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33)
2022. 5. 2. 19:25ㆍ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33)
유비의 대패(大敗) 이렇게 유비가 산상에서 개탄하고 있을 때 적들은 이미 산을 에워싸고 산기슭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기슭에서 타오르는 불은 산상으로 타고 올랐다. 일행을 도울 군사는 없는데 동오의 수천 수만의 군사들이 말없이 유비를 포위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하늘이 정녕 이 유비를 화마(火魔)의 제물이 되게 하려는가 ?" 유비가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는 바로 그때, 불길 속에서 한 장수가 적들을 헤치고 산상으로 뛰어 오르는데, 그는 서성과 정봉을 비롯해 오군과 싸우는 중에 헤어졌던 관흥이었다. 그는, "폐하 !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라, 적이 더 몰려오기 전에 한시바삐 불바다를 타고 넘어 백제성을 가셔야 하옵니다. 소장이 앞장을 설 것이니 따라 오십시오 !" 하고, 앞장을 서서 길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일행은 불길이 옅은 곳을 택하여 관흥과 장포가 앞을 헤치고, 유비가 그 뒤를 따르며 산기슭까지 단숨에 내려오니, 이번에는 적의 복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마주 공격해 온다.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공격 태세였다. 유비 일행은 쫒기고 또 쫒겼다. 그러나 추격해 오는 적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기세는 점점 치열해 온다. 도망을 치는 중에도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되자, 누군가 뒤에서 소리를 친다. "불로 공격해 오는 적은 불로 막아야 한다 !" 유비는 쫒겨가는 와중에 뒤따르는 군사들더러 옷을 벗어 길위에 불을 지르라고 명하였다. 이렇게 옷이 불타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불은 길 양쪽에 나무로 번져, 적의 추격을 가로막았다. 유비 일행은 그 기회를 이용해 강가로 내려왔다. 그러나 강가에는 적장 주연(朱然)이 유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흥과 장포가 앞으로 달려나가 죽기로 싸웠으나, 어지럽게 쏘아 갈기는 적의 화살에 부상만 당하는 것이었다. 유비 일행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산골짜기로 쫒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멀리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이번에는 육손 자신이 일군을 이끌고 짓쳐 올라온다. "아아 ! 짐이 이런 산중에서 죽을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 이제는 움치고 뛸 곳조차 없게된 유비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맹렬히 추격해 오던 적의 후방에서 홀연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이 일어나며 적의 대오가 일시에 어지럽게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운(戰雲)이 어지럽게 일어나며 적병이 가을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연방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자욱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일군의 군사들이 아차 하는 순간에 유비 앞으로 내달려 와 에워싸며, "폐하 ! 조운(趙雲)이 여기 왔나이다 ! 안심하소서 !"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유비가 황망한 가운데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나타난 장수는 다름아닌 오호대장 조자룡(五虎大將 趙子龍)이었다. 그는 서천의 강주(江州)를 지키고 있다가, 유비를 급히 구하라는 공명의 명을 받고 바람같이 달려온 것이었다. 육손은 조자룡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회군령을 내렸다. 그러나 주연은 멋모르고 급히 달려온 조운에게 싸움을 걸었다. 주연은 조자룡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불과 오륙 합을 싸우다가 조자룡이 후려 갈기는 창에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폐하 ! 어서 백제성으로 피하시라는 승상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 "승상이 ?.. 어쨌든 짐은 장군 덕택에 살아났거니와, 다른 장수들은 모두 어찌 되었을꼬 ?" 유비는 말을 달려 나가며 눈물을 뿌렸다. 그러자 조자룡은, "폐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우선 백제성으로 빨리 가셔야 합니다. 소장은 폐하를 백제성으로 모셔 놓고, 다시 나가 장졸들을 구하겠습니다." 일행이 백제성에 당도하여 인원을 확인해 보니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 사람은 불과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다른 군사들은 어찌 되었는가 ? 칠백여 리에 걸쳐 사십여 개의 영채에 흩어져 있던 촉군은 육손의 화공 전술에 걸려들어 부대마다 뿔뿔이 분리되어 명령계통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노도와 같이 몰려오는 오군의 공격에 많은 부대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러면서 혹은 군사를 이끌고 동오에 항복한 장수도 한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장수도 없지 않았다. 촉장 부동, 그도 그런 장수중에 한 사람이다. 부동은 유비를 호위하며 쫒기다가 오장 정봉이 급히 공격하며, "촉군은 괴멸하다시피 했으니 그대는 군사와 함께 빨리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라 !" 하고, 외쳤지만, 오히려 정봉을 큰소리로 꾸짖으며, "내 한나라의 장수로서 어찌 너희에게 목숨을 구걸하랴 !" 하고, 달려나가 유비가 피할 수있는 시간을 벌어주며 분전하다가 세궁역진해지자, 스스로 목을 찌르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대장 정기(程畿)는 부대가 동오의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나자, 마침내 필마단기로 적진 속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좌충우돌하다가 최후에는 적이 내던진 창끝에 절명함으로써 무사의 절개를 깨끗하게 지켰다. 그리고 촉군의 선봉장 장남(張南)은 이릉성(夷陵城)의 손환을 포위하고 있다가, 유비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급히 군사를 이동시키다가 포위망이 뚫린 기회를 역이용한 손환의 배후 공격을 받아 장군 조융(趙融)괴 함께 분전 중에 전사 하였고, 남만(南蠻)에서 지원왔던 사마가(沙摩柯)는 오장 주태(周太)와 이십여 합을 겨루다가 장열한 전사를 하였고, 두로(杜路), 유령(劉靈) 두 장수는 형세가 불리해지자 그대로 오에 항복하고 말았다. 손권은 대도독 육손의 화공(火攻)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촉군을 몰살 시키다시피 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면서, "유비, 유비는 어찌 되었느냐 ?" 하고, 물으니, "아마도 죽은 것 같습니다 !" 하는, 기쁜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가 크게 패하여 죽은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뼈에 사무치게 슬퍼하는 여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손권의 계략에 말려들어 형주에서 귀환하여 건업에 머물러 있던 손 부인이었다. 손 부인은 유비의 패전 소식을 듣고, 홀로 수레를 타고 강가에 나와 보았다. 그러나 촉군의 진지였던 곳에 촉병은 이미 한 사람도 보이지 아니하고, 유비가 머물렀다는 제사영(第四營) 군영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손 부인은 강가에 서서 화광이 충천하는 산줄기를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마침내 장강이 내려다 보이는 능운정(凌雲亭)에 올라, 장강의 깊은 물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고 말았다. ... 한편, 화공으로 유비를 비롯한 촉군을 괴멸시킨 육손은 날이 밝자 이번에는 대군을 몸소 이끌고 백제성으로 유비를 추격하였다. 날이 저물자 어복포(魚腹浦)에 진을 치고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육손이 말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산 속에서 이상한 살기(殺氣 )가 뻗쳐보인다. "저 산 속에서 살기가 뻗치는 것을 보니 저곳에는 틀림없이 복병이 있겠구나." 육손은 즉시 정탐을 보내었다. 그러나 정탐을 다녀온 정탐병은 적병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복병이 없는데도 살기가 나올 리가 있나 ? 누가 다시 가보고 오너라." 두 번째 정탐대가 출동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아까와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암만해도 이상하다 ? 그러면 오늘밤까지 두고 보자." 밤이 되자. 살기는 더욱 분명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세 번째의 정탐을 보내니, 노련한 정탐병이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와서 보고한다. "적병은 한 사람도 없었으나, 산중에 돌(石)로 구축한 이상한 진지(陳地)가 있었습니다." "음 !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보고 오겠다." 육손은 십여 명의 호위군을 거느리고 석진(石陳)이 펼쳐진 곳에 가보았다. 여덟 개의 석진이 있기는 했으나 무엇을 의미하는 진지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근처에 살고 있는 노인을 불러다가 물었다. "여보, 영감님 ! 저 석진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이오 ?" "저것은 몇해 전에 제갈공명이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쌓은 것이라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 돌을 쌓고난 뒤로 이곳에서 때때로 이상한 선풍이 일어나서 아무도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 ! 제갈양이 장난을 친 모양이로구나. 어디 한번 들어가 보자 !" 육손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석진 속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석진이 겹겹히 둘러싸인데다가 사면 팔방에 여덟 개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돌을 깎아 세운 군사들도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었다. "음 ! 공명이 의병술(疑兵術)을 쓰려고 이런 장난을 쳤구나 !" 육손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도대체 아무리 빙빙 돌아 보아도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육손이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데, 이번에는 석전 밑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며 스산스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 "이거 큰일 났구나 ! 어둡기 전에 빠져나가야겠는데 !" 육손은 마침내 비명을 질렀는데, 백발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더니 껄껄껄 웃는다. "노인장은 누구시오 ?" "나는 제갈공명의 장인 황승언(黃承彦)의 친구요." "노인장 ! 어떡하면 이 석진 속을 빠져 나갈 수 있겠나이까 ?" "나를 따라서 오시오." 노인은 앞장서서 석전 속을 이리저리 돌아 나오는데, 육손이 부하들과 함께 뒤따라 나오니 이윽고 석전 밖으로 나와지는 것이 아닌가. 육손이 석진을 무사히 벗어나자, 백발 노인이 말한다. "내가 팔진(八陳)속에 빠져 있는 당신을 구해 주었다는 애기는 행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오. 공명의 장인인 황옹(黃翁)이 알면 나를 원망할 것이오." 하고, 말한 뒤에 홀연히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육손은 그제서야 겁이 덜컥 나면서, "아아 ! 정녕 하늘이 유비를 아직도 돕고 있구나 ! " 하고, 탄식해 마지 않으며 전군을 돌려 퇴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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