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59 화
2021. 8. 10. 08:48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59화
☞ 한(漢)나라의 천하통일
유방은 초나라까지 평정하고 나자, 곧 군사를 철수시켜 하남(河南)에서 통일 국가를 세우려 하였다.
산동 지방에 노(魯)나라가 하나 남아 있었지만 노나라 따위는 워낙 조그만 나라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장량이 나서며 말한다.
“노나라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이오나, 그 나라를 그냥 내버려 두고 떠났다가는 후일에 다시 전쟁을 겪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노나라도 우리 손에 넣어서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방은 매우 의아스러워하면서 반문한다.
“노나라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소국인데, 선생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시오?”
“노나라가 보잘 것 없는 소국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노나라는 공자(孔子)가 태어나신 나라인 관계로 예의(禮義)가 대단히 바른 나라입니다.
지난날 회왕(懷王)께서는 일시나마 항우를 노공(魯公)으로 봉했던 일이 있는 까닭에 노나라 백성들은 지금도 항우를 깍듯이 주공으로 모셔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들이 만약 항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오(東吳)의 호걸들과 결탁하여 의병(義兵)을 일으켜 온다면, 그 세력을 막아내기는 결코 항우에 못지않을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선생께서 그런 말씀을 깨우쳐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커다란 과오를 범할 뻔했습니다.
그러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노나라까지 평정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군사를 몰고 노나라로 가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량의 말대로 노나라에서는 성루마다 조기(弔旗)를 높이 올려 걸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항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한왕은 성을 포위하고 나서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해 보았으나, 노나라 백성들은 꼼짝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루에서 거문고를 타며 항우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장송곡)만 계속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유방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철포(鐵砲)와 화전(火箭)으로 노성(魯城)을 단숨에 궤멸시켜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량이 유방의 손을 붙잡고 말리며 간한다.
“노나라는 주왕(周王)의 후예인 바, 공자의 덕화로 예의가 무척 바른 나라인 까닭에 세상 사람들은 노나라를 무척 존경합니다.
그런 나라를 어찌 단순한 무력으로 다스릴 수가 있을 것이옵니까?”
“그러면 그들을 무엇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오?”
“무력으로 굴복시켜서는 결코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오니 오직 예의와 의리로 설복하는 길이 있을 뿐이옵니다.”
“예의와 의리로 설복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좋을지 선생께서 가르쳐 주소서.”
유방은 장량에게 간곡한 어조로 부탁을 한다.
“노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면, 항우의 수급을 성문 앞에 높이 걸어 놓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노나라 백성들은 지금도 항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중인데, 그의 수급을 보여주게 되면 마음이 돌아서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게 아니오?”
“물론 그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모여든 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어떻게 설득한다는 말씀이오?”
“항우의 머리를 높이 걸어 놓으면 백성들이 저마다 달려와 항우의 죽음을 애통해할 것입니다.
특히 항우의 위세를 잘 알고 있는 노부(老夫)들은 더할 나위 없이 항우의 죽음에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의제 회왕(義帝 懷王)을 시해한 장본인이 항우라는 것을 알리고, 백성들을 잔학하게 학대한 일까지 소상하게 설명하면서 한왕이 하늘을 대신하여 항우를 벌했노라 말하게 되면, 노나라 백성들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을 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대성공이옵니다.”
유방은 장량의 계교를 듣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과연 선생의 계교는 신출귀몰하십니다. 그러면 항우의 수급을 내걸고, 우리 사람들을 내세워 노나라 백성들을 설득해 보기로 합시다.”
그리하여 성문 앞에 높다란 장대를 세워 놓고, 그 위에 항우의 수급을 내걸었다.
과연 장량의 말대로 많은 백성들이 모여들어 항우의 수급을 올려다보며 저마다 애통해 하였다.
특히 촌부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어 항우의 수급에 읍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촌부(村夫)로 가장한 한나라 세객(說客)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울고 있는 노부들을 비웃듯이 나무랐다.
“항우는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노인장들은 무엇 때문에 항우의 죽음을 이토록 애통해 하시오?”
그러자 노부들은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말한다.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기에 ‘항우를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오?”
“항우가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이유를 설명할 테니 잘 들어보시오.
항우는 자기가 제왕이 되기 위해 초회왕을 죽인 놈이오. 게다가 항우는 점령지 백성은 물론이고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무고한 백성들도 수없이 죽여 버렸소.
그 때문에 한왕이 하늘을 대신하여 항우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당신들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항우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아니겠소?”
노나라 노부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따져 묻는다.
“떠도는 소문처럼 항우가 정말로 의제를 죽였단 말이오?”
세객이 다시 대답한다.
“항우가 의제를 시해하고 자기가 회왕을 대신하여 제위(帝位)에 오른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인데, 당신들은 그런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노나라 노부들은 그 말을 듣고, 자기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원, 이럴 수가? 의제를 시해하고 자기가 제위에 오른 것이라면, 항우야말로 역적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세객은 그 기회를 이용해 다시 말을 건넨다.
“그렇소. 항우야말로 천하의 역적이었소. 한왕이 항우를 죽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오. 그러니 당신들도 하늘의 뜻에 따라 한왕을 반갑게 맞아들여야 옳을 것이오.”
노나라 노부들은 그제야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겠소이다. 항우가 그런 역적이었다면 우리도 조기(弔旗)를 걷어치우고, 한왕을 기쁘게 영접하겠소이다.”
하고 성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기를 모조리 철거하고, 유방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유방이 성안으로 들어가 국고(國庫)에 쌓여 있는 곡식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민심을 수습하였다.
이로써 천하를 완전히 평정하자, 한신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이 유방 앞으로 나와 하례를 올린다.
유방은 하례를 모두 받고 나서 모든 장수들에게 말한다.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장수들은 일단 낙양성으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각자에 대한 논공행상은 낙양에 돌아가서 하기로 하겠소.”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보니 유방은 한신이라는 존재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유방 자신이 제수한 대로 한신이 제(齊)나라로 돌아가 버리게 되면, 제나라는 70여 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이전의 육국에서 가장 방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계로 한신이 방대한 제나라를 차지하게 되면, 그 힘을 믿고 좀처럼 자기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유방은 생각다 못해 한신을 단독으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이미 끝났으니 이제는 ‘원수의 직책’은 해임해야 하겠소.
그리고 장군은 항우를 정벌하는데 각별히 공로가 많았으므로 장군을 특별히 초왕(楚王)에 봉하기로 하겠소.”
유방의 입장에서는 한신을 제왕으로 눌러있게 하는 것보다 초나라로 보내는 것이 훨씬 위험률이 적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신은 제왕의 자리보다 초왕의 자리가 너무도 나빴기 때문에 유방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리하여 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신을 제왕으로 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무슨 연유로 초왕으로 바꿔 주시옵니까?
바라옵건대, 신을 제왕의 자리에 그냥 눌러있게 해 주시옵소서.”
한신이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제나라의 풍부한 물산(物産)과 뛰어난 경치, 넓은 봉토 등을 생각하면 초나라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유방은 한신을 타이르듯이 말한다.
“장군은 무엇인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구려. 지난날 장군을 제왕에 봉한 것은 제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점령한 뒤에 말을 잘 들어먹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장군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진압하게 했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오. 만천하가 평정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요.
장군은 본시 회음(淮陰) 태생이 아니오? 게다가 초나라를 평정한 공로자도 장군이기 때문에 장군을 초왕으로 봉해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하게 하려는 것이니 다른 생각은 말고 꼭 초왕으로 부임해 주시오.”
한신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그날로 초왕에 부임하였다.
초나라는 한신의 고국이었다.
그 옛날 회하(淮下)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표모에게 찬밥을 얻어먹은 일과 거리의 깡패들에게 수모를 당하던 과거 일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과거를 생각하며 거리를 돌아보고 있노라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축하를 올려주었다.
그중에는 한신에게 찬밥을 주었던 표모도 나와 있었는데, 한신은 표모에게 황금 천 냥을 주면서
“그 옛날 내가 아주머니에게 찬밥을 얻어먹으며, ‘내가 만일 성공하거든 오늘의 은혜를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한 일이 있었소.
그러자 아주머니는 노발대발하면서 ‘입에 풀칠도 못하고,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는 주제에 무슨 신세를 갚겠다고 큰소리를 치느냐?’하며 나를 몹시 꾸짖으셨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에게서 이렇게 상금을 받게 되니 심정이 어떠하시오?”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표모는 얼굴을 붉히며 상금으로 받아 든 황금 천 냥을 움켜쥐더니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대로 쏜살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또한 한신은 그 옛날 자신을 괴롭혔던 깡패들을 일일이 불러 중위(中尉)의 벼슬을 내려주니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저희들이 무슨 면목으로 이런 벼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저마다 벼슬을 사양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그들을 달래며 말한다,
“내가 오늘날 이런 지위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그대들의 덕택이었네.
내가 당시에 그대들에게 참을성을 배우지 못했다면 내가 어떻게 성공을 했겠는가? 아무 걱정 말고 나의 성의를 순순히 받아주게.”
한신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옛날의 깡패들은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신의 말을 좇았다.
- 제 16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