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51

2021. 8. 2. 07:26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51화

☞ 항우에게 연이어 나타나는 흉조(凶兆)

대한(大漢) 5년.
한왕 유방이 백만 대군을 몸소 거느리고 성고성을 떠나 대정도(大征途)에 오르니 수백 리에 계속되는 군세(軍勢)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선봉대장 공희와 진하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알뜰하게 위무(慰撫)해 주는 관계로 지나는 고을의 백성들마다 한나라 군사들을 진심으로 환영해 주어 백만 대군은 거침없이 구리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구리산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한신의 사전 명령에 따라 요소요소에 부대를 배치하여 언제라도 싸울 태세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선봉장 공희와 진하가 한왕에게 품한다.

“대왕의 위덕이 워낙 높으시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환영해주고 있으니, 이는 대왕께서 천하를 통일하실 길조(吉兆)임이 분명하옵니다.”
한왕 유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환영해주는 것은 오로지 장군과 군사들이 애써준 덕택이지, 어찌 나의 덕이라 말할 수가 있으리오.”
이와 같이 군신지간(君臣之間)에 위덕과 노고를 서로 사양하니 나라 군사들의 사기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한신은 많은 첩자들을 여러 곳으로 보내 초나라에 대한 교란작전을 치밀하게 펼쳐나가고 있었다.
한신이 어느 날 한왕의 고향인 패현(沛縣)에 도착하여 보니 언덕 위에는 누각(樓閣)이 하나 있었다.

한신은 그 누각을 보자, 아무도 모르게 그 누각 위의 현판을 떼어내고, 다음과 같은 일련(一聯)의 시를 쓴 새 현판을 내걸었다.

倡義會諸侯(창의회제후)
平將道無收(평장도무수)
人心咸背楚(인심함배초)
天意屬炎劉(천의속염류)
指日亡垓下(지일망해하)
臨時喪沛樓(임시상패루)
劍光生烈焰(검광생열염)
馘斬項王頭(괵참항왕두)

(해설)
나라를 구하고자 제후들이 모여드니,
장수들은 따르지 않는 자가 없도다.
인심은 모두 초나라를 등지고,
하늘의 광채는 유 씨에게 빛나네.
어느 날 해하에서 싸움에 패하여
때를 가려 패루에서 죽으리니.
번쩍이는 검광이 불같이 세차
항우의 머리가 잘릴 것이네.

초나라 첩자들이 그 시를 읽어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시를 베껴 부리나케 팽성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보였다.
항우는 그 시를 보고 길길이 날뛰며,

“한신이란 놈이 나를 이렇게나 모독할 수가 있느냐? 내 당장 삼군을 출동시켜 한신이란 놈을 내 손으로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
하고 전군에 벼락같은 출동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이 벼락 출동령을 받은 초군 대장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하여 계포와 주란이 급히 달려와 항우에게 간한다.

“폐하! 한신이란 자가 누각 현판에 그런 글을 써 붙인 것은 폐하를 격노하게 하여 판단을 흐리게 할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오니, 그 점을 각별히 경계하시옵소서.”
그러나 워낙 화가 치밀어 오른 항우에게 대장들의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대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이 많은가? 나는 천하를 종횡하면서도 아직까지 이와 같은 수모를 당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한신이란 놈이 번번이 나를 모욕하는데, 이런 놈을 그냥 내버려두면 천하의 제후들이 나를 얼마나 업신여기겠는가?
이번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놈을 없애 버릴 것이니 전군은 속히 출동 준비를 하여라!”
그러자 주란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폐하! 지금 유방의 군세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막강하옵니다. 게다가 한신은 위계가 누구보다도 능한 장수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나가서 싸울 것이 아니라 방어 태세로 있으면서 군사도 새로 모집하여 보충하고, 군량도 풍부하게 비축하면서 군사들의 훈련을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이렇게 우리가 수비전략(守備戰略)을 세워야 후일을 다시 기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노라면, 그동안 적은 군량도 소비되고 군사들도 피로해질 것이니 우리가 그때를 보아 총공격을 퍼부으면, 한신과 유방인들 무슨 수로 우리를 당할 수가 있으오리까?
그때는 성고성과 형양성을 싸우지도 아니하고 절로 입수하게 될 것이오니 그런 방식을 쓰도록 하시옵소서.”
주란이 간곡하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우미인도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며 거든다.

“폐하! 신첩이 무엇을 아오리까마는 주란 장군의 간언은 지극히 타당하신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사랑하는 우미인조차 그렇게 나오는 바람에 용기가 크게 좌절되자, 부랴부랴 중신들을 불러들여 회의를 열고 말한다.

“주란 장군은 지금은 싸우지 말고 수비 위주의 작전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데, 다른 장수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특별히 광무공(廣武公, 이좌거)의 의견을 듣고 싶소이다.”
이좌거는 심사숙고하는 척하다가 대답한다.

“만약 폐하께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수비만 하신다면, 한나라 군사들은 폐하를 깔보고 총공격을 퍼부어 오게 될 것이옵니다.
팽성이 함락되는 날이면 폐하께서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싸우실 것이옵니까? 그러므로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전략을 택하시는 것보다는 그동안 폐하께서 싸워 오신 전략대로 적극적인 공격 위주로 나가셔야 유리하실 것 같사옵니다.”
이좌거는 항우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부추겨 놓았다.

항우가 싸움을 걸어야만 구리산으로 유인해 갈 계기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좌거가 주전론(主戰論)을 들고 나오자, 계포와 주란은 크게 못마땅해 하였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실정도 모르면서 어디다 근거를 두고 그런 주장을 하시오?”
“폐하께서 나의 의견을 물으시기에 나는 다만 나의 사견(私見)을 솔직하게 말했다 뿐이지 반드시 싸우시라고 권한 것은 아니요.
나의 의견을 채택하고 안 하는 것은 여러분의 결의에 달려있을 뿐이오. 그러나 나로서는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소.
병법에 보면 ‘수비를 하면 힘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공격을 하면 힘이 갑절로 불어난다.’는 말이 있소.
그러므로 최선의 적극적인 공격은 완만하고 대책 없는 수비에 비해 언제든지 유리한 법이오.”
이좌거가 거기까지 말하자, 항우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선생의 말씀은 과연 옳은 말씀이오. 지지리 못나게 수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 나는 선생의 말씀대로 선제공격을 퍼붓도록 하겠으니 모든 장수들은 그런 줄 알고, 출동 준비를 갖추도록 하라!”
하고 서슬이 푸르게 군령을 내린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우미인은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숙여 항우에게 말한다.

“폐하! 신첩이 각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항우는 우미인의 말에 적이 놀란다.

“아니, 황후가 새삼스럽게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다는 말인가?”
“신첩은 폐하를 모셔온 지 10년이 가깝도록 아직까지 폐하께서 직접 싸우시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본 일이 한 번도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용감히 싸우시는 광경을 꼭 한번 보고 싶사오니 이번만을 신첩을 일선까지 꼭 데리고 나가 주시옵소서. 신첩의 평생소원이옵니다.”
그것은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부탁으로 그런 부탁을 하는 우미인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까지 엿보였다.

그렇다면 우미인은 어찌하여 전에 없던 비장한 각오로 남편의 전쟁터로 직접 따라나설 결심을 한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패현 누각에

臨時喪沛樓(임시상패루)
劍光生烈焰(검광생열염)
馘斬項王頭(괵참항왕두)

(해설)
때를 가려 패루에서 죽을 것이니,
번쩍이는 검광이 불같이 세차
항왕의 머리가 잘릴 것이다.
라는 시가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미인은 누가 그 시를 써 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만약 그 시대로 된다면 남편은 이번 싸움에서 죽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비극을 당하게 되면 우미인 자신은 남편과 운명을 같이 하려는 결심에서 종군을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우미인의 내심을 알 길 없는 항우는 아내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다.

“여자의 몸으로 싸움터에 따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내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 테니 전과 다름없이 대궐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시오.”
그러나 우미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은 남편을 따라나설 결심이었기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애원하였다.

“폐하! 신첩은 폐하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폐하의 아내이옵니다. 남편의 용감하신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여자들의 공통된 소원일 것이옵니다.
신첩이 싸움터에까지 폐하를 따라 나간다면, 폐하께서는 용기백배하셔서 평소보다 더욱 용감하게 싸우실 수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신첩을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옵니까? 간곡히 부탁드리오니 이번 싸움에는 신첩을 꼭 데리고 나가 주시옵소서.”
우미인이 울며 호소하니 항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싸움터란 궁시(弓矢)가 난무(亂舞)하는 곳이어서 어쩌다 잘못되어 화살이라도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판인데, 그래도 좋다는 말인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인 줄로 아옵니다. 설사 화살에 맞아 죽는다손 치더라도 남편을 따라 나갔다가 죽는다면 무엇이 원통하오리까? 그러니 이번만은 신첩을 꼭 데리고 나가 주소서.”
“음...”
항우는 아내의 비장한 결심을 더 이상 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용감한 모습을 한 번쯤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그렇게까지 소원이라면 이번만은 데리고 나가 주지.”
항우는 마침내 아내의 요구를 쾌락하고, 즉석에서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한다.

“여봐라! 이번 싸움에는 황후께서도 동행하실 테니 황후가 타고 가실 수레를 준비하라.”
이리하여 우미인은 오두마차(五頭馬車)를 타고, 선두로 달려가는 항우를 멀찌감치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대정기(大旌旗)의 깃대가 바람에 불려 두 동강으로 부러져 버렸다.

모든 장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항우만은 그런 사소한 일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진군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옥루교(玉樓橋)를 건너고 있는데, 이번에는 항우가 타고 있는 용마 오추가 느닷없이 서녘 하늘을 우러러보며 별안간

“이히히히힝~”
하고 슬프게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 제 15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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