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62화

2021. 8. 13. 09:25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62화

☞ 초장(楚將) 계포의 충성심

그러나 유방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초나라에서 도망을 가버린 대장 계포와 종이매 문제였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마침내 다음과 같은 방문을 널리 써 붙이게 하였다.

“초장 계포를 생포해 오는 사람에게는 황금 천 냥을 상금으로 준다.
만약 그를 숨겨 두고 신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극형에 처한다.”

※ 註) 계포는 ‘계포일낙(季布一諾)’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사람으로 문무를 겸비한 초나라의 장수였으나 명문가 출신인 항우 밑에 들어가 결국 많은 힘을 기울였음에도 항우의 패배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항우가 아랫사람의 충언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오히려 항우가 천하를 통일했을 것 같기도 한 바, 자신만 아는 오만함으로 인하여 결국 패자(敗者)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에도 재벌가 2세나 3세들의 갑질 파문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명문가랍시고 아랫사람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지 얘기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바, 이러고도 그 기업이 제대로 경영이 될지 의문이 나일 수 없다 하겠다.

한편 계포는 구리산 전투에서 항우가 패망하자, 함양에 살고 있는 주장(周長)이란 사람의 집에 숨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주장은 어느 날 누각 위에 나붙은 계포를 찾는 방문을 읽어 보고 돌아와 계포에게 말한다.

“지금 한제는 장군을 찾아내려고 전국 방방곡곡에 무서운 방문을 내걸고 있습니다.
장군을 숨겨두고 있는 사실이 탄로 나는 날이면 우리 일가족은 모두 참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이까?”
계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히 말한다.

“잘 알겠소이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살아갈 길을 새로 모색해 보겠소이다.”
그리하여 계포는 상투를 잘라 노예(奴隸)로 변장을 하고, 풍삼(馮三)이라는 이름으로 노(魯)나라에 있는 주씨 가문(朱氏家門)에 노예로 팔려가 버렸다.

주씨 가문에서는 풍삼을 진짜 노예인 줄로 알고 돈을 주고 사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풍삼의 행동거지가 결코 노예답지가 않음을 알게 되자 주인은

‘이 사람은 혹시 초나라 출신의 장수 계포가 살아남기 위해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어 하루는 계포를 불러 묻는다.

“그대는 혹시 초나라 대장 계포가 아닌가? 조정에서는 계포를 엄중하게 찾고 있는 중이다.
그대가 계포라면 당장 조정에 잡아다가 바쳐야 하겠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계포는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며 말한다.

“저는 틀림없는 초장 계포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예로 변장을 하고 댁에 팔려 왔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실이 드러났으니 선생은 나를 관가에 잡아다가 상금을 타도록 하소서.”
그러자 주인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내 어찌 상금을 타기 위해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겠소. 천하의 갑부가 된다 하여도 그런 짓은 못하오. 나에게 좋은 친구가 한 사람 있소.
등공 하후영(騰公 夏侯英)이라는 사람이 바로 내 친군데, 그 사람은 지금 낙양에서 한제의 중신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내가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당신을 살려 주도록 하겠소.”
계포는 ‘하후영’이라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란다.

“옛! 하후영이오?”
계포가 놀라는 모양을 보고 주씨가 묻는다.

“왜 놀라시오? 내 친구 하후영이란 사람을 잘 알고 계시오?”
“잘 알다 뿐이옵니까? 저는 지난날 하후영을 상대로 여러 차례 싸운 일이 있어서 그도 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제의 충신이니까 그 사람이 저를 살려 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자 주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하후영은 결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오. 당신이 그렇게 불안하다면 내가 직접 하후영을 만나서 타협을 해보고 오리다.”
주씨는 그날로 집을 떠나 낙양으로 하후영을 찾아갔다.

하후영은 주씨를 반갑게 맞아 술상을 내왔다.
주씨는 술을 마셔가며 하후영에게 묻는다.

“계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라에서는 그를 엄중하게 찾고 계시오?”
하후영이 대답한다.

“계포는 항우의 부하로 있을 때 금상(今上)과 싸울 때마다 한제에게 많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주상께서는 그 원한으로 계포를 기어이 잡아 죽이려는 것입니다.”
주씨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한다.

“무릇 남의 신하로 있는 사람이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오. 그런 일이야 어찌 계포에 국한된 일이겠소?
한제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신 지금에 와서도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 하신다면 그런 편협된 생각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내가 보기에 계포라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든 호걸이었소.
만약 그런 장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면, 계포는 북호(北胡)나 남월(南越)로 달아나서 또다시 한제와 싸우려고 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막대한 손실이 되겠소? 그러니 귀공이 한제에게 간해서 계포를 관대하게 품도록 하시오.
중신들이 할 일이란 바로 이런 일일 것이오.”
하후영은 친구 주씨의 충고를 옳게 여겨 곧 입궐하여 유방에게 아뢴다.

“폐하! 계포에게 무슨 죄를 물으시려고 그를 엄중하게 찾으시옵니까?”
“초장 계포는 전쟁터에서 싸울 때마다 나에게 참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소. 그것을 어찌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리오.
나는 그 분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를 기어이 잡아 죽이려는 것이오.”
하후영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비단 계포뿐만 아니라 모든 장수는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법이옵니다.
계포가 주상과 싸울 때도 승리만 생각했을 뿐이지 상대방인 한나라는 안중(眼中)에도 없었을 것이옵니다.
충성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오니 계포에게 사사로운 원한을 품으실 게 아니라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 주셔야 하옵니다.”
“경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오. 그러나 계포라는 자가 나에게 무참한 욕설을 너무도 많이 퍼부어 그를 용서해 줄 기분이 좀처럼 나지 않는구려.”
이에 하후영이 다시 아뢴다.

“폐하! 우리나라 신하들이 모두가 계포처럼 충성스럽다면, 폐하께서는 가만히 앉아 계셔도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옵니다.
계포는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현인이옵니다.
폐하께서 지금 천하를 평정하고 만승지위(萬乘之位)에 오르신 이 마당에 계포 한 사람쯤 어찌 용납을 못 하실 것이옵니까?
바라옵건데 계포를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폐하의 덕(德)을 만천하에 널리 펼쳐 보이시옵소서.”
유방은 그제야 자신의 편협 됨을 진심으로 깨닫고,

“경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크게 잘못했소이다. 앞으로 계포를 찾게 되면 그의 과거를 불문에 붙일 뿐만 아니라 그의 높은 충성심을 우리에게로 향하도록 회유하여 옛날에 그가 지니고 있었던 지위를 수여하기로 하겠소.”
하고 말했다.

하후영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퇴궐하여 주씨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알려 주었다.
주씨는 그날로 집으로 돌아와 계포에게 교섭 결과를 상세히 말해주면서

“한제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니 나와 함께 낙양으로 올라가 한제를 만나 뵙도록 합시다.”
하고 같이 떠날 것을 재촉하여 계포가 낙양으로 올라와 유방을 알현하니 유방은 반갑게 맞아주면서 말한다.

“그대는 전국 어디에 있더라도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을 터인데, 왜 일찌감치 나를 찾아오지 않으셨소?”
“항왕이 오강에서 자결을 하셨을 때, 신은 따라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 그지 없사옵나이다.”
유방이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지난 날 그대는 나와 싸울 때마다 무섭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것은 어찌 된 일이었소?”
“그때 폐하는 저의 적이었습니다. 적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하오리까?
그러니 싸울 때 상대방에게 욕을 퍼부은 점에 대해서 저는 추호의 뉘우침도 없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과연 그대는 충렬지사(忠烈志士)임이 분명하오. 이제는 그대의 충성심에 의문이 가셔서 내 그대에게 낭중(郎中) 벼슬을 내릴 테니 받아주기 바라오.”
그러자 계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저에게 죽음을 면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하온데, 어찌 관작(官爵)까지 받을 수 있으오리까.”
하고 벼슬을 사양하자, 유방이 다시 말한다.

“벼슬을 사양하다니 아직도 항우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오?
그러지 말고 과거지사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나와 백성들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수 있도록 벼슬을 꼭 받아 주시오.”
이에 계포는 유방에게 두 번 절하며 벼슬을 받고, 금후에는 유방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 제 16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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