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40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0편 경양강의 호랑이 20-1
무송은 붉은 명주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 등에는 괘나리 봇짐을 지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밤이면 여관에서 쉬고, 낮에는 부지런히 걸어 며칠 만에 양곡현에 도착했다.
해가 한낮인데다 갈증이 심했다.
멀리 주점이 눈에 들어왔다.
주점 문 앞에 세워 놓은 깃발에는 <어두워지면 고개를 넘어가지 말 것>이라는 경고의 글이 쓰여 있었다.
무송은 술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청했다.
주인이 나물 한 접시와 술 한 사발을 내왔다.
무송은 받아서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거 참, 술 맛 좋다. 여보, 주인장, 배부를 만한 안주 없소?”
주인이 대답한다.
“수육이 있죠.”
“그거 좋군, 한 두어 근 썰어 주시오.”
주인이 곧 고기 2근을 썰어 왔다.
술 세 사발을 마시고 나자 더 이상 안 준단다.
무송이 왜 술을 안 주느냐고 물었다.
“문 앞에 있는 깃발에 쓰여 있는 글 못 읽었소? 우리 집 술은 워낙 독해서 누구든 한 사발만 마시면 취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앞 고개를 못 넘어가지요. 그래서 술은 더 이상 안 드리는 것입니다.”
무송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세 사발을 먹었는데도 끄떡없단 말이오?”
“우리 집 술 이름은 투병향(透甁香)이라고도 하고 출문도(出門倒)라고도 합니다. 술 맛이 향내가 나고 순하지만 잠시 후에는 바짝 오릅니다.”
“쓸데없는 수작 좀 그만하시고 어서 술이나 주시오. 내가 술값 안 줄까봐 그러시는 거요?”
주인은 무송이 세 사발을 마시고 끄떡없는 것을 보고 술을 더 주었다.
무송은 다시 연거푸 세 사발을 부어 마시고 나더니 문득 생각난 듯 품에서 돈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말하였다.
“이거면 술값 되겠소?”
“오히려 남습니다. 거슬러 드려야죠.”
무송은 그 집에서 모두 열다섯 사발의 술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인이 따라 나오며 말했다.
“저 고개가 경양강(景陽岡)입니다. 최근에 호랑이가 나와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고개를 넘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관청에서 사냥꾼들을 풀어 몽둥이로 때려잡으려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건너는 사람들은 반드시 여럿이 모아서 낮에만 고개를 넘고 어두워지면 못 가게 되어 있지요. 지금은 초저녁인데 혼자서 술에 취해서 고개를 넘으려 하시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은 제 집에서 쉬시고 내일 사람들이 수십여 명 모이면 함께 넘도록 하시지요.”
무송은 껄껄 웃는다.
“이거 왜 이래? 나는 청하현의 남자야. 그간 경양강을 수십 번 넘었지만 호랑이가 나온단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웬 어림도 없는 수작이냐!
자네가 나를 붙들어 두고 야밤에 내 재물을 뺏고 목숨을 해칠 생각인 모양인데, 누가 네 꾀에 넘어갈 줄 아느냐?“
그 말에 술집 주인은 크게 화를 냈다.
“남이 호의를 베푸는데 그 따위 말이 어디 있소. 호랑이한테 물려 죽거나 말거나 난 모르겠으니 맘대로 하시구려.”
무송은 길을 떠났다.
한 4, 5리쯤 갔는데 길가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소나무 껍질을 깎아낸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최근에 경양강의 짐승이 사람을 해치니 혼자 넘지 말고, 여럿이 떼를 지어 고개를 넘을 것>
무송은 그 경고문을 읽고 코웃음을 쳤다.
‘이게 모두 그 놈의 술장사가 농간을 부린 것이렷다. 나그네들을 제 집에서 묵게 하려는 수작이지만 내가 속을 줄 아느냐?’
마침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는다.
언덕길을 얼마쯤 올라갔을 때 퇴락한 묘 하나가 있고, 묘문 위에도 방이 붙어 있는데, 역시 <경양강에 한 마리 짐승이 있어서 인명을 해치나 아직 잡지 못했으므로 나그네는 떼를 지어 고개를 넘어야 한다. 혼자는 고개를 넘지 말라. 목숨을 해칠까 두렵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무송은 그때서야 정말 호랑이가 나오는 것을 알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주인에게 큰 소리치고 나온 일이 체면에 걸려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 41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