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54. 편

2024. 9. 13. 08:06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54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5편 십자파 주막 25-2

“제 이름은 장청(張靑)입니다. 이곳 광명사에서 정원사로 있었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중을 때려죽이고 절에 불을 질렀습니다만 아무도 감히 내게 대드는 자가 없고, 관가에서도 모른 척하기에 이곳 십자파에서 술집을 냈습니다.
하지만 술파는 일보다는 나그네들 주머니나 털고, 술에다 수면제를 타 먹여 죽인 인육으로 만두를 만들어 팝니다.”
“저는 무술도 약간 배웠고 또 천하호걸들과 사귀고 지냅니다. 아내에게 승려와 기녀와 귀양 가는 사람은 잡지 말라고 일렀는데, 내 말을 안 듣고 오늘도 이런 일이 일어났군요.
저희 집에는 노충경락 상공 노달과 양지도 다녀갔습니다. 한데 노형은 무슨 죄로 귀양을 가시는지요?”
그러자 무송은 장청에게 자신의 처지를 모두 얘기해 주었다.
이에 장청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맹주 노성에 가시면 참으로 힘든 고초를 다 겪으실 텐데, 제 생각에는 저 호송관 두 놈을 처치하고 저와 함께 여기서 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무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그건 안 됩니다. 저 사람들을 죽이고 나만 산다면 하늘이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어서 호송관을 풀어 주시오.”
그러자 장청은 그의 말에 감복하고 두 호송관의 입에 약 사발을 흘려 넣어 독을 풀어 깨어나게 해주었다.
두 사람은 꿈속에서 깨어난 듯 눈을 뜨고 무송에게 말했다.

“아주 늘어지게 한잠 잤군. 도대체 무슨 술이 그렇게 독하지? 돌아오는 길에 세상없어도 또 들러야겠는 걸.”
그 말에 무송과 장청은 함께 웃었다.

그들은 서로 의기가 투합되어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
장청이 무송보다 다섯 살 위였으므로 무송은 그를 형으로 삼았다.

그 다음 날 무송은 다시 형틀을 쓰고 호송관과 함께 부지런히 귀양길에 올랐다.
무송이 맹주땅 노성으로 귀양가서 가장 먼저 사귄 사람은 시은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창술과 봉술을 좋아하여 이름 있는 사부들을 찾아다니며 무술을 익혀 맹주땅 일대에서는 금빛 눈을 가진 표범, 즉 금안표(金眼彪)라는 별명이 붙었다.

맹주의 동쪽 문밖에는 쾌활림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는 산동과 하북의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큰 여관과 가게와 상점들이 즐비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은은 그곳에 정육점을 내고 도박꾼들과 가게 집들을 상대로 돈을 긁어모았다.
그 돈이 한 달이면 수백 냥이 넘었다.

그런데 바로 두 달 전 본영에서 온 장문신이라는 자에게 황금 같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장문신은 키가 9척에 창술과 봉술이 뛰어나고 씨름을 잘했다.

장문신은 쾌활림에서 시은을 내쫓고 좋은 장사 몫을 차지해 버렸지만, 시은 역시 고분고분 물러날 위인이 아니었다.

시은은 장문신에게 주먹으로 맞고, 발길에 채여 두 달 동안 누워 앓았다.
그때 마침 무송이 도착하자 골수에 새겨진 원한을 풀지 못하던 시은이 무송에게 하소연했다.

“형장께서 이곳에 오셨으니 제 한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무송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한마디 물었다.

“그 장문신이라는 자는 머리와 팔이 몇 개입니까?”
“그야 머리 하나에 팔이 둘이지요.”
“그렇다면 지금 그자가 있는 곳으로 갑시다.”
바로 그때 병풍 뒤에서 시은의 아버지 관영상공이 나왔다.

“내가 병풍 뒤에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제 아들놈이 쾌활림에서 장사를 한 것은 단지 돈만 탐나서가 아니라 맹주에게 잘 보이고 호쾌한 남자의 기상을 기르기 위해서였소.
한데 장문신이 나타나 아들놈을 쫓아낸 것이오. 만일 의기가 있는 분이시라면 제 아들의 소원을 풀어 주십시오. 어서 아들의 절을 받아 주십시오.”
“상공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송은 마침내 노관영의 술잔을 받았고, 그것으로 두 사람은 의형제가 되었다.
그날 무송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마셨다.

다음 날 무송은 새벽같이 일어나 머리에 두건을 쓰고, 몸에는 흙색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붉은 명주 띠를 두르고, 무릎 보호대를 하고, 차를 마신 후에 시은에게 물었다.

“내가 쾌활림까지 가는 도중에 술집이 나오는 대로 한 집에서 꼭 석 잔씩 술을 마시게 해주어야 하느니라.”
시은은 그 말을 듣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쾌활림까지는 술집이 열두 군데나 되는데, 취해 가지고 어떻게 장문신을 상대하겠습니까?”

- 55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55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5편 십자파 주막 25-3

무송은 크게 웃었다.

“그건 자네가 모르고 하는 말일세. 내가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을 때도 술에 잔뜩 취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술이 안 들어갔다면 어려웠을 것이네.”
“정말 그러시다면 우리 집에서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 하겠으니 가면서 마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시은은 즉시 하인에게 술과 안주를 준비시켜 무송과 함께 집을 나섰다.

때는 7월로 더위가 아직 극성을 부렸으나 바람은 이미 가을이었다.
무송은 가면서 술집이 나타나면 하인에게 술 석 잔을 가져오라 해서 계속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한 듯 그는 쾌활림의 장문신 주점에 이르자 마치 아주 취한 듯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걸었다.
무송은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거짓 취한 체했다.

그가 비틀걸음으로 숲속을 빠져나가자 한 그루 홰나무 아래 기골이 장대한 장사가 흰 베적삼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송이 곁눈질로 보니 그 모습이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 사내가 장문신이라고 생각했다.

무송은 안으로 들어섰다.
술청 뒤에 젊은 계집 하나가 앉아 있다가 무송의 행색을 훑어본다.

그 여자는 장문신이 새로 얻은 첩이었다.
무송은 술집에 들어서면서 눈을 똑바로 뜨고 계집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계집은 눈썹을 얄밉게 찌푸렸다.
주점 한쪽에서는 고기를 썰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만두를 찌고 있었다.

주방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6~7명은 되었다.
무송은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기 술파는 사람 없느냐?”
주모가 황망히 앞으로 달려 나왔다.

“약주 드릴까요?”
“술맛이 어떤지 우선 맛 좀 보겠다.”
주모가 술을 가져오자 무송은 술잔을 코앞에 대고 잠깐 냄새를 맡아 본 다음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틀렸다. 이걸 술이라고 파느냐?”
계집이 듣다못해 한 마디 내던졌다.

“저게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지?”
그 순간 무송은 웃통을 벗어부치고 달려들어 계집의 허리와 머리채를 휘어잡아 술통 속에 처넣었다.

그러자 힘깨나 쓰는 주막집 사내들 대여섯 명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무송은 손에 닥치는 대로 한 놈씩 붙잡아 술통 속에 처넣었다.

순식간에 술 한 통에 한 명씩 거꾸로 처박혔다.
그 소동 속에서 술집 주인 장문신이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무송은 덤벼드는 장문신을 발길로 힘껏 내질렀다.
그는 무송에게 배를 얻어맞고 나자빠져 버렸다.

본래 무송의 특기는 ‘옥환보원앙각(玉環步鴛鴦脚)’이라는 독특한 기술로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무술이다.

장문신이 나가떨어지자 무송은 그의 가슴을 한 발로 꽉 밟고 서서 돌주먹으로 면상을 내리치면서 외쳤다.

“이놈, 네가 살고 싶으면 세 가지 조목을 행동에 옮겨야 하느니라.”
“세 가지 아니라 삼백 가지라도 시행하겠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장문신이 싹싹 빌었다.

“그러면 잘 들어라. 지금 당장 이 집과 세간들을 옛 주인인 시은에게 돌려주겠느냐?”
“네네, 그렇게 합지요. 그렇게 합지요.”
“둘째는 이 쾌활림의 두목격인 호걸들을 모조리 불러 시은에게 일일이 인사드리게 하고, 앞으로 시은을 총 두령으로 잘 모셔야 하느니라. 그렇게 하겠느냐?”
“네네, 합지요. 합지요.”
“셋째는 그 이후 당장 이 쾌활림을 떠나 네 고향으로 돌아간 후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이 맹주땅 일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네, 잘 알겠습니다.”
그때서야 무송은 그를 풀어주었다.

장문신은 볼이 시퍼렇게 멍들고, 입술은 퉁퉁 부르트고, 목은 비뚤어지고, 이마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네, 이놈. 경양강 호랑이도 내 주먹에 죽었다.”
장문신은 그때서야 그가 무송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벌벌 떨었다.

장문신은 그 길로 집과 가구들을 시은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쾌활림의 십 여 명 호걸들을 불러다 시은과 무송에게 인사를 드리게 한 다음 그날로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날부터 시은이 다시 쾌활림을 맡게 되었다.

- 56회에 계속 -

'수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호 지 56 편  (0) 2024.09.19
수호지55 편  (0) 2024.09.19
수호지 53 편  (0) 2024.09.12
수호지 52 편  (0) 2024.09.11
수호지 51 편  (0)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