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26화

2021. 3. 30. 09:12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26화

★ 秦始皇(진시황), 폭정의 시작

진왕 ‘정(政)’은 6국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나자, 문무백관들을 함양궁(咸陽宮)으로 불러들여 천하통일의 축하연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진왕은 그 자리에서 문무백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시를 내린다.

“나는 오늘날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소. 이제는 어느 누가 감히 나에게 싸움을 걸어 올 것이오? 앞으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니, 전국에 있는 무기는 모조리 거두어들여서 무쇠로 녹여가지고 철인(鐵人)을 만들도록 하시오. 나는 궁정(宮庭)에 철인들을 장식물로 세워 두고, 전국시대를 회상하며 평화를 즐기도록 하겠소. 그리고 과거에도 성왕이 많았지만, 나처럼 천하를 통일한 제왕은 나 말고 또 누가 있었소?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대왕’이라는 칭호가 너무도 왜소하게 느껴지는 바이오.”
그리고 승상 이사(李斯)를 돌아보며 물었다.

“승상은 역사에 밝으시니까 하나 묻겠소. 오늘날까지 역사상 위대한 임금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었소?”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역사상 위대했던 임금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있사옵니다.”
“삼황이란 누구이며, 오제는 누구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삼황이란 고대의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세 임금을 말하는 것이옵고, 오제란 그 다음 시대의 소호(小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의 다섯 임금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성업을 나의 천하통일과 비교한다면, 어느 편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소?”
실로 오만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신들은 약삭빠르게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삼황오제가 제아무리 성군이셨다 하기로 그들의 업적을 어찌 감히 대왕의 천하통일 대 성업에 비교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왕은 그 아부성 답변이 만족스러워 호탕하게 웃으면서 승상 이사에게 다시 물었다.

“삼황오제의 업적과 나의 업적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말들 하는데, 승상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사가 대답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옵니다. 삼황오제가 선정을 베푸셨다고는 하나, 그것은 일부의 지방에만 국한되었을 뿐이었고, 대왕께서는 천하를 통일하셨으니 어찌 삼황오제의 업적과 비교할 수 있겠사옵니까?”
“옳은 말씀이오. 업적이 별로 대단치도 않았던 그들이 ‘삼황오제’로 불려 왔다면, 나에 대한 칭호도 무언가 새롭고 다르게 불려야 옳지 않겠소?”
춘추전국시대에는 크고 작은 국가가 70여 개나 되었고, 그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임금을 한결같이 대왕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모든 국가를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한 지금에 와서는 그 흔한 대왕이라는 칭호보다는 진왕은 조무래기 ‘대왕’들과 현저하게 차별되는 ‘새로운 임금’이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는 칭호로 불리고 싶었던 것이다.

승상 이사는 진왕의 그러한 심리를 재빠르게 알아듣고, 머리를 조아리며 품했다.

“천하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신 지금에 와서는 ‘대왕’이라는 칭호는 너무도 왜소하고 부적절한 칭호인 줄로 아뢰옵니다. 고대에는 성군을 ‘천자(天子)’라고 불러왔사오니, 오늘부터 대왕께서도 ‘천자’로 하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천자! 천자라는 칭호는 ‘하늘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오? 그 칭호도 나쁘지는 않으나 ‘천자’라는 칭호는 남들이 이미 써 오던 칭호가 아니오? 그보다는 ‘삼황오제’처럼 나의 업적을 뚜렷이 나타내 보이는 새로운 칭호로 불리고 싶구려.”
“물론 그러셔야 하실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어떤 칭호로 부르게 하심이 좋으시겠나이까?”
진왕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문득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별로 대단치도 않았던 임금들조차 삼황이니, 오제니 하고 불려왔던 모양이나, 나의 경우 ‘삼황오제’를 하나로 뭉친 ‘황제(皇帝)’라고 부르면 어떻겠소?”
진왕의 그 제안에 승상 이사는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탁월하신 착상이시옵니다. 대왕께서는 ‘삼황오제’의 모든 업적을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신 업적을 이룩하셨으므로 칭호 또한 마땅히 ‘황제’로 불리셔야 함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이리하여 그날부터 진왕 ‘정’은 ‘황제’라는 새로운 칭호로 부르게 되었고, 진왕은 ‘황제’라는 새로운 칭호가 매우 만족스러운지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 손으로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 내려가며 황제의 자리를 누리게 될 것이오. 그러므로 내가 첫 번째 황제이므로 나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고, 그 다음 대에는 ‘이세 황제’, ‘삼세 황제’로 부르게 하겠소. 이렇게 이 나라는 나의 자손들이 만대를 누려가며 통치하게 될 것이오.”

이리하여 진왕은 그날부터 자기를 ‘시황제’로 부르게 하였는데, 진(秦)나라의 첫 번째 황제라는 뜻으로 ‘진시황(秦始皇)’이라 불리기도 한다.

※ 註) 기원전 221년 진왕 ‘정’이 전국 육웅을 제압하고, 중국 최초로 전국을 통일하였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그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갑자기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한 역사학자 E. H Carr 교수의 말이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진시황이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후 2,239년이 지난 2018년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약칭 全人大)에서 기존의 법을 뜯어고쳐 21세기 중국에 또 다른 시황제가 탄생했으니 그가 바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다.
세계의 언론은 시진핑을 가리켜 그렇게 불렀다.
아마도 시진핑은 푸틴을 보고 배웠으리라!

2,200여 년 전 진시황은 재위 26년 만에 전국을 통일하였으나 망하는데는 불과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전해져 오는가?

權不十年(권불십년),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고,
月滿卽虧(월만즉휴), 物極必反(물극필반)이라.

그러나 시황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왕들은 자기 자신을 ‘과인(寡人)’이라 칭해 왔었소. 그러나 대왕이 아니고 황제인 나에게는 그 말도 격에 어울리지 않으니 그 말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소?”
승상 이사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과인’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수많은 대왕들이 써온 어휘이므로 황제께는 적합하지 않사옵니다. 하오니 황제께오서 신하들에게 자신을 지칭하실 때에는 ‘짐(朕)’이라고 하심이 어떠하올런지요?”
“짐이라!. 짐이란, 어떤 글자를 쓰는 것이오?”
“짐이란, 나 짐(朕) 자(字)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내 자신을 말할 때에는 ‘짐’이라고 하겠소. 그 대신 ‘짐’이란 말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황제께서 쓰시는 ‘짐’이라는 말씀을 어느 누가 감히 쓸 수 있으오리까?”
이리하여 ‘황제’와 ‘짐’이라는 말은 진시황에 의해 최초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시황제는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어 각 고을 군수를 직접 임명하는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를 확립하고, 모든 법률도 전국에 획일적으로 통하도록 조정하였으며, 도량형(度量衡, 길이, 부피, 무게)도 전국이 동일하게 쓰도록 하였다.

진시황은 이렇게 국기를 다져 놓고 나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12만 호에 달하는 부호(富豪)들을 모두 다 함양으로 불러들여 수도에서 함께 살게 하는 동시에, 자신도 아방궁(阿房宮)이라는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궁궐(宮闕)을 새로 지어 전국의 젊고 아름다운 미녀 3천여 명을 아방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여 자기 자신의 묘궁(墓宮)도 축조하도록 하였는데, 그 가묘(假墓)는 봉분의 높이가 4백 자에 길이가 2천 자에 이르고, 내부에는 축소한 황하와 양자강까지 만들어 놓고, 물 대신에 수은을 흐르게 함과 동시에 수많은 제장(諸將)과 제졸(諸卒)의 호위 군사 상(像)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그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던 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 시대에는 이러한 거대한 토목 공사가 수없이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공사가 오로지 백성들의 부역(賦役)으로 충당되었으니 천하 통일의 기쁨은 오직 진시황 한 사람에 국한되었고, 백성들은 언제나 부역과 세금 수탈로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승상 이사는 법치주의자(法治主義者)로 때때로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공표하고,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죄질에 따라 오형(五刑)에 처하도록 하였다.

五刑이란,
1) 얼굴에 글자를 새겨 넣는 형벌
2) 코를 베어 내는 형벌
3) 남의 여인을 사사로이 범한 사내의 불알을 까버리는 형벌
4)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음행을 저지른 여자의 음부 돌기를 잘라내는 형벌
5) 살인을 한 자는 거리에서 허리를 잘라 죽이는 형벌 등 다섯 가지의 형벌을 말한다.

시황제는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져 놓고 나자, 그때부터는 낮에는 사냥을 즐기고, 밤이면 아방궁에서 미녀들을 불러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가 40세였다. 그때까지 40 평생을 전국 통일의 전진(戰塵) 속에서만 살아왔으니, 천하를 제패한 이제부터는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상 이사는 시황제의 이러한 생활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바가 있어 하루는 이렇게 간한 일이 있었는데,

“자고로 성군은 천하를 끊임없이 순회하시며 민정을 소상하게 살피시와 모든 민원을 정치에 반영시켰사옵니다. 황제께오서는 오늘날처럼 구중궁궐(九重宮闕)에 앉아만 계셔서는 천하의 고질(痼疾)을 어찌 아실 수 있사오리까? 하오니 차제에 황제께서도 전국을 두루 순회하시며 민심을 두루 살피심이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시황제는 그 간언을 좋게 여겨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거 참 좋은 말씀을 해주셨소. 그렇지 않아도 짐은 짐의 나라 모든 국토를 짐의 눈으로 직접 돌아보고 싶었소이다. 우선 농서 지방으로 떠나도록 할 것이니 짐의 행차에 불편함이 없도록 농서까지 새로운 길을 닦아 놓도록 하시오.”
함양에서 농서에 이르는 길은 첩첩산중으로 가로막혀 있는 멀고 먼 천리 길이었다.

그 험난한 곳에 황제의 수레가 지나갈 황제전용도로(皇帝專用道路)를 새로 닦아 놓자니 거기에 죽어나는 사람들은 백성들뿐이었다.

만여 명이 한 달 동안이나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며 새 길을 닦았지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 같은 노고에는 추호의 배려도 없었다.

이윽고 시황제가 지방 순행길에 올랐다. 황제가 타는 ‘온량거’는 창문이 여섯 개나 있는 거대한 수레였다. 거기에는 시녀도 10여 명이나 동승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앞뒤에는 각각 5천 여 명의 기마대(騎馬隊)가 호위하였고, 이를 뒤따르는 무리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들은 음식과 예복(禮服), 침구류와 의료 등을 전담하는 행렬이었다.

이렇게 거창한 시황제의 행차가 있을 때, 그가 탄 온량거가 진행하는 좌우편 길가에는 황제를 전송하고 영접하는 백성들의 도열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였고, 그들은 온량거가 지날 때 마다 ‘시황제 폐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야만 했다.

시황제는 그때마다 온량거 창문을 열고 손을 들어 백성들의 환호에 답하며, 백성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황제의 시혜’라며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가에 엎드려 그를 영접하는 백성들은 모두가 진에게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어서 개중에는,

‘우리나라를 빼앗은 자가 바로 저 놈이구나!’
하고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진 자가 없지 않았지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 같은 원성을 개의해 본 일조차 없었다.

‘개, 소, 돼지 같은 것’들에게 나의 거룩한 얼굴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자비로운 성군이냐?’
진시황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제 027화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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