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27화
2021. 3. 31. 09:12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27화
☞ 시황제의 지방 순행(巡幸)
시황제의 지방 순행에는 언제든지 대부(大夫, 지금의 직책으로 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조고(趙高)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시황제 일행이 농서에 도착하니, 성안에는 환영 인파가 30만 명이나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입으로는 ‘시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무언가 불만과 저항의 빛이 가득했다.
그것은 불과 얼마 전에 나라를 진나라에 빼앗긴 백성들이라 정복자 진시황을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대부 조고는 그런 눈치를 재빨리 간파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는 황제의 어전에서 젊은 청년 하나를 불러,
“황제 폐하께서 지금 이곳으로 순행오신 것에 대하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청년은 황제의 발아래 엎드려 울면서 대답했다.
“성은이 망극하옵게도 황제께서 저희 지방에 임어(臨御)해 주시와, 저희 민초들은 감격의 눈물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고는 그 청년의 말을 시황제에게 그대로 고한다.
“폐하, 이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시옵소서. 황제 폐하의 성덕이 전국 방방곡곡에까지 골고루 퍼져서 만천하가 태평성대를 구가(謳歌)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고가 미리 꾸며둔 조작극(造作劇)1)이었다.
조고는 워낙 간지(奸智)가 발달한 인물인 지라 예의 그 청년을 돈으로 매수하여 황제 앞에서 그렇게 대답하도록 미리 꾸며놓았던 것이다.
※ 조작극(造作劇)1)은 과거 자유당 시절, 시장을 둘러보는 이승만 대통령이 계란 10개들이 한 꾸러미 값을 묻자, 100환(지금 돈 10원)이라는 대답을 듣고, 시장 상인의 한 달 수입을 묻고는 만족해했다는 일화와 같음.
그러나 그러한 내막을 알 턱이 없는 황제는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태평성대를 마음껏 누리게 하리라.”
농서에는 계두산(鷄頭山)이라는 높은 산이 있었다.
황제가 계두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굽어 살펴보니, 저 멀리 하늘가에 오색영롱한 구름이 몇 조각 떠돌고 있었다.
“저게 무슨 구름이냐? 저 구름이야말로 이상한 구름이 아닌가?”
하고 시황제가 묻자 조고가 대답한다.
“글세올습니다... 수행원 중에 송무기(宋武其)라는 점성사(占星師)가 있사오니, 그를 불러 물어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점성사 송무기가 급히 불려와, 구름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아뢴다.
“구름에는 상운(祥雲), 채운(彩雲), 제운(霽雲), 경운(慶雲) 등 여러 가지 구름이 있사온데, 지금 저것은 구름이 아니옵고, 단순한 운기(雲氣)일 뿐이옵니다. 저 운기에는 요기(妖氣)가 감돌고 있사온데, 저 요기를 제압해 없애버리시려면, 황제께옵서 남방으로 행차하시어 추역산 정상에 거대한 돌로 황제의 공덕비(功德碑)를 세우시면 될 것이옵니다.”
시황제는 요기가 발동했다는 말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으나 자기 자신의 공덕을 기려 공덕비를 세우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으므로 즉석에서,
“그러면 지금 바로 ‘추역산’으로 가보자!”하고 명령을 내렸다.
‘추역산(鄒忌山)’은 농서에서 동남방으로 5백여 리나 떨어져 있는 태산이었다. 황제 일행이 추역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황제 전용 도로’를 닦아야 했다.
※ 註)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과 인권문제로 사이가 무척 좋지 않게 알려져 있는 미국 카터 대통령은 선거에서 주한 미군 감축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인권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인권문제에 상당히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카터가 방한했을 때 우리가 숙소로 제공하겠다는 5성급 호텔도 거부하고, 미 제2사단 병영 내로 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카터가 의정부에서 잠을 자는 그 시간에 경계 근무를 나가는 초병의 소총에서 공이를 모두 회수하여 중대본부 행정반 사무실에 보관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소총의 공이는 실탄을 발사하는 중요한 부속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들은 익히 잘 알 것이다.
재선에서 실패한 카터가 실토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그는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는 그 당시 자신이 한국이 처한 현실을 잘 모르고 했던 공약이었다.”고 고백한 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는 다르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 미스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삼가 경의를 표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카터의 솔직함을 좀 배우라고 권유하고 싶다.]
얼마 후 시황제 일행은 백성의 피땀으로 급조(急造)된 ‘황제 전용 도로’를 이용하여 추역산으로 행차하던 도중 갑자기 세찬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는데, 황제 일행은 길가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수가 있었다.
비가 그친 후 황제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느티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는데, 우리나라 조선 왕조 때에도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에 대한 고사가 있다.
이렇게 시황제가 추역산(鄒忌山)에 당도해 보니, 추역산은 정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2백 여 리가 한 눈에 굽어보이는 명산이었다.
시황제는 점성사 송무기를 다시 불러 물어본다.
“계두산 상공에 감돌고 있는 요기를 제압해 버리려면, 이 산꼭대기에 짐의 공덕비를 세워야 한다고 했겠다?”
송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허공 중에 떠돌며 배회하는 요기를 제압할 수 있는 방도는 오직 이 산성에 성상의 위업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는 길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면 이 산성에 짐의 공덕비를 세우도록 하라. 공덕비를 크고 무겁게 할수록 효과가 클 것이니, 이왕이면 거대하게 세우라.”
이리하여 추역산 정상에 시황제의 거대한 공덕비가 세워졌으니,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제, 천위(天位)에 임하시사 관제를 새롭게 제정하시고, 법도를 분명히 밝혀 놓으시니 만천하의 백성들이 한결같이 복종하여 사상 처음으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도다. 이로써 치세의 도를 천지와 더불어 운행하시니, 대의(大義)가 소명(昭明)하여 만백성들의 생업이 날로 번성해 가도다. 황제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신 이후 날이면 날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국리민복(國利民福)에만 전념하시니, 귀천(貴賤)이 융통하고 상하가 융합하여 황제의 덕화(德化)는 천지와 더불어 무궁하도다.”
황제는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자신의 공덕비문을 읽어 보고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그리하여 점성사 송무기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황제는 함양으로 돌아오다가 지부산에도 올라가 보았는데, 그곳도 경치가 매우 빼어나므로 그 산 위에도 똑같은 공덕비를 또 하나 세우게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낭아산(狼牙山)에 들렀을 때에도 눈앞에 펼쳐진 황해 바다의 경치 또한 너무도 뛰어나 그곳에서는 석 달 동안이나 체류하면서 그곳에도 또 하나의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게 하였다.
이렇게 공덕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봉건왕조시대(封建王朝時代) 전제군주(專制君主)들의 공통적인 생리인지도 모른다.
※ 오늘날에도 북한 김정은의 공산 왕조는 말할 필요도 없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까지도 북미회담을 잘 이끈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북한이 더 큰 도발을 하지 않고, 이 정도의 평화를 구축했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 제 28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