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65화
2021. 8. 16. 07:41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65화
☞ 오랑캐의 도발로 편할 날이 없는 유방
“장군은 숲속에 무엇인가 숨어 있는 모양이니 빨리 살펴보시오.”
번쾌가 부리나케 숲속으로 달려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숲속에는 어떤 괴한이 손에 화살을 메워 들고 있었다.
번쾌가 일거에 괴한을 제압한 후 끌고 나와 유방 앞에 꿇어앉히자, 유방이 괴한을 심문한다.
“너는 어떤 놈이며, 이 숲속에서 누구를 쏘려고 활시위를 메고 있었느냐?”
“나는 회음(淮陰)에 사는 사람이오. 황제가 죄 없는 초왕을 포박하여 압송해 가기에 구출해 가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소.”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이놈! 네놈은 한신을 구출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짐을 쏘아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냐? 말이 너를 보고 놀라지 않았던들 내가 큰일을 당할 뻔하였구나.
여봐라! 이 흉악한 놈을 당장 때려죽여라!”
수레에 실려 끌려가던 한신은 그 광경을 보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유방이 괴한을 즉석에서 처치했다.
유방은 운몽과 적양을 거쳐 10여 일 후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이에 문무백관들이 성 밖 멀리까지 영접을 나와 주었다.
그중에 대부 전긍(田肯)이 머리를 조아리며 유방에게 아뢴다.
“한신 장군은 황제 폐하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폐하께서는 세인(世人)들의 말만 들으시고 운몽까지 행차하시어 한신을 친히 체포해 오셨으니 어찌 된 일이옵니까?
천하의 보고(寶庫)인 제나라를 평정한 사람도 바로 한신 장군이었으니 그 공로를 보아서도 한신 장군을 마땅히 제왕으로 봉하셨어야 옳을 일이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신 장군을 초왕으로 강등하였다가 이제는 죄가 있다고 체포해 오셨으니 사후 처리를 이처럼 야박하게 하오시면 폐하의 성은(聖恩)을 누가 믿으오리까?
폐하께서는 재삼 통촉해 주시옵소서.”
대부 전긍의 직간(直諫)에 유방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경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소이다. 그러나 한신은 모반할 마음을 먹고 군사를 은밀히 양성하고 있었으니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전긍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한신 장군이 그렇게도 의심스러우시면, 함양에서 조용히 살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오선 그의 공적을 생각하시와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좋은 간언을 들려주어서 고맙소이다. 모든 일은 경의 충고대로 하겠소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유방은 한신을 어전으로 불러 위로하며 말한다.
“내가 장군의 공로를 모르는 바가 아니오. 장군이 없었던들 내가 어찌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겠소.
장군을 제왕으로 보냈다가 다시 초왕으로 이동한 것도 장군의 공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장군은 종이매를 숨겨 두고 비밀리에 많은 군사들을 양성하고 있었으니 내 어찌 그런 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겠소.
그래서 장군을 생포해 오기는 하였으나 지난날의 공로를 생각해 어찌 죽일 수야 있겠소.
그래서 이제 ‘회음후(淮陰侯)’로 봉해줄 테니 당분간 장안에서 편히 쉬도록 하오.
기회를 보아 다시 왕작(王爵)을 내리도록 하겠소.”
한신은 머리 숙여 사은 숙배하며 말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모든 일은 폐하의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그러나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일국을 호령하던 한신으로서는 처량하기 짝 없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기에 한신은 조회에 참석하기가 부끄러워 병을 핑계로 조정에는 일체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세상은 일단 평온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이 퇴청하여 내전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때마침 마당을 거닐던 태공(太公)이 아들인 유방을 보자, 별안간 땅바닥에 엎드리며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아들이 비록 황제라 할지언정 아버지가 아들에게 절을 할 수는 없을 진데, 이거야말로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런가!
예전에 없던 일이기에 너무도 어이가 없기에 유방이 태공에게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오늘따라 소자에게 절을 하시니 이 어이 된 일이옵니까?”
그러자 태공은 두 손을 마주 잡고 경건하게 읍하며,
“노신(老臣)이 예전에는 종사(宗社)의 예절을 몰라 폐하께 결례(缺禮)가 막심했사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유방은 기가 막혔다.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무슨 이유로 그러시냐고 또다시 물어보았더니 태공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제 어느 분이 노신(老臣)에게 충고하기를 ‘황제가 사사롭게는 태공의 아드님인 것은 사실이지만, 공적으로는 만백성의 어버이이십니다. 그러니 태공께서는 황제 폐하에게는 마땅히 신하로서 행동하셔야 합니다.’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노신은 오늘부터 폐하에게 신하로서 큰절을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절을 올린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유방은 그 문제를 제도적으로 시정하기 위해 중신 회의를 급히 열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인륜의 지친(至親)은 부자(父子) 관계를 능가할 수는 없다.
아들은 아버지가 계셨기에 생겨난 것이므로 비록 황제라 하더라도 최상의 존경은 아버님께 돌려야 하는 것이 인도(人道)의 기본인 것이다.
나는 이제 천하를 평정하고 제위에 올랐으나 아버님께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존칭(尊稱)도 제정한 바가 없기에 오늘부터는 아버님을 ‘태상황(太上皇)’으로 받들어 모시기로 하노라.”
이렇게 공포하고 군신들과 더불어 축하연을 베풀고 있는데, 홀연 파발마(擺撥馬)가 달려와 놀라운 보고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오랑캐의 두목 묵특이 한왕(韓王) 희신(姬信)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희신은 장량 선생의 천거에 의하여 내가 한왕으로 임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가 오랑캐와 결탁하여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냐?”
“희신은 묵특의 압력에 못 이겨 반란에 가담한 듯싶사오나 어쨌든 그들이 한통속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조(趙)나라의 대장이었던 조리(趙利)도 오랑캐의 두목인 만구신, 왕황 등과 어울려 반란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중이옵니다.”
유방이 크게 진노하며 말한다.
※ 註) 한왕(韓王) 희신(姬信)은 한(韓)나라 양왕(襄王)의 후손으로 유방이 한왕(韓王) 성(成), 장량 등의 한(韓)나라 부흥군과 합류하여 관중으로 향하던 중에 발탁되어 한(漢)나라의 장수로서 유방을 따라 전장을 누볐다.
한왕(韓王) 성이 항우에게 살해당한 후 기원전 202년 유방에 의해 한(韓)나라 왕으로 봉해졌음에도 도읍지인 형양에 부임하지 않고 초한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방을 따라 통일 전쟁에 참가하였다.
실제 이름은 한신(韓信)이나 같은 시기에 활약한 동명이인 회음후 한신과 구별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작위와 이름자를 결합한 ‘한왕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초나라를 멸망시킨 절대적인 공신인 회음후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자신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
한(漢)나라가 통일한 이후 고제(高帝, 유방)는 한왕 신에게 북방의 이민족 흉노를 막도록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묵돌(冒頓, 모돈, 묵특이라고도 한다) 선우(單于)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그 후 흉노의 장군으로 여러 차례 한(漢)나라를 침범하였다.
한(漢)나라 장군 시무가 다시 한나라로 돌아올 것을 회유하였으나 자신의 죄가 셋이나 있는데, 고제가 용서해줄 리 만무하다며 계속 싸우다 전사한다.
여기서 고제에게 범한 자신의 죄 세 가지는
첫째, 유방과 항우의 형양성 전투 때 수세에 몰린 유방은 도망가고, 희신과 주가 등이 남아 수성전을 펼쳤으나 주가 등은 전사하고 한신은 항우에게 항복한다.
『희신 : 회음후 한신과 구별하기 위해 희신으로 씀. 한왕 신의 조상은 희(姬)씨였으나 한무자(韓武子) 한만(韓萬)이 한원(韓原)이라는 지역에서 진(晉)나라로부터 분봉된 것을 기원으로 하여 이후 이 지역이 한(韓)나라가 되고 성(性)도 한(韓)씨를 쓰게 됨.』
이후 항우에게서 도망쳐 와 끝까지 유방을 섬겼으나 마음속으로는 항복했던 것이 끝까지 걸렸는지 이 일을 첫 번째 죄라 한 것이다.
둘째, 흉노의 침략을 막다가 묵특에게 항복한 것을 두 번째 죄라 한 것이며,
셋째, 흉노족의 장군이 되어 계속 한(漢)나라를 침범한 것을 세 번째 죄라 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조나라와 대나라를 총괄하던 상국 진희와 결탁하여 진희의 모반을 꾀하는데, 진희의 모반은 결국 회음후 한신이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역사는 돌고 돌아 참 아이러니하다.
“육국을 모두 평정했기에 이제는 싸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난데없는 북방 오랑캐들이 준동을 한다는 말이냐?
이런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후환이 두려우니 내가 친히 출동하여 놈들을 깨끗이 쳐부수기로 하겠다.”
유방은 승상 소하에게 관중을 지키게 한 뒤 자기 자신은 조참, 번쾌, 근흠, 노관 등과 함께 2만 군사를 거느리고 오랑캐 무리 소탕의 장도에 올랐다.
유방은 오래지 않아 의기양양하게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나 사방팔방으로 국토가 워낙 광활한지라 어느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 제 16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