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志) - 2
제1장 백팔마왕
제1편 홍태위 1-2
“저런! 바로 그 동자가 천사님입니다. 그분이 바로 도통조사(道通祖師)님이라고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천사님께서 이미 아셨으니 태위께서 동경에 돌아가시면 천사님은 이미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홍태위는 그 말을 듣고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다음 날 진인을 비롯한 도사들이 태위를 안내하여 절의
경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홍태위는 삼청전을 비롯한 아름다운 사찰 건축물들의
호화로움에 새삼 감탄했다.
특별한 곳은 월랑(月廊) 밖에 있는 한 채의 외딴 전각이었다.
그 건물은 호초를 빻아 섞은 칠로 담을 채색하고, 문은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문 사이에는 십여 장의 봉인이 붙어 있고, 처마에는 주홍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는데, 금문자(金文字)로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집은 무엇인가?”
“여기는 천사님의 선조께서 마왕을 잡아 놓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웬 봉인을 문마다 붙여 놓았느냐?”
“선조이신 당나라 때 동현국사(洞玄國師)께서 여기에 마왕을 잡아 감금하셨는데, 그 후로는 천사님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봉인을 더 붙였습니다. 함부로 열어서 마왕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자물쇠에 구리를 녹여 부었기 때문에 열 수도 없지요. 제가 이 산의 주지가 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본 적도 처음입니다.”
태위가 듣고 보니 신기한 이야기였다.
불현듯 호기심이 일어났다.
‘내 한 번 열어 보리라.’
홍태위가 진인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라. 마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진인은 완강히 거절했다.
태위는 언성을 높여 진인에게 호령했으나 진인과 도사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태위는 더욱 노기를 띠고 호령했다.
진인과 도사들은 태위의 권세가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왕보다 두려워 화공들을 불러 봉인을 뜯게 하고 철퇴로 큰 자물쇠를 깨뜨렸다.
태위는 횃불을 들고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가운데 높이 오륙 척쯤 되는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비석에 새긴 글자를 보니 글은 가득 쓰여 있는데,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이었다.
비석 뒤에는 ‘우홍이개(遇洪而開)’라 쓰여 있었다.
그 말은 곧 ‘홍가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곧 천강성의 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온 것과
송나라에 충신이 나타나는데, 그 일의 발단은 홍 씨가 된다는 뜻이었다.
홍태위는 그 글을 읽고 크게 기뻤다.
“이 글을 봐라. 틀림없이 홍 씨인 나에게 열어보라는 뜻이
아니냐! 어서 비석을 치우고 밑을 파라.”
진인은 기겁하고 말렸으나 태위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부들을 불러 비석을 치우고 석귀(石龜)를
파헤친 지 반나절이나 되어서야 아주 큰 푸른 반석 하나가 나타났다.
반석을 치우자 그 밑에 큰 굴이 나타났다.
깊이가 만 길은 되는 듯싶었다.
잠시 후 그 굴에서 아주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는데,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천둥소리였다.
그러다 굉음이 멈추면서 한 가닥의 검은 기운이
구멍에서 치올라 전각의 천정을 꿰뚫었다.
검은 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무수한
금빛을 띄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홍태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진인을 붙잡고 물었다.
“달아난 게 마왕이 틀림없소?”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선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전각에는 36원의 천강성과 72좌(座)의 지살성(地煞星),
말하자면 108 마왕(百八魔王)을 잡아다가 전각에 가둔 것인데,
만일 그것들이 세상을 떠돌게 되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을 해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태위께서 이 무서운
마왕들을 세상에 풀어놓은 셈입니다.”
홍태위는 식은땀이 나고 덜컥 겁이 나 황급히
짐을 꾸려 동경으로 떠났다.
진인과 도사들은 비석을 세우고 전각을 수리했다.
홍태위는 동경으로 돌아오면서 시종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
황제께서 아시면 무슨 벌을 내릴지 두려웠다.
동경성에 도착하니 천사는 7일간의 제사를 마치고
전염병을 다스린 후 용봉산으로 학을 타고 돌아 간 후였다.
황제는 태위의 노고를 치하했다.
인종 황제가 재위한 후 죽고 그 후로 영종, 신종, 철종이
계속 황제로 오르면서 천하는 태평성대가 계속되었다.
다만, 홍태위에 의해서 풀려난 백팔마왕들이 앞으로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가 걱정이었다.
- 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