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53화
2021. 8. 4. 07:39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53화
☞ 한신의 십면매복(十面埋伏) 작전
한신이 이번 구리산 작전에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몰고 온 병력도 많지만, 세력이 약해진 항우를 때려 부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한신은 장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밤을 새워 가며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골똘히 짜고 있었다.
포진법(布陳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구리산 계곡에서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주역진법(周易陳法)을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밤을 새워 진법을 연구한 한신은 다음 날 아침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모든 대장들을 한자리에 소집해놓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주상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많은 싸움을 계속해 왔다. 때로는 이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참패의 고배를 마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를 무려 70여 회, 항우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약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싸움이야말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싸움으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이번 싸움에 나선 모든 대장들은 모두가 열후(列侯)에 책봉(冊封)되어 자손만대까지 영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모든 대장들은 심혈을 기울여 이번 전쟁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
모든 대장들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면 열후(列侯)에 책봉한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머리를 수그리며 이구동성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원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기겠습니다.”
이 같은 대장들의 맹세를 듣자, 마음 든든하게 느낀 한신이 즉각 군령을 하달한다.
“이번 싸움에서는 과거에 전혀 쓰지 않았던 ‘주역진법’에 의하여 ‘십면매복진(十面埋伏陳)’을 펼치기로 하겠다.
8명의 대장에게 각각 부장(副將) 16명과 정병 4만 5천씩을 줄 테니 구리산의 각각 정해진 임지로 달려가 즉각 매복하고 있다가 초군이 몰려오면 결정적인 때에 들고 일어나 그들을 쳐부수라.
첫째, 대장 왕릉은 구리산 계곡의 서북쪽에 매복하라.
둘째, 대장 노관은 구리산 계곡 북쪽에 매복하라.
셋째, 대장 조참은 동북쪽에 매복하라.
넷째, 대장 팽월은 동남쪽에 매복하라.
다섯째, 대장 영포는 동쪽에 매복하라.
여섯째, 대장 주발은 남쪽에 매복하라.
일곱째, 대장 장이는 서남쪽에 매복하라.
여덟째, 대장 장다는 서쪽에 매복하라.
이렇게 친 팔괘진(八掛陳)에 대장 하후영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대왕 전하의 뒤를 따르라.
장량과 진평 선생은 방호사(防護使)로써 각각 10만 군사와 함께 대왕 전하를 측근에서 호위하소서.
이상과 같은 명령에 즉각 대장들은 군사를 배당받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대원수 한신의 명령은 간결하고 거침이 없었다.
각 대장들은 명령에 따라 군사를 분류하여 조직을 점검하느라고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신의 계획대로 항우와 일선에서 처음으로 맞서게 될 한왕 유방이 먼저 출발하였다.
이에 공희와 진하가 군사 2만씩을 데리고 좌우 선발대로 한왕에 앞서서 진군을 시작하였고, 여마통과 여황은 군사 2만씩을 데리고 그 뒤를 따랐다.
근흠과 자무는 10만 군사를 각각 좌우로 나누어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중앙의 한왕을 겹겹이 에워싸고 그 뒤를 따라 하후영이 진군을 시작하니 그 행렬의 위용은 땅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방이 3천 기만을 측근에 거느리고 구리산 지척인 계명산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나자, 한신은 수행하던 장수들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거든 유고, 박소, 손가희, 고기, 장창, 척사 등은 각각 군사 1천 명씩을 데리고 초군의 후방을 크게 교란시켜라.
그러면 팽성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 나와 그대들을 격퇴시키려고 할 것이니 그때를 이용하여 진희, 유가, 부필, 오예 등 네 장수는 각각 정병 5천씩을 거느리고 서주(徐州)를 돌아 팽성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성문이 열리고 초군이 나오면서 그 행렬이 끝날 즈음 성안으로 밀물처럼 몰려 들어가 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항우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하라.
이어 성루에 붉은 깃발을 높이 달아 올려라. 성을 점령한 뒤에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은 각별히 명심하라!”
한신은 또 다른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관영 장군은 대왕께서 항우와 싸움을 시작하거든 즉시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 맡으라.
그리하여 항우와 20여 합 접전을 벌이다가 회해 계곡으로 쫓겨 들어오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는 맹렬히 추격해 올 것이니 그때는 양희, 양무, 양익, 여승 장군이 각각 5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강(烏江) 강변에 미리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항우를 단숨에 생포해 버리도록 하여라.
항우는 워낙 천하무쌍의 무용을 자랑하는 인물이므로 여간해서 붙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각자는 임지로 출발하라!”
대원수 한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장수들은 각각 임지로 자기가 몰고 온 병사들을 데리고 떠나가는데, 왕릉을 비롯한 몇몇 대장들이 한신을 찾아와 묻는다.
“원수께서 소장더러 구리산 북쪽에 매복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사오나 구리산은 워낙 넓고 광활하여 그 북쪽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 사이에는 초군이 가는 곳마다 진을 치고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적의 눈을 피하여 매복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장쯤 되면 지리(地理)에 정통해야 하는 법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왕릉 장군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왕릉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패현 지방의 지리를 꿰뚫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신이 웃으며 대답한다.
“병법에 아무리 정통하여도 작전지역의 지리를 몰라서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오. 구리산은 서주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인데, 계곡이 깊고 많아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가장 좋은 산이오.
항우가 이좌거에 속아 패현까지 군사를 몰고 오기는 하였으나 구리산 계곡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쯤은 군사를 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따라서 항우는 한 번 싸워 보아서 이기지 못하면 팽성으로 되돌아가 버릴 공산이 크오.
그러기에 나는 항우의 근거지를 빼앗기 위해 진희, 오예 등 네 장수로 하여금 항우가 없는 틈을 타서 팽성을 점령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소.
항우는 한 번 싸워 패하게 되면, 근거지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강동(江東)으로 쫓겨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기에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오강(烏江)에는 양무, 여승 등 네 장수를 잠복시켜 놓았소.
결국 항우는 오강을 건너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 손에 생포되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왕릉 장군은 신속히 임지에 도착하여 매복해 있어야 하오.
장군이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기 위해서 고릉 북쪽으로 황하를 따라가다가 귀덕군을 지나 우성현으로 가면 구리산 북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
왕릉은 한신의 지리의 정통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원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길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
“구리산은 구의산이라고도 부르오. 그곳에는 네 개의 산이 있는데, 동북쪽에 있는 산이 계명산이고, 서쪽에 있는 산은 초왕산, 그 뒤에 있는 산이 성녀산이오.
그 주위는 무려 2백여 리나 되오. 항우가 일단 팽성으로 쫓겨갔다가 성루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 성을 탈환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반드시 왕릉 장군이 매복해 있는 북방으로 도망쳐 올 것이니 그때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면, 제아무리 항우인들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오.
그런 줄 알고 장군은 준비하도록 하시오.”
대원수 한신의 귀신같이 치밀한 작전계획이었다.
작전계획을 듣고, 지켜보던 한왕을 비롯한 대장, 장수들은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좌중에 장수 하나가 벌떡 일어나면서 볼멘소리로 크게 외쳐댔다.
“원수께서는 저와는 무슨 원수가 졌다고 소장만은 아무데도 써주지 않으십니까?”
그 목소리가 너무도 거칠어서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행했다.
한신에게 정면으로 항의하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무양후 번쾌 장군이었다.
모든 장수와 대장들에게 제각기 중책을 맡기면서 유독 번쾌에게만은 아무런 임무도 주지 않았다.
이에 번쾌 장군은 크게 노여웠던 것이다.
한신은 번쾌의 격노하는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가 번쾌 장군에게 원수질 일이 있겠소? ‘원수’란 말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오.”
번쾌는 큰소리로 외치듯이 다시 말한다.
“주상이 포중(褒中)에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저는 여러 백 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빠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 싸움에서만은 하찮은 장수까지 모두 총동원하시면서 저만은 쏙 뽑아 버리시니 이런 수모가 어디 있사옵니까?”
한신은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정중하게 말한다.
“장군의 말씀대로 이번 싸움에서는 모든 장수를 총동원시켜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장군 한 분만 빼놓은 것은 사실이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임무가 꼭 하나 남아 있는데, 장군에게 특별히 그 일을 맡기려고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기에 만약 그 일이 실패하면, 백만 대군의 승리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번쾌는 그제야 엄숙한 자세로 돌아가며 말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오나 원수께서 그 일을 제게 맡겨 주시면, 소장은 전력을 기울여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만약 실패를 하게 된다면 군법에 돌려 참형에 처해지더라도 원망을 아니하겠습니다.”
번쾌의 말을 듣고, 한신이 숙연히 말한다.
“지금 우리는 구리산에 군사들을 십면매복(十面埋伏) 해놓고, 항우를 일거에 때려잡으려고 하고 있소. 그런데 양군이 흩어져서 싸움을 하게 되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누군가가 산 위에서 양쪽 군사들의 움직임을 관망해 가면서 우리 군이 평소에 훈련했던 대로 깃발 신호를 통해 작전을 지시할 기수(旗手) 한 사람이 꼭 필요하오.
그러니까 그 임무야말로 우리 군의 승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실전 지휘관이 되는 것이오. 장군이 그 임무를 맡아 주셔야 하겠소이다.”
번쾌는 그제야 얼굴에 희색이 돌며 간곡히 말한다.
“원수께서는 그 임무를 부디 소장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소장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한신은 그제야 정식으로 군령을 내린다.
“우리가 각 부대에서 모여든 군사를 일사불란하게 훈련시킨 효과를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펼쳐 보여야 하오.
그러니 번쾌 장군은 3천 군사를 거느리고 구리산 산상에 도착하여 적의 이동 경로를 관찰하여 깃발 하나로서 삼군을 총지휘할 준비를 하고 계시오.
만약 대사를 그르치는 날이면 군법에 회부하여 엄중히 처벌할 것이니 그 점은 미리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오.”
그러자 번쾌가 즉석에서 한신에게 반문한다.
“낮에는 깃발로 신호를 보낼 수 있지만, 야간에는 무엇으로 신호를 보내야 하옵니까? 혹시 횃불로 신호를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한신은 머리를 대번에 좌우로 흔든다.
“야간 전투에는 누구나 횃불을 이용하니까 야간에는 그냥 횃불로는 안 되오.
야간에는 이번에 훈련한대로 등롱(燈籠)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횃불과 혼동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우리 군의 색깔인 붉은 빛깔의 등롱을 써야 하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편 군사들이 야간에 싸울 때는 언제나 훈련한 대로 행렬(行列)을 지어 가면서 싸울 것이니 횃불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게 되면 적과 우리를 식별할 수가 있을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야간에는 등롱의 숫자로써 공격의 방향과 멈춤을 조절하겠습니다.”
번쾌는 한신에게 정중한 작별 인사를 고하고 구리산으로 떠났다.
한편, 항우는 많은 정찰병을 보내 적정을 탐지시켰는데, 그들이 돌아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백만 명이 넘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사기가 무섭게 왕성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우는 모든 장수들을 불러 놓고 군령을 내린다.
“적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우리는 싸우기만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나 자신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선두로 치고 나갈 테니 종이매 장군과 주란 장군은 각각 좌군 우군이 되어 나를 도우라.
나머지 30만 군사는 여섯 명의 대장들이 각 5만 명씩 나누어 진격하고, 우자기 장군은 본진을 지키고 있으라.”
항우는 군령을 내린 후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한왕 유방은 싸울 용기가 있거든 곧바로 나오라. 한신이란 놈처럼 무장답지 못하게 거짓 도망하는 수법을 쓰면 이번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유방은 갑옷과 투구로 튼튼하게 무장을 하고 철갑을 입힌 용마를 탔다.
유방은 공희, 진하 두 장수를 좌우에 거느리고, 항우가 버티며 소리치고 있는 최 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항우는 유방이 저만치 나타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유방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이곳에서 싸워 크게 패한 일이 있거늘 오늘은 무슨 용기로 이곳에 다시 나왔느냐?
그대와 나는 지난 5년여 동안에 70여 전을 치렀지만, 그대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오늘 또다시 나타났다는 말인가?”
유방이 크게 웃으면서 질책한다.
“그대는 혈기만 믿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것을 어찌 참다운 용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 그대에게 지혜로써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나왔노라.
전쟁은 혈기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써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놈아! 싸우는 데는 혈기가 제일이지, 지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항우가 벼락같은 소리를 내지르자, 유방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 제 15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