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35)

2022. 5. 3. 21:00삼국지

삼국지(三國志) .. (335)

말년의 유비 (중)

 
한편, 오군과의 이릉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백제성(白帝城)으로 피신한 유비는 성도(成都)로 돌아가자는 군신들의 주청(奏請)을 받았지만,

"짐이 이제 성도로 돌아간들 공명 이하 여러 대신들과 장수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소, 짐은 당분간 여기 눌러 있겠소."

하고, 한사코 서천으로 돌아 가기를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대신들은 유비가 머물고 있는 백제성을 영안궁(永安宮)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한편, 성도에서는 유비가 돌아오지 아니하는 데다가, 백제성으로 간 장군 조자룡이 황제 유비가 세자 유선과 승상 공명을 매일 같이 찾고 있으니 속히 백제성으로 오셔야겠다는 전갈까지 보내오니 공명은 유선과 함께 길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장군 위연과 성도 태수 이엄을 불렀다.

위연의 뒤를 따라 이엄이 들어와 인사를 한다.

"저하(邸下), 승상(丞相), 두 분께 인사올리옵니다."

"지금 성도에 병사가 얼마나 있소 ?"

공명이 물었다.

"현재, 만오천 명으로 수비병을 제외하고, 모두 군량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을 모두 위연 장군에게 맡기시오."

"아니, 어째서요 ?"

"당분간 군량을 관리할 필요가 없소. 이 대인은 우리와 함께 백제성으로 갑시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

그러자 대답은 세자 유선에게 나왔다. 유선은 눈물을 흘리며,

"이릉에서 패하여 부왕께서 위중하시니 백제성으로 가야 합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이엄은 곧바로 병부를 꺼내어 위연에게 넘겨준다.

"여기 병부가 있습니다. 받으시지요."

위연이 병부를 받자, 공명이 위연을 향해 입을 열어 말한다.

"위 장군, 성도를 장군에게 맡기니 잘 부탁하오. 일이 생기면 백제성으로 소식을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시오."

위연이 나가자 공명이 다시 이엄에게 말한다.

"이 대인, 날이 밝으면 떠날테니 가서 채비를 하시오."

"알겠습니다."

이엄은 예를 표해 보이고 물러갔다.

공명이 유선을 보고 말한다.

"저하, 그만 쉬십시오. 백제성까지 가려면 사흘은 걸릴 겁니다."

"혹시, 부왕께서그동안 돌아가시면 어쩌지요 ?"

유선은 그때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공명은 어린애 같은 유선의 질문을 받자,

"괜한 걱정 마시고 어서 쉬십시오."

하고, 유선을 어루만져 주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러자 유선이,

"저, 승상, 제가 챙길 것은 없겠나요 ?"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공명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다.

"없습니다. 호위대에서 모두 준비할 것입니다."

"그럼, 귀뚜라미는 ?"

"뭐라구요 ?"

유선은 귀뚜라미를 애지중지 기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소중한 귀뚜라미를 두고 갈 수 없단 말이오."

하고, 떼 쓰듯이 말한다. 공명은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표정을 짓지 않고,

"아, 저하...폐하께서 위중하신 마당에 그런 걸 가지고 가셨다가 폐하 눈에 띄기라도 하시면 역정을 내시지 않겠습니까 ? "

"아, 맞다 ! 그렇겠구려...그럼 두고 가겠소."

유선은 아쉬움에 눈물 조차 흘려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셔야죠.. 그리 하셔야 합니다..."

공명은 이 말을 끝으로 밖으로 물러나갔다.

...

그로부터 사흘 후, 세자 유선과 승상 공명은 조자룡과 함께 백제성에 도착하여, 황급히 천자 유비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운 영안궁을 찾았다.

"폐하, 늦게 찾아 뵈어 죄송합니다."

공명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침상에 누워있는 유비를 향하여 절을 해보였다.

"승상, 일어나시오."

유비의 명을 받고 공명이 유비에게 바짝 다가선다.

"폐하 !..."

"계속해서 짐의 과오가 떠올라. 몹시 괴롭구려, 몹시 고통스럽소..."

"다른 일을 기억하면 되오니.. 우선 원기를 회복하십시오."

"이십 년 전, 융중에서 그대를 내 사람으로 청한 뒤로 모든 일을 그대의 말에 따랐거늘 ..이번 동오 정벌만은 짐이 고집을 피웠소. 그대 말을 듣지 않고, 내 뜻을 고집하다 보기 좋게 참패를 당했소. 내, 너무나도 부끄럽구려 !..."

"폐하 ! 신의 과오입니다. 동오의 화공을 경고했더라면 이런 변을 당하시지 않았을 것인데...신의 잘못이 크옵니다. 폐하 ! 흐흐흑..."

"공명,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잘못은 내게 있소. 황제가 되고 자만심에 빠져 충신들의 진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소. 그대에게 미안하구려..."

"폐하, 이젠 성도로 환궁하시어 편히 섭생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공명은 화제를 돌려 말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짐이 이렇게도 비참한 패배를 당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성도의 백성들을 대하겠소 ..."

"....."

유비와 공명이 이런 소리를 주고 받는 가운데, 마량이 들어와 고한다.

"폐하 ! .."

"무슨 일 인가 ?"

공명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마량이 아뢴다.

"동오의 군선(軍船)이 백제성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낙심에 잠긴 유비가 눈을 감아 보였다. 공명이 되묻는다.

"아 ! 병력은 ?"

"멀리서 확실치는 않으나, 병사와 전마가 가득하다 합니다. 이,삼만은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유비가 병석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승상 ! 전투 준비를 하시오 !"

"아, 폐하 ! 누우십시오. 어서요 ! 이번 전투는 신에게 맡기십시오."

"아 !..."

유비가 깊은 탄식을 뱉어냈다.

"조 장군 !"

공명이 조자룡을 불렀다. 자룡은 눈물을 훔치며 공명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모든 성문을 닫고 적을 맞을 준비를 하시오. 명령 없이는 누구도 나가선 아니되오."

"알겠습니다."

자룡과 마량은 그 길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곧바로 마속이 들어와 고한다.

"아뢰옵니다."

"아, 유상 ? (幼常: 마속의 字) 무슨 일 인가 ?"

공명이 물었다. 그러자 마속이,

"아뢰옵니다. 조금 전에 어복포에 들어온 동오의 전함은 손권의 사신 제갈근이 명을 받고 온 것으로써 폐하를 뵙기 청하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은 잠시 대답하기를 주저하였다. 그것은 사신으로 온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형이었기에 자신이 대답하는 것 보다 유비의 명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비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후, 공명이 유비의 대답을 건네본다.

"폐하, 신의 생각으론 폐하께서 동오의 사신을 직접 만나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승상... 내 모든 걸 승상에게 일임 하겠소. 뭐라고 애기 하는 지 만나서 들어 보시오."

"폐하, 민감한 시기에 사신으로 온 형님을 신이 만나는 것은 곤란합니다. 중대한 결정이 걸려있는 만큼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공명이 이렇게 말을 하자, 유비는 스스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잠시후, 마속은 제갈근을 향해 외친다.

"폐하의 명이오 ! 동오 사신 제갈근은 안으로 드시오 !"

제갈근은 예를 표하며 말한다.

"알겠소이다 !"

이렇게 제갈근은 마속의 안내를 받아 영안궁으로 들어와 유비를 배알한다.

"동오 사신 제갈근이 인사 올립니다."

제갈근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니 기력이 쇠진한 유비는 손짓으로 그를 일으킨다.

이 모습을 본 제갈근이 아뢴다.

"아,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은 오왕의 명을 받들어 포로로 잡힌 이만여 명의 촉의 병사들과, 노획한 무기와 전마 등을 폐하께 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오왕께서 이르시길 이릉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각별한 사과의 뜻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제갈근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다시 한번 유비를 향해 절을 해 보인다.

"폐하, 오왕께서는 오와 촉이 서로간의 원한을 풀고 다시금 동맹을 맺어 조위에 대항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

유비는 제갈근의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무어라, 동맹 ? 그대는 지금, 짐을 모욕하는 것이냐 !"

하고, 속에서 끓어나오는 단발마 소리를 내던지고 입에서 피를 토하였다.

"어,엇 ? 부왕 !"

"폐하 !"

유선과 공명이 달려들어 유비를 부축하였다.

"폐하 !"

제갈근도 유비의 행색을 보고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유비는 그 말을 끝으로, 선 채로 혼절하는 것이 아닌가.

공명이 제갈근을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형님, 애기는 나중에 하고 물러나십시오."

제갈근은 놀라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며 총총히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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