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3. 07:41ㆍ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39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9편 시진의 손님들 19-2
대낮부터 마신 술이 어느덧 날이 저물어 등촉을 밝히게 되었다.
송강이 술을 사양하고 화장실에 가려 하자, 시진은 곧 하인을 시켜 등잔을 밝혀 길을 안내케 했다.
송강은 하인을 따라 긴 낭하를 걸어갔다.
그가 동쪽 회랑쯤에 이르렀을 때 웬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쭈그리고 앉아 쬐고 있던 화롯불을 송강이 미처 보지 못하고 발로 차서 엎어버리고 말았다.
사내는 너무 놀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크게 화를 냈다.
“이게 웬 자식이야?”
그 사내는 무조건 송강의 멱살을 잡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어른은 대관인의 귀한 손님입니다.”
“귀한 손님이라? 나도 첨엔 귀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천 날 동안 좋은 손님 없고, 백 날 붉은 꽃은 없는 법이다. 요새 네 주인의 푸대접이 너무 심하더구나.”
그 사내가 하인의 말을 듣지 않고 주먹을 들어 송강을 내리치려 하자, 하인이 등불을 내던지고 사내의 팔에 매달렸다.
그때 시진이 쫓아왔다.
“압사 어른께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압사어른 좋아하시네. 압사도 운성현의 송압사나 된다면 모르지만 이런 압사는 내가 알 바 없소.”
“송압사를 잘 아시오?”
시진이 사내에게 물었다.
“만나 보진 못했지만 천하의 급시우 송강을 모를 이가 있겠소?”
“허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금 앞에 계신 어른이 바로 송공명이시오.”
“그게 정말이오?”
송강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내가 바로 송강이오.”
그 순간 사내는 그대로 넙죽 엎드렸다.
“몰라 뵙고 너무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눈이 있어도 태산을 못 알아 뵈온 것이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송강은 황망히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물었다.
“댁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오?”
그때 시진이 대신 나서서 말했다.
“이분은 청하현에서 오신 분으로 무송(武松)이요. 저와 함께 이곳에 머문 지가 일 년이 됩니다.”
“아니! 뉘신가 했더니? 그 이름 들은 지 꽤 오랩니다만 이런 곳에서 만나 뵙게 되다니 뜻밖입니다.”
세 사람은 후당으로 함께 돌아가 다시 술자리를 벌였다.
송강이 무송의 인물됨을 살펴보니 과연 대장부였다.
신체가 늠름하고 외모가 당당했다.
가슴이 떡 벌어져 위풍이 있었고, 말솜씨가 뛰어나며 의지와 기개가 강해 보였다.
송강은 그를 만난 것이 기뻐서 이곳에 머물고 있는 내력을 물었다.
“제가 청하현에서 술을 마시며 본부 기밀관과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그만 한 주먹에 때려뉘고 곧 이 집 대관인한테 와서 몸을 숨기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제가 때려눕힌 놈이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소문에 들으니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학질에 걸려 오한이 심해서 이렇게 매일 화롯불 신세를 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돌아가 편히 쉬시지요.”
주객이 크게 웃고, 그날 밤 삼경이 지나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원래 무송이 처음에 찾아왔을 때 시진은 그를 융숭히 대접했으나 성미가 사나운 데다가 술에 취하면 곧잘 성질을 부려 시진은 자연히 그를 멀리했던 것이다.
그 이후 10 여 일이 지나 무송은 작별을 고하고 청하현을 향해 떠났다.
- 40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