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28화

2021. 4. 1. 07:15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28화

☞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해오라.

시황제가 지방 순수(巡狩)를 마치고 함양에 다시 돌아온 것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이었다.
황제가 오랜만에 환궁을 하게 되자, 맏아들 부소(扶蘇)와 둘째 아들 호해(胡亥)가 만조백관들을 거느리고 함양성 백 리 밖까지 마중을 나왔고, 그날은 아방궁에서 성대한 환영연이 베풀어졌다.

때는 화창한 봄날이어서 아방궁 정원에는 천자만홍(千紫萬紅)이 만발하였다.
황제는 만조백관들과 더불어 취흥이 도도해지자,

“짐은 이번 지방 순행에서 많은 소득이 있었소. 이제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지방 순행을 꾸준히 다닐 것이오.”
하고 말하니 만조백관들은 허리를 굽히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태평성대는 일월과 더불어 영원히 계속될 것이옵니다.”
하고 일제히 제창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시황제가 현경전(顯慶殿)에 나와 정사를 살피는데, 여독(旅毒)이 덜 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용상(龍床)에 앉은 채 깊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

그런데 꿈에 홀연히 푸른 옷을 입은 동자와 붉은 옷을 입은 동자 둘이 나타나더니 진시황의 옥새(玉璽)를 서로 빼앗으려고 싸움을 하는 게 아닌가?
이에 시황제가 크게 노하여,

“이놈들아! 네 놈들은 어디서 온 놈들이기에 감히 옥새를 빼앗고자 싸움질을 하고 있느냐?”
하고 호통을 치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저는 옥새를 가져가려고 동방에서 왔사옵니다.”
하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저는 옥새를 가져가고자 남방에서 달려 온 몸이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시황제는 그 대답에 더욱 노하여 가죽 채찍으로 두 아이를 마구 후려쳤지만, 동자들은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시황제를 놀리듯 깔깔대는 게 아닌가?
시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마침내,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저놈들을 당장 끌어내 능지처참을 하도록 하라!”
하고 호통을 치다가 자기 고함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으음...”
그런데 꿈이 너무도 흉측한 탓이었던지 꿈에서 깨어 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그놈들이 옥새를 서로 가져가려고 했다면, 누군가가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시황제는 몹시 불쾌했으나 꿈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흉몽(凶夢)을 꾸고 난 다음부터 시황제는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느 놈이 감히 나의 자리를 노린단 말인가? 그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지금으로 보아서는 자신에게 도전해 올 사람은 아무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꿈만은 틀림없는 그런 의미의 꿈이 아니었던가!

시황제는 문득 계두산 위에 이상한 광채를 띤 구름이 감돌았던 일이 떠올랐다.
점성사 송무기는 그 구름을 ‘요기가 서린 운기’라 하면서 그 요기를 없애려면 추역산에 황제의 공덕비를 세워야 한다고 말을 했었고, 그의 말대로 거대한 공덕비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웬 청동자, 홍동자가 나타나 옥새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는 흉몽이란 말인가?
시황제는 며칠을 두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 하루는 점성사 송무기를 불러 넌지시 물어 보았다.

“짐이 근간에 꿈자리가 매우 사나운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떤 꿈을 꾸셨사온지 꿈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소인이 정성껏 풀어 올리겠사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위신상 꿈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해줄 수가 없어서 다음과 같이 얼버무렸다.

“꿈을 꾸고 나서는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으나, 어쨌든 꿈자리가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니까, 거기에 대한 무슨 예방책이 없겠나?”
“단순히 꿈자리가 사납기만 하셨다면, 그것은 폐하께서 오랜 여행으로 심신이 피로해지신 탓일 것이옵니다. 그것을 치유하시려면 보약을 쓰실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해다 드시면 어떠하시겠나이까?”
“뭐라고? 장생불로초? 세상에 그런 약초가 있단 말인가?”
시황제는 ‘장생불로초’라는 말에 귀가 번쩍하였다.

“예, 해동국(海東國) 조선(朝鮮) 땅에는 영주(瀛州, 한라산), 봉래(蓬萊, 금강산), 방장(方丈, 지리산)의 삼신산이 있사온데, 그 산에는 장생불로초라는 선초가 있다 하옵니다. 그 선초를 달여서 먹으면 영생불사(永生不死)한다 하오니, 황제 폐하께서는 사람을 보내시어 그 약초를 구해다 드셔보도록 하시옵소서. 그러시면 폐하께서는 영원히 생존해 계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송무기의 말을 들은 시황제의 얼굴에는 환희로 넘쳐났다.

지금 같은 영화를 누려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영생불사’라는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아서 송무기에게 다시 물었다.

“그대는 그런 선초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송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인이 직접 선초를 본 일은 없사오나, 장생불로초에 대해서는 방사(方士, 신선의 도를 닦고 있는) 서시(徐市)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서시란 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서시는 신선(神仙 ) 도(道)를 닦고 있는 소인의 벗이온데, 그가 지난날 삼신산에 가보았더니, 삼신산에는 장생불로초를 먹고 영생불사 하는 4, 5백 살 먹은 신선들이 수없이 많았아온 바, 그들은 나들이 갈 때에는 학을 타고 다니더라고 하였습니다.”
시황제는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서시란 도인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송무기가 대답하는데,

“서시는 마침 소인의 집에 유숙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본인을 직접 불러다가 물으시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 도인을 곧 이리로 불러오도록 하라!”
시황제의 황명에 의해 서시가 즉시 어전으로 들어왔다.

서시는 풍채가 늠름하고 백발이 성성한 것이 첫눈에 보아도 선풍도골(仙風道骨)로 보였다.
그러자 시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수그러져,

“도인은 일찍이 삼신산에 가서 장생불로초를 직접 자신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하고 존댓말을 써가며 물었다.

“예, 사실이옵니다.”
“삼신산에는 신선이 많아서 그들은 학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오?”
“예, 그것도 사실이옵니다.”
시황제는 놀란 듯이 혀를 차며,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삼신산에 가면 장생불로초를 구해 올 수 있겠소?”
“물론 구해 올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 도인은 짐을 위해 삼신산에 가서 장생불로초를 구해다 줄 수 있겠소?”
“............”
황제의 부탁에 대해 서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아니 하시오. 도인은 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그러자 서시는 담담하나 의연하게 말을 이었다.

“황명을 거역할 뜻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그러나 삼신산에 들어가 장생불로의 선약을 구해오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야 하옵니다.”
“어떤 조건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그 조건을 어서 말해 보시오.”
서시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대답한다.

“소인이 삼신산에 들어가 선약을 구해오려면 동남동녀(童男童女) 각각 5백 명과 금은보화(金銀寶貨)를 많이 가지고 떠나야 하옵니다.”
“동남동녀를 5백 명씩이나 데리고 떠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짐은 그 이유를 모르겠구려.”
서시가 조용히 대답한다.

“영생불로초는 워낙 신령하기 짝이 없는 영초(靈草)인 까닭에 바로 발 뿌리 앞에 있더라도 신선들의 눈에만 보일 뿐 보통 사람들 눈에는 결코 보이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성을 경험하지 않은 동남동녀만은 영생불로초를 볼 수 있으므로 선초를 구해오려면, 동남동녀를 많이 데리고 떠나야 하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에 더욱 감탄하였다.

“신선과 동남동녀의 눈에만 보인다면 영생불로초야말로 영험한 약초가 분명하구려. 그러면 도인의 말씀대로 동남동녀 5백 쌍과 금은보화를 부족함이 없도록 줄 테니 영생불로초를 기필코 구해오시오. 그런데 시일이 얼마나 걸리면 돌아오실 수 있겠소?”
“영생불로초는 워낙 희귀한 영초인 까닭에 그것을 찾아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아무리 빨라도 일 년 내지 이 년은 걸릴 것이옵니다.”
“이년이나? 시일이 너무 길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될수록 속히 다녀오시오.”
이리하여 방사 서시는 동남동녀 5백 쌍과 많은 금은보화를 10척의 대선(大船)에 나눠 싣고, 영생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해동국 조선 땅을 향하여 떠났다.

시황제는 서시를 해동국 조선 땅으로 보낸 이후에도 지방 순행을 끊임없이 다니면서 서시가 영생불로초를 구해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멍청한 시황제라 아니할 수 없다 하겠다.

그러나 해동국 조선이란 나라로 떠나간 서시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건만 돌아오지 않았다.
시황제는 서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하루는 방사(方士) 노생(盧生)을 불러 명했다.

“방사 서시가 영생불로초를 구한다고 해동국 조선 땅으로 떠나간 지 3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그대가 조선으로 가서 서시를 찾아오도록 하오.”
노생은 황명을 받고 마지못해 황해 바닷가로 나와 보았다.

그러나 만경창파 넓은 바다에는 검푸른 파도만 넘실거릴 뿐, 해동국 조선 땅이 어느 하늘 아래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 註) 해동국(海東國) 조선 땅에 도착한 서시 일행은 끝끝내 본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애시당초 그가 말했던 영생불로초란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서시가 처음부터 산자수명한 조선 땅에서 살고 싶어 진시황에게 영생불로초를 구한다는 구실로, 많은 금은보화와 동남동녀 5백 쌍을 데리고 떠났는지 모른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인삼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바, 그 중에서도 부정을 타지 않은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산삼이 아닌가 싶다.
산삼을 캐러 가는 심마니들은 지금도 출발 1주일 전부터는 부인과 관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가 매우 많은데, 어쩌면 그것은 당시 서시와 동행했던 동남동녀 5백 쌍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성씨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방사 서시는 5백 쌍의 동남동녀들과 함께 본국에는 영영 돌아가지 않았다.
해동국 조선 땅에 한 번 들어온 사람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도 후한 조선 땅 말고 다른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은가 보다.

- 제 2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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