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3

2024. 7. 3. 07:25수호지


★ 수호지(水湖志) - 3

제1장 백팔마왕

제2편 고구 2-1

송나라 철종 때 동경성 개봉부

변량 땅 선무군(宣武軍)

이라는 곳에 ‘고이(高二)’라는 자가 살았다.
그는 본래 술과 여자와 잡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백수건달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달리 뛰어난 특기가 있었다.
춤 솜씨와 창 다루기, 봉술과 특히

공차는 기술은 끝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제기 구(毬)

자로 바꾸어 별명으로 고구라 불렀다.
아무튼 그는 예의를 모르는

개차반 같은 남자로 매일

순진한 양반집 아들들을 꼬셔내 술집에

출입하는 일이 일과였다.

한 번은 철물상 주인 왕원외(王員外)의

아들을 꼬여 내 오입을

시키다가 왕원외에게 들켜 고구는 관가에

고발당하여 잡혀가

곤장 스무 대를 맞고 성 밖으로 쫓겨나 임회주

(臨淮州)라는 먼 시골에서

3년간 귀양살이를 하다가 국경일에 사면을 받고

동경성으로 돌아왔다.

고구는 연줄을 찾아 부마 왕진경(王晉卿)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왕진경은 철종 황제의 매부로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가리지 않고 집안에 두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고구는 왕도 위의 심부름으로 단 왕(端王)의

처소로 가게 되었다.
단 왕은 신종황제의 열한 번째 아들로

철종황제의 아우였는데,

그림 재주가 뛰어난 데다 풍류를 좋아했다.

고구가 궁중에 들어갔을 때 단왕은 마침

여러 명의 신하들과

함께 뒤뜰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마침 단왕이 찬 공이 빗나가 공교롭게도

고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는 서슴지 않고 허리를 굽혀 두 무릎을 모으는

원앙괴(鴛鴦拐)로 능숙하게 공을 차서

단 왕 앞에 보냈다.
그것을 보자 단왕은 크게 놀라 물었다.

“너는 누구냐?”
고구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소인은 왕도위 대감의 분부로 전하께 종이와

필기도구를 바치러 왔습니다.”
단 왕이 다시 말했다.

“네 기술이 보통이 아니구나. 너도 들어와

공을 차거라.”
고구는 사양했으나 단 왕이 재차 재촉하자

마지못해 뜰로 내려와

공을 높게, 낮게, 멀리, 가까이 차는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발휘했다.

단 왕은 크게 감탄하여 그날부터 고구를

궁중에 머물러 있게 했다.
두 달이 지나 철종 황제가 돌아가고 태자가 없자,

문무백관들은

단 왕을 황제로 옹립하여 대통을 잇게 하니,

그가 곧 휘종(徽宗) 황제다.

휘종은 고구를 총애하여 추밀원(樞密院)에

근무시키고,

이어 여러 차례 승진시켜 미처 반년이 못 되는

사이에 전수부 태위

(殿帥府太尉)에 오르는 고속 승진을 계속했던 것이다.

막 나가던 건달이 공 하나 잘 찬 덕분에

아무런 공도 없이 일약

궁궐의 대신이 되는 참으로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구가 태위가 되어 관가에 첫 출근한 날 관청의

모든 관리들이 인사를 올리는데,

자세히 보니 80만 군사를 지휘하는 장군 왕진

(王進)이 빠져 있었다.
태위는 크게 노하였다.

고구가 화가 난 이유는 그가 한창 개망나니로

시장바닥을 휩쓸고 다니던

시절에 약 파는 어떤 노인을 놀리다가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 늙은이가 바로 나중에 교두가 된

왕진의 아버지 왕승이었다.

고구는 왕진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자기를

업신여긴 처사라고 생각한데다

그의 아버지 왕승(王昇)에 대한

보복감정까지 끓어올랐던 것이다.

- 4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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