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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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김삿갓 14화
#방랑시인 김삿갓-014화 [입석봉 시승(詩僧)] 입석봉(立石峰)은 글자가 말해주듯 깎아지른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은 짐승의 형상을 한 것도 있지만 발돋움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상도 있었다. “가히 만물상이로군!” 김삿갓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헌데 시승은 어디에 살고 있단 말인가?” 그는 바위 천지인 봉우리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시선이 머무르는 한 곳이 있었는데, 둥그스런 큰 바위 아래로 노송 가지가 휘늘어진 밑에 초막 같은 암자가 빼꼼히 보이는 것이다. 김삿갓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바삐 걸었다. 길은 바위 사이로 나있는 사람이 발로 밟은 자욱이 있는 구불구불 바위 사이 길로 자칫 발을 잘못 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면 송곳 같은 바위 끝에 뼈가 으스러질 ..
2020.08.24 -
김삿갓 13화
#방랑시인 김삿갓-013화 [矗矗金剛山 三夜宿靑天(우뚝 솟은 금강산 사흘 밤을 청천에서 잠이 드네)] 松松栢栢岩岩廻(송송백백암암회) 소나무 잣나무 바위를 돌아보니, 水水山山處處奇(수수산산처처기) 물도 산도 곳곳이 기묘하도다. “허~ 이거 천하의 명시일세!” 선비들은 글을 읊조리고 나서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들은 이미 금강산을 두고 읊은 수많은 시를 많이 보아온 터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쉬운 글자만 사용하여 딱 두 줄로 간결하게 적은 것은 처음이다. “허어, 금강산의 경치를 이렇듯 쉽게 나타내는 방법도 있었구먼.” 누군가는 탄식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금강산 곳곳의 절경 앞에 할 말을 잊고, 이것을 글로 옮길 적당한 문구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2020.08.23 -
김삿갓 12화
#방랑시인 김삿갓-012화 [김삿갓의 대필(代筆) 시(詩)] “과연 명승절지(名勝絶地)에 명승(名僧)이 계시군요. 불초 감히 고명하신 분과 겨룰 수야 없습니다만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시주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글이라면 그 스님도 뒤지지 않으시는 분이나 가신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셔야 할 겁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스님은 누구든 찾아오는 손님은 글을 알든 모르든 글 실력을 시험해 보십니다. 그래서 상대는 안 되지만 실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쾌히 대접을 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장으로 후려쳐 쫓아버립니다. 물론 시주께서는 좋은 상대가 되시겠습니다만...” 김삿갓은 갈수록 흥미를 느꼈다. “거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만약 겨..
2020.08.23 -
방랑 시인김삿갓 11화
#방랑시인 김삿갓-011화 [若捨金剛景 靑山皆骨餘(만약 금강산의 경치를 버린다면 청산은 모두 뼈만 남으리라)] “참 좋습니다.” 선비들은 무릎을 쳤다. 김삿갓은 얻어먹을 것을 먹었으니 이제 볼일은 다 끝났다 생각되어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렵니까?” 선비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바람처럼 왔으니 바람처럼 가야지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김삿갓은 이 말을 남기고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몇 개 넘으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가가 보이지 않아 계속 걸었다. 가는 길이 숲속 길이라 해는 아직 넘어가지 않았으나 앞은 어둑어둑 하였다. 이때 삼거리 길에서 중을 만났다. 그는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다 생각하고 슬쩍 문자를 써서 말을 걸었다. “問余小..
2020.08.22 -
방랑시인김삿갓 10화
#방랑시인 김삿갓-010화 [一年春色 腹中傳(일년내내 춘색이 깊이 전해지도다)] 김삿갓의 시를 본 선비들의 얼굴은 일순간 크게 달라졌다. 애초 김삿갓이 예측한 대로 이들은 한양의 권문세도가의 아들들이었다. 추위가 가신 늦은 봄에 돈냥이나 가지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왔는데, 아직도 비로봉 근처에는 가보지를 못하고 건너편 절에 숙소를 정해놓고 날마다 천렵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부모 덕택으로 학식깨나 있다는 선비를 불러 독서당을 차려놓고 글공부를 하는 터인지라 이들은 자신들이 글 실력에 남다름이 있다고 뽐내던 처지였고, 천만 뜻밖에도 김삿갓의 글이 진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허허~ 노형 이제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시구려.” 당신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어느새 노형으로 고쳐져 나왔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들은 ..
2020.08.21 -
김삿갓9회
#방랑시인 김삿갓-009화 [와청서원(臥聽西園)에 우성유(雨聲幽)라 : 한가로이 누워 있자니 서원의 빗소리가 그윽하도다] 금강산은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봄은 마치 앙증맞은 일, 이십대 아가씨처럼 수줍은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여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리고, 여름은 한여름 억세게 자라나는 명아주처럼 생활력이 왕성한 삶, 사십대 여성으로 보아 봉래산(蓬萊山)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가을에 불리는 이름은 풍악산(楓嶽山)이라 하는데, 이것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오륙십 대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인생의 행로를 비유한 것이리라. [사족(蛇足) 한 마디. 아마 김삿갓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오륙십 대를 이미 할머니로 분류했었나 보다. 요즘에 할머니라 부르면 난리가 날 텐데, ㅎㅎ 이것도 세월 탓이리라.]..
202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