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7. 19:48ㆍ초 한지
삼국지(三國志) (120)
유비의 대패(大敗)와 기사회생(起死回生)
이날 밤은 달이 희미하였다. 유비는 조조가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 군사를 아홉 부대로 나누어 곳곳에 매복시킨 줄도 모르고, 장비를 비롯해 조자룡과 더불어 야간 기습 공격에 나섰다.
그리하여 조조의 본영 앞에 이르러 적정을 살펴보니, 보초병도 부실하고 순찰 기병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유비가 의문을 갖고 장비에게 말한다.
"이상하군, 어찌 순찰기병도 없는 게냐 ? 조조는 군기가 엄격한 자인데, 보초병이 없을 리 없어 ?"
그러자 장비가 성격대로 한마디 한다.
"에잇, 형님 ! 그냥 싹 밀고 들어가죠."
그러자 자룡이 어둠속에 조조의 병영 안을 유심히 살펴 보더니,
"주공, 안쪽에 보초병이 있기는 한데, 경계가 생각보다 삼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가 자룡의 말을 듣고 조조의 본영 안쪽을 살펴보니 아닌게 아니라 수 명의 보초병 만이 보였다.
"음, 조조군의 피로가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군."
유비가 그렇게 말을 하자, 장비가,
"형님, 쳐들어가죠."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손가락으로 조조의 본영 안을 가르키며,
"장비, 자룡 ! 저기 장막이 보이느냐 ? 조조가 있는 군막이 틀림없어, 인정 사정없이 돌격하라 ! 조조만 죽이면 성공이다 !"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비와 자룡이
"네 !"
"넷 !"
하고, 대답하며,
"횃불을 밝혀라 !"
하고, 명령하였다. 순간 유비군은 동시에 횃불을 켜들고, 불화살을 조조의 군영안으로 쏟아부었다.
"죽여라 !"
장비가 우뢰와 같은 고함을 지르며, 말을 달려 조조의 군영 안으로 쳐들어 갔다. 그리하여 보초 몇 놈을 일거에 처치하고 보니, 적들의 대항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
적의 군막 안을 살펴보던 병사들이 소리친다.
"주공 !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도 텅 비었어요."
순간, 어디선가 불화살이 날아와 조조의 군막 안을 살피던 군사를 꿰뚫었다.
"으악 !"
"아 !"
"이런 ! 함정이다 ! 철수하라 !"
유비는 화들짝 놀라며 명령하였다.
이와 동시에 적들의 불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어둠 탓으로 적의 위치도 가늠하기 어려운 판에 쏟아지는 화살과 창검에 유비군은 속수무책으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유비 ! 당신은 이미 함정에 빠졌어 !"
중군 대장(中軍 大將) 조인(曺仁)이 유비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사방 팔방에서 조조군의 함성이 쏟아진다.
"유비,장비를 사로 잡아라 !"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무찔러라 !"
장비가 동남에서 몰려오는 군사를 맞아, 서황과 한참 어지럽게 싸우는 중에 뒤에서 악진이 덤벼왔다.
어쩔 수 없이 혈로를 뚫고 포위망을 벗어나니, 적은 기세를 울리며 맹렬히 추격해 온다.
서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겹겹히 막혀 버렸고, 소패로 가자니 그곳에도 대적이 가로막았다.
장비는 어쩔 수 없이 불과 수십 기의 부하를 거느리고 망탕산으로 말을 달렸다.
형세가 급하기는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유비는 형세가 불리함을 깨닫자, 즉시 군사를 돌이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적은 어느새 사방으로 포위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소패성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패성은 이미 적의 수중에 넘어가 화광이 충천하였다.
그리하여 하비성으로 달아나다 보니, 거기에도 적의 무리가 개미떼처럼 엉켜 돌아가고 있었다. 도망치려 하여도 갈 데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망탕산을 뒤로 돌아 산중으로 들어서 말을 달리다 보니, 뒤따르는 병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유비 혼자서 산길을 달리다 보니, 말도 기력을 다해 두 무릅을 꿇고 엎어지며 타고 있는 유비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달리던 말에서 떨어진 뒤 급히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느덧 동녘이 서서히 밝아오는데, 지난 밤 조조의 진영을 급습하다 당한 참담한 패배가 비로서 실감나기 시작하였다.
"조상님들, 유비는 무능했습니다. 조조에게 수 많은 군사들을 잃고 철저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까마득한 망탕산 절벽위에 올라, 유비는 자책하며 절벽아래를 굽어보았다.
바야흐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한 많은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절벽아래서 누군가 소리쳤다.
"거기 계신 분, 유황숙 아니오 ?"
하고, 외치더니 이어서 사정과 훈계조로 외친다.
"유 장군 ! 당신같이 한왕실을 굳건히 지켜야 할 분이, 어찌 책임을 뒤로 하고 목숨을 버리려하시오 ?
나는 허유요 ! 늦게나마 장군을 도울 원군으로 왔으니, 어서 내려와 나를 만나주시오 ! "
절벽을 내려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모습으로 허유와 마주한 유비는 심한 갈증을 달래면서 물었다.
"허 선생 ! 원소가 출병을 거절하지 않았소 ? 선생에게 곤장까지 쳤다던데,"
유비가 전혀 기대하지 않던 허유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난 데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그러자 허유는 코웃음을 치며,
"흥 ! 그렇소, 그랬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되묻는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소 ?"
"현덕 ! 아마 믿기지 않을 거요. 곤장 스무대를 맞고 나니까, 주공의 금쪽같은 아들이 깨어나 울기시작합디다. 살아난 거지요. 덕분에 주공께서 기뻐하시며, 아들을 안고 나와서는 나를 보고 거듭 사과하고 황금 이백냥까지 상을 내리셨소."
허유가 이렇게 대답하자 유비는 실성한 사람처럼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 곤장 한대에 열냥이라, 괜찮군, 괜찮아 ...."
유비는 여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갈증을 달래려 물을 마셨다.
허유가 따라 일어서며 말한다.
"현덕 ! 솔직히 말해, 우리 주공이 그런 분이오. 아들의 병세가 좋아지자, 통찰력이 되살아나 내 건의가 받아들여지고, 안량 장군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허창을 공격하라고 명하고, 내겐 5천 병사로 서주 전황을 알아보라고 하셨소."
그러자 유비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한다.
"하 !...하늘의 뜻이군 ! 하늘은 조조의 편이구려 ! "
하고, 한탄해 마지 않았다.
그러자 허유는,
"뭐요 ?"
하고, 영문 모를 얼굴을 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허유를 향하여 돌아서며,
"허창을 공격할 거 없소. 서주가 이미 함락되었고, 조조의 주력군은 이미 허창으로 귀환했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허유는 놀란 얼굴로,
"현덕 ! 지금 뭐라 했소 ? 당신 군사를 전부 잃었단 말이오 ?"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렇소. 형제는 흩어져 생사를 알 수없고. 병사는 보다시피 모두 잃었소. 솔직히 말하면, 나 조차 검을 잃었소이다."
하고, 말하면서 빈 칼집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러자 허유가,
"세상에 ! 조조란 자가 이리 대단할 줄이야 !..."
하고, 놀라며 말 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갈증으로 물을 다시 들이킨 유비가 하늘을 우러러 고함친다.
"역적은 절대 용납 못한다 ! 이 유비 숨이 붙어있는 한, 조조를 반드시 없앨 것이다 !"
하고, 외치면서 마시다 남은 호리병박을 냅다 집어던졌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허유가 유비를 향하여 손을 들어 보인다.
"하오 !(好 好 !) -> 좋소 ! "
"과연 영웅다운 기개요 !"
허유가 다시 유비에게 말한다.
"현덕 ! 이제 어쩔 계획이오 ? 어디로 갈 것이오 ? ... 현덕 ! 모쪼록 현실적인 판단을 하시오...
내게 생각이 있는데, 차라리 우리 주공에게 투항했다가, 기회를 보아 훗날 다시 일어나는 것은 어떻겠소 ? "
유비는 허유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생각한다.
(정녕 또 남에게 의지해야 하나 ?....)
유비가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허유가 다시 입을 연다.
"현덕 ! 차분히 생각해도 좋소 ! 이 넓은 천하에 영웅이 활개 치지만, 진정코 조조를 멸하고 한 황실을 일으킬 사람은, 우리 주공 원소 외에는 또 누가 있겠소 ?"
하고, 단언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지만 마냥 허유의 권유를 물리칠 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허유에게 두 손을 맞잡아 올려보이며,
"허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하오. 선생의 말씀대로 원소에게 투항하겠소."
하고, 말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허유도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유비를 향해 두 손을 올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하오(好 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