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2
제4장 탁탑천왕(托塔天王)
제12편 무뢰한 우이 12-2
피해자가 관가에서도 머리를 내두르던 우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부윤도 양지의 죄를 가볍게 처벌하여 매 스무 대를 친 다음 북경 대명부(北京大名府)로 귀양을 보냈다.
당시 북경 대명부 유수 양중서는 동경 당조태사 채경(當朝太師 蔡京)의 사위였다.
그는 일찍이 양지의 이름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지를 군사 부사령관으로 삼고 싶었으나 귀양 온 죄인을 발탁할 수 없어서 양지에게 출전을 명령했다.
“내가 너를 부사령관으로 삼고 싶으니 무술대회에 나가겠느냐?”
양지는 공손히 말했다.
“소인은 본래 무과 출신으로 일찍이 대궐의 전사부 군관으로 있었으며, 십팔 반 무예는 어려서 익힌 터라 남에게 뒤지지 않으니 기회를 주신다면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갑옷을 내려주었다.
날이 밝자 양중서는 곧 말에 올라 동곽문 교장으로 나갔다.
무술대회가 열릴 연무청 좌우에는 관원, 지휘관, 훈련관을 비롯한 군사들이 서열대로 늘어섰으며, 본부석에는 두명의 도감이 서 있었다.
이성(李成)과 문달(聞達로 두 사람은 모두 용맹한 장수들이었다.
양중서가 연무청 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본부석에는 황색기가 펄럭이고, 장대 위에는 황기(黃旗)가 바람에 나부끼며, 북과 징소리가 울리고, 범과 곰을 그린 깃발들도 펄럭이고 있었다.
북소리가 울리는 곳에 5백 명의 군사들이 각각 좌우로 나누어 서자 또다시 백기가 장대 위에 나부끼면서 말 탄 군사들이 일제히 본부석 앞에 나섰다.
양중서는 부사령관 주근(周謹)과 양지를 불러 세웠다.
“네가 비록 죄를 지어 이곳에 왔지만 전에 동경에서 전사부 제사군관을 지냈다 하니 사방에 도적의 무리가 창궐하여 나라에서 용병을 구하는 이때 네가 주근과 창을 겨루어 이긴다면 너에게 주근의 벼슬을 주겠다.”
부윤이 두 사람에게 말과 무기를 내리자, 두 사람은 연무청 앞에 나섰다.
무기는 창을 쓰되 창끝의 뾰쪽한 부분은 뽑아 버리고, 부드러운 모직물로 감싼 다음 백회를 묻혀 검은 갑옷 위에 나타나는 백회의 점을 헤아려 승패를 가리도록 했다.
그러나 주근은 양지의 적수가 아니었다.
서로 어우러져 싸우기 4,50합에 주근의 전포는 흰 점 투성이었으나 양지는 겨우 어깨에 한 점을 맞았을 뿐이었다.
양중서는 곧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 그 자리에서 주근의 벼슬을 박탈하고, 대신 양지를 부사령관에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관군도감 이성이 나와서 말했다.
“주근은 본래 창법은 약하고 말 타고 활 쏘는 데는 능숙합니다. 단지 창법에 졌다고 해서 벼슬을 박탈하면 부하들의 불만을 사게 됩니다. 주근에게 다시 양지와 궁술을 겨루게 하시는 것이 어떤지요?”
양중서는 그 말을 받아 들여 두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 활쏘기를 겨루게 했다.
그러나 궁술 역시 주근은 양지와 상대가 안 되었다.
주근이 재주를 다해 쏜 화살 3개를 양지는 몸을 틀어 피하고, 혹은 활로 쳐서 떨구고, 혹은 손으로 잡아 막았다.
그러나 주근은 양지가 쏜 첫 화살을 피하지 못하여 왼편 어깨에 맞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양지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할 때 계단 좌편에서 한 장수가 뛰어나와 말했다.
“주근이 아직 병이 완쾌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으니 소장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양지와 무예를 겨루게 해주십시오. 만약 소장이 조금이라도 양지만 못하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겠습니다.”
양지가 그를 보니 키는 7척이 훨씬 넘고, 얼굴은 둥글며 귀가 크고 위풍이 늠름하고 당당했다.
그는 대명부에서 첫 손에 꼽는 무장 삭초(索超)로 성미가 급해 무슨 일이든 먼저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양중서는 삭초의 말을 받아 들였고, 두 사람은 곧 말을 타고 대결장에서 맞섰다.
삭초는 쇠도끼를 들고, 양지는 창을 들어 50여 합을 대결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모두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병마도감 이성과 문달은 깃발을 내려 대결을 중지시키고 양중서 앞에 나갔다.
“두 사람의 무예가 뛰어나니 상공께서는 두 사람을 함께 중용하십시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두 사람에게 각각 상을 내리고, 두 사람을 모두 관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양중서는 그 후로 더욱 양지를 총애하여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삭초 역시 양지를 존경하게 되었다.
6월 보름 채태사의 생신날이 되자 양중서는 10만 관의 예물을 대궐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국에 도적들이 들끓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그는 금은보화를 대궐로 보냈으나 중간에서 도적떼들에게 약탈당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도적들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는 예물 호송장교를 군에서 뽑을 생각이었다.
- 2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