요염한 여자가 볼을 붉히고 서 있었다.

“실수를 용서해 주세요.”
“천만에, 용서라니요?”
남자는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반금련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옆집 다방 안에서 늙은 왕파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양곡현의 약방 주인으로 유명한 바람둥이 서문경(西門慶)이었다.

그는 돈을 잘 쓰고 간사하며, 주먹과 몽둥이를 좀 쓸 줄 안다고 뽐내는 자였다.
이윽고 서문경은 다방에 앉아 왕파에게 물었다.

“왕파, 저 여자가 도대체 뉘 댁넨가?”
"저 여자야말로 염라대왕의 매씨요. 오도장군의 따님인데 그건 왜 물어보시나?“
“아, 누가 자네하고 농담하자던가?”
“그럼 정말 몰라서 물어보셨나요? 저 댁 남편이 매일 현문 앞에서 떡 장사를 하니까 잘 아실 텐데.”
그 말을 듣자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뭣이? 쭉쟁이 무대 말야?”
“바로 그렇습니다.”
서문경이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아깝구나, 아까워. 개의 아가리에 양의 고기로구나.”
이튿날 아침 서문경은 왕파의 다방을 또 찾아갔다.

그는 발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무대의 집 문전만 바라보았다.
왕파는 짐짓 모른 체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문경이 왕파를 불렀다.

“내가 마음속에 은근히 생각이 있는데, 만일 왕파가 알아맞히면 내가 돈 열 냥을 주지.”
왕파는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여보게 왕파, 내가 어제 무대의 마누라를 한 번 본 후로는 혼이 나가버렸으니 어쩌면 좋겠나? 자네가 무슨 수단을 써서 어떻게든 주선해 주면 은자 열 냥을 주겠네.”
“그렇다면 우선 대관인께서는 다섯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합니다.”
“다섯 가지 조건이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 잘나야 하고, 둘째는 기운이 좋아야 하고, 셋째는 돈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참을성이 많아야 하고, 다섯째는 몸이 늘 한가로워야 합니다.”
“그 다섯 가지라면 내가 다 가졌네.”
“그럼 대관인, 돈은 아끼지 않고 쓰시겠소?”
“그야 여부가 있나?”
“그렇다면 내게 묘한 계교가 하나 있습니다.”
“계책을 말해보게.”
“우선 비단 한 필, 명주 한 필, 생명주 한 필에 10냥짜리 상등품 솜을 사서 나를 주십시오. 그 댁네는 바느질이 아주 얌전합니다.
내가 찾아가서 대관인이 내 수의감을 떠다 주셨는데, 바느질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들어준다면 한 푼은 된 셈이오.
다음에 내가 우리 집에 와서 바느질을 해달라고 청하는데, 두말없이 우리 집으로 와서 하면 일이 두 푼 잘된 셈입니다.
대관인께서 첫날은 내게 들르지 마십시오. 둘째 날도 오지 마시구요.
하지만 그녀가 첫날 한 번 내 집에 왔다가 아무래도 제 집에서 하느니만 못하다고 둘째 날부터 안 온다면 또 글렀고, 만약에 둘째 날도 여전히 온다면 일이 서 푼은 되어가는 겁니다.
대관인께서는 셋째 날 오정쯤 해서 내게로 오십쇼. 문 밖에서 기침을 한 번 젊잖게 하시고 나를 찾으세요. 그럼 내가 곧 나와서 방안으로 모셔 들이겠소.
그때 만약 그녀가 대관인이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일어서서 나가버린다면 또 글렀고, 만약에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일이 네 푼까지는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왕파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 46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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