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61화
2021. 8. 12. 08:50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61화
☞ 전횡(田橫)의 자결, 제(齊)나라 완전 평정
유방은 천하통일을 한 뒤에 논공행상을 공평하게 베풀어 주었으나 아무리 공평을 기해도 불평객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즉위식을 거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량이 입조하여 유방에게 아뢴다.
“예전, 제왕(齊王)의 후예인 전횡(田橫)이란 자가 지금 해도(海島)라는 섬에서 반란을 꾸미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속히 손을 쓰지 않으면 후일 커다란 부담이 되겠습니다.”
유방이 적이 놀라며 묻는다.
“손을 쓴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이까?”
“해도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인 까닭에 군사를 보내 토벌하기가 적절치 않으므로 조서(詔書)를 보내 회유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조서에는 전횡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제왕(齊王)에 봉한다는 하명(下命)을 내리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면 전횡은 성은(聖恩)에 감동하여 반드시 굴복하고 들어올 것이옵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옳게 여겨 육가(陸賈)를 불러 말한다.
“내가 조서를 써 줄 테니 대부가 해도에 가서 전횡을 회유하시오.”
육가는 망망대해를 건너 해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전횡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방을 수소문한 결과 어떤 어부가 이르기를
“그분은 여기서 150여 리 떨어진 즉묵현(卽墨縣)이라는 섬에 계시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해도에서 즉묵현이라는 섬에 가려면 파도가 몹시 거친 바다를 또 하나 건너가야만 했다.
육가가 배꾼을 사서 거친 파도를 헤치고 즉묵현에 도착했다.
전횡은 유방의 사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진문(陳門)을 굳게 걸어 잠그고 경계를 삼엄하게 하고 있었다.
육가가 진문 밖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한제께서는 초나라를 평정함으로써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였소.
그리하여 군소 작은 제후들이 앞을 다투어 귀순을 하였으나 귀공만은 승복(承服)을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오?
한제께서는 귀공에게 특별히 조서를 보내셨으니 속히 진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만나주기 바라오.”
전횡은 육가를 맞아들여 조서를 받아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왕(齊王)의 후예인 전횡 장군에게 글을 보내오.
짐은 이미 육국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하였소. 귀공이 비록 해도에 있다 하여도 해도 역시 한나라 영토요.
나는 귀공에게 특별히 제왕의 자리를 주어 전씨 문중(田氏門中)의 종사(宗祀)를 길이 누릴 수 있게 해줄 테니 빨리 달려와 귀순하도록 하시오.
만약 군사를 일으켜 엉뚱한 계획을 꾸민다면 전씨 일족을 전멸시켜 버리겠소. 그런 어리석은 일은 제발 하지 말도록 하시오.
전횡은 유방의 조서를 읽어 보고 마음이 크게 움직여 곧 유방에게 달려가 귀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왔다.
“유방은 겉으로는 무척 관대한 듯 보여도 실상은 몹시 가혹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을 믿고 섣불리 귀순했다가 배반을 당하면 어떡하시렵니까?
차라리 우리가 이 섬을 중심으로 합심하여 새 나라를 이루어 편히 살아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전횡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 척박한 섬에서 나라를 이루어 본들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는가?
유방이 일부러 사람을 보내 나를 ‘제왕’으로 봉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옛 봉토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어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대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귀순을 아니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부하들이 다시 말한다.
“장군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장군님 혼자만 가시옵소서. 저희들은 이곳에 남아서 어부(漁夫) 노릇이나 하며 살겠습니다.”
전횡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부하들을 해도에 남겨 둔 채 육가와 함께 낙양으로 떠났다.
부하들을 내버려두고 낙양으로 떠나가는 전횡의 심정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낙양이 가까워질수록 전횡의 마음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
‘내가 유방을 배반하고 해도로 도망간 것은 그 옛날 유방이 제왕 전광(田廣)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는 제왕의 원수를 갚아 드리지는 못할지언정 그의 휘하에 들어가 그를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자손의 도리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전횡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변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을 하고 말았다.
육가가 낙양에 돌아와 그 일을 사실대로 고하니 유방은 크게 놀라며 말한다.
“전횡이 자결을 했다면 아직도 해도에 남아 있다는 5백여 명의 그의 부하들이 주인의 원수를 갚는다며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을 달래기 위해 모두 낙양으로 불러다가 벼슬을 주게 하여라.”
육가는 황명을 받들고 해도를 다시 찾아갔으나 5백여 명의 부하들은 전횡이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 어른은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당신 혼자서 자결을 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찌 그 어른을 희생시키고 우리들만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제나마 우리들도 뜻을 모아 그 어른의 뒤를 따르자!”
하고 5백여 명이 한결같이 자결을 하고 말았다.
5백여 명이 주인을 따르기 위해 한꺼번에 자결했다는 것은 어느 역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의거(義擧)였다.
육가가 낙양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알리니 유방은 크게 감동하면서
“그러면 이제부터 해도를 ‘전횡도(田橫島)’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도록 하라.”
하고 특명을 내렸다.
※ 註) 실제로 이곳은 산동성 청도 인근에 있는 섬으로 ‘전횡(田橫)’의 이름을 따 ‘전횡도(田橫島)’라고 하며, 500 의사(義士)의 충절과 함께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전(田)씨는 제(齊)나라 왕족이었고, 산동반도에 있던 노(魯)나라 ‘공자(孔子)의 나라’는 제나라의 제후국이었다.
이렇게 전횡의 문제는 전횡 자신이 자결을 함으로써 해결되었다.
- 제 16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