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3
제4장 탁탑천왕(托塔天王)
제13편 붉은 머리 귀신 13-1
산동 제주 운성현에 새로 부임한 현감 문빈(文彬)은 그 지역에 도적떼들이 창궐한다는 말을 듣고 2명의 관리를 불렀다.
“우리 관할 지역에 도적의 소굴 양산박이 있어서 제멋대로 마을을 약탈할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도적떼들이 들끓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니냐? 너희 두 사람은 관군들을 이끌고 나가 도적떼들을 모조리 소탕하도록 하라.”
두 사람은 엄명을 받아 도적떼 토벌에 나섰다.
그 중 하나는 주동(朱同)이라는 장수로 키가 8척에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이며, 수염이 한 자 다섯 치나 되어 삼국지의 관우를 닮은 장수였다.
또한 무술이 뛰어나 사람들은 그를 불러 구레나룻이 아름답다고 미염공(美髥公)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또 한 사람은 뇌횡(雷橫)이라는 사람으로 신장이 7척에 등골뼈의 힘이 세고, 사람 키의 세 배나 되는 넓은 냇물을 뛰어 건너서 그를 날개 달린 호랑이 삽시호(揷翅虎)라 불렀다.
그날 밤 뇌횡이 2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동문을 나서 동계촌 안을 순찰한 다음 영관묘(靈官廟)에 가보니 묘소의 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뇌횡이 괴이하게 여겨 휘하 군사들과 함께 횃불을 밝히고 들어가 보니, 탁자 위에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옷을 뭉쳐 베개로 삼고 알몸으로 누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뇌횡은 무조건 그 사내를 묶어버렸다.
때는 오경이 지나 동편 하늘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뇌횡은 이제 조보정을 찾아보고 해장술이나 한잔 대접받은 후 돌아갈 생각이었다.
동계촌의 보정은 조개(晁蓋)라는 사람으로 대대로 갑부로 살고 있었다.
그는 평생 의리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며,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했고, 특히 창술, 봉술에 능하고 힘이 장사였다.
동계촌 건너편에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서계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서계촌에는 일찍이 귀신이 대낮에 사람을 홀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하루는 스님이 냇가에 푸른 돌탑을 세운 후 귀신이 동계촌으로 옮겨왔다.
그것을 안 조개는 화가 났다.
그는 곧 그 탑을 시내 이편으로 옮겨 세워 요귀를 다시 서계촌으로 쫒아버렸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탁탑천왕(托塔天王), 즉 탑을 치운 천왕이라 불렀다.
그 날 뇌횡이 그의 장원을 찾아가자 조개는 그를 맞아 술을 권했다.
“무슨 일로 이처럼 일찍 오셨습니까?”
“도적을 잡으러 나왔다 들어가는 길이지요.”
“우리 마을에 도적이 있습니까?”
“도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관묘 안에서 잠들어 있는 놈 하나를 잡았지요.”
조개는 누가 잡혔을까 궁금하여 잠깐 자리를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수상한 남자는 결박당한 채 방 안에 있었다.
조개가 방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귀밑에 붉은 점이 있고, 점 위에 누런 털이 난 사람이 범상치 않아서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온 누구요?”
그 남자가 대답한다.
“사람을 찾다가 임자 없는 묘 안에서 잠 좀 잤는데, 나를 이렇게 묶어버렸소.”
“누굴 찾고 있죠?”
“조보정이오.”
“왜 찾는 거요?”
“그 분이 천하호걸이란 말을 듣고 긴히 할 말이 있어 왔지요.”
“내가 바로 조보정이오. 아무튼 당신을 구해줄 테니, 나를 잠시 후에 보거든 외삼촌이라 부르시오. 그럼 나도 어렸을 때 멀리 떠난 내 생질이라고 할 것이오.”
조개는 후원으로 가서 다시 술을 마셨다.
- 24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