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36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8편 우연한 운명 18-2
송강은 유당으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듣고, 조개의 편지를 읽은 후에야 그들의 형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래 머물러 계시면 안 됩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오늘 밤은 달이 밝을 것입니다.”
“네, 곧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유당은 보따리에서 황금 1백 냥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나 송강은 그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유당이 여러 번 청했으나 송강은 끝내 받지 않고 유당에게 답장을 써주었다.
유당은 할 수 없이 가져온 황금 1백 냥과 송강의 답서를 봇짐에 넣고, 술집을 나서서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유당을 보낸 후 송강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에서 염파석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내 딸년이 워낙 배운 게 없어 잘못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께서 이 늙은이를 봐서 용서해 주시오.
어서 같이 집으로 가십시다. 딸년도 나리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어요.”
송강은 노파의 청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염파석의 집을 찾아갔으나 파석은 송강을 본 체도 하지 않고 평상에 누워 있었다.
“파석아, 술상 봐올 동안 모시고 이야기나 좀 하렴.”
노파가 바쁘게 부엌에서 상을 차려 왔지만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등을 돌리고 서로 외면한 채 한 마디도 없었다.
“파석아, 어서 나리께 약주를 권해라.”
파석은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리, 오늘밤에는 재미 많이 보시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슈.”
노파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송강은 그래도 혹시 계집 쪽에서 무슨 후회하는 눈치가 있을까 하여 동정을 살폈으나 여자는 여전히 목석처럼 굴었다.
밤이 이경을 넘어서자 파석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그대로 침대 위로 올라가 옷을 입은 채 벽을 향해 돌아눕고 말았다.
송강은 계집의 행동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노파를 따라 온 것이 후회가 되었으나 밤이 너무 늦어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송강은 잠을 안 자고 벽에 기대고 있다가 먼동이 틀 무렵에 밖으로 나왔다.
노파가 알아채고,
“나리, 벌써 가슈? 날이 밝거든 가시지 않고서...”
하고 만류했지만 그 말에 송강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곧 밖으로 나와 바로 집으로 향했다.
겨우 먼동이 터오는 무렵 현관문을 나서서 한참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등불이 하나 깜박거렸다.
매일 새벽에 탕약을 팔러 나오는 왕공(王公)이라는 늙은이였다.
“압사 나리, 이렇게 일찍 웬일이십니까?”
“간밤에 술에 만취가 되어 쓰러져 잤소.”
“약주가 과하셨군요. 성주이진탕(醒酒二陳湯)이라도 한 잔 잡수시지요.”
“그래, 한 잔 마십시다.”
송강은 술 깨는데 효과가 좋은 이진탕을 받아마셨다.
그가 돈을 내려고 옷 속에 손을 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돈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파석의 방 침대 난간에 걸어 놓은 채 새벽에 급히 나오느라고 잊은 것 같았다.
그 난간에 주머니가 달린 예복을 놓고 온 것이다.
그러나 예복은 둘째 치고 돈주머니가 문제였다.
돈주머니 속에 든 조개의 편지가 누출되면 더 큰 문제였다.
송강이 생각해 보니 파석이 때때로 책을 뒤적거리곤 하는 것을 봐서 계집이 글을 읽을 줄 아는 것 같았다.
송강은 몹시 당황하여 몸을 일으켰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내가 돈을 안 가지고 나왔소. 지금 곧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겠소.”
송강은 급히 파석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파석은 송강이 방에서 나간 후 침상 난간 위에 걸린 자주색 의관을 치우다가 옷 속에서 편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3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