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33화
2021. 7. 15. 07:34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33화
☞ 한왕 유방의 형양성 재탈환
이렇게 외황성을 점령한 항우가 이튿날 팽월을 추격해 가려고 하자, 계포와 종이매가 간한다.
“팽월 따위는 크게 염려할 존재가 아니옵니다. 그보다도 유방이 지금 성고성을 취하고 난 뒤 형양성까지 넘보려 하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그쪽으로 진군하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성고성은 지금 조구(曹咎)가 지키고 있지 않은가?”
“조 장군이 지키고는 있으나 한신이 대군을 몰고 오면 그를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하오니 폐하께옵서 직접 가셔야만 한신을 섬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나는 성고성을 먼저 취하고, 형양성으로 갈 테니 종이매 장군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형양성으로 먼저 가도록 하오. 이번 기회에 유방의 무리를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하겠소.”
항우는 외항성 승리에 도취하여 적을 두려워할 줄 몰랐다.
그리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성고성으로 향했다.
때마침 그 무렵 한왕 자신도 성고성을 공략 중이었다.
한왕은 성고성을 함락시키려고 여러 차례 공격을 퍼부어 보았다.
그러나 적장 조구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일체 응전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올 때까지 적이 아무리 공격해 와도 싸우지 말고 지키기만 하고 있으라.’는 항우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편이 응전해 오지 않으니 한왕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항우가 오기 전에 성을 함락시켜야 할 것인데, 조구가 싸움에 응해 오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그러자 대장 주발(周勃)이 대답한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사옵니다.”
“어떤 방법인지 어서 말해 보오.”
“조구는 성미가 항우만큼이나 괴팍스러워서 남에게 모욕당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병들을 시켜서 조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면 조구는 부아가 치밀어서 반드시 싸우러 나올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사병들을 시켜 조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게 하였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조구는 일체의 반응이 없었다.
사병들은 욕을 퍼붓다 못해 나중에는 성을 향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두들겨 보이며,
“조구, 개 쌍놈아! 내가 똥을 싸 갈겼으니 용기가 있거든 빨리 튀어나와 내 똥이나 처먹어라!”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이 같은 욕을 듣기 무려 5, 6일이 되자, 마침내 조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1만 군사를 일시에 휘몰아쳐 나왔다.
울화가 하도 치밀어 마침내 ‘항우의 엄명’을 무시하고 물밀듯이 성 밖으로 몰려나왔던 것이었다.
조구의 기세는 맹렬하였다.
한왕은 진작부터 작전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던지라 조구의 군사들이 몰아쳐 나오자 짐짓 쫓기기 시작하였다.
“저놈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몰살시켜 버려라!”
조구는 분노가 열화같이 치밀어 올라 맹렬히 추격해 오면서 외친다.
한왕과 그의 군사들은 쫓기고 쫓겨 마침내 범수강(汎水江)을 건너가 버렸다.
그러자 분이 덜 풀린 조구는 자기 자신이 먼저 강을 건너며 명령한다.
“모두 강을 건너 추격하라!”
그리하여 군사들도 모두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조구의 군사들이 강을 절반쯤 건너왔을 때 진작부터 강 양쪽에 잠복해 있던 한나라 군사들이 일시에 함성을 울리며 들고일어나 강을 건너던 조구의 병사들 앞뒤에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군의 공격은 무섭게 이어졌다.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붓는 바람에 강을 건너던 초군 병사들은 이리 쓰러져 죽고, 저리 쓰러져 죽었다.
“아뿔싸 큰일 났구나!”
조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깨닫고 보니 강 건너편에서는 관영과 여마통이 진두지휘하여 공격해 오고 있었고, 강 이쪽에서는 주발과 주창이 진두지휘하여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조구는 진퇴양난에 처하여 결사적으로 강을 되 건너오려고 하였으나 주발이 번개같이 달려와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조구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아아, 내가 군령을 어기고 싸우러 나왔다가 결국에는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탄식하며, 강 한복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조구가 죽고 나자, 한왕은 승전고를 울리며 성고성에 입성하니 성안의 백성들은 모두가 환호성을 울리며 한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왕은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장수들에게도 개선연(凱旋宴)을 성대하게 베풀어 주고 있는데, 문득 비마가 달려와 말하기를
“구강왕(九江王) 영포 장군과 진류 태수 진동(陳同) 장군이 각각 군사 3만씩을 거느리고 대왕 전하를 도우러 오셨사옵니다.”
하고 알려와 한왕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여 술을 친히 내려주며,
“두 분께서는 마침 잘 와 주셨소이다. 나는 이제부터 형양성을 공략하러 떠나겠으니 두 분은 여기 머물러 계시면서 성을 굳게 지켜 주시오.”
영포와 진동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저희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이 성을 지킬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안심하시고 형양성으로 출정하시옵소서. 대왕 전하에게는 언제나 신의 가호가 계실 것이옵니다.”
다음날 한왕은 주발, 주창, 관영, 여마통 등 기라성 같은 맹장들을 거느리고 형양성을 향하여 다시 정도에 올랐다.
그리하여 형양성 30리 밖에 진을 치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왕릉 장군에게 적의 정세를 물어본다.
“지금 적의 준비상태가 어떠하오?”
“지금 형양성을 지키고 있는 적장은 오주(吳舟)라고 합니다. 오주는 적장이지만 매우 영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안에 있는 고로(古老)들을 모아 놓고 대왕 전하에 대한 민심의 향방을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성안의 노인들을 모아 놓고 나에 대한 여론을 조사해 보았다고? 그것참 흥미로운 일이구려. 그래, 내게 대한 고로들의 여론은 어떻게 나왔다고 하던가?”
“고로들은 열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한왕은 희대(稀代)의 장자(長者)이시니 싸울 생각 말고, 형양성을 곱게 내드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오주는 그 여론에 크게 감동했다고 하니까 잘하면 싸움을 하지 않고도 성을 무난히 접수할 수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싸움을 아니 하고도 형양성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써서 오주를 설득하는 것이 좋겠나?”
“대왕께서 오주에게 자진 항복을 하도록 친서(親書)를 보내신다면 만사는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겨 곧 오주에게 친서를 보냈다.
“친애하는 오주 장군!
나는 진작부터 장군의 영명을 사모해 오고 있었소. 장군과 같이 영명한 무장과 싸운다는 것은 나로서도 슬프기 그지없는 일이오. 우리가 싸움을 하게 되면, 무고한 백성들이 많이 희생될 것이니 그 또한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성안의 백성을 궁휼히 여기는 장군과 나의 서로 같은 마음을 감안하시어 스스로 형양성을 나에게 넘겨주신다면, 나는 장군의 은공을 평생 잊지 아니할 것이오.
장군의 영명하신 판단이 있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오.
한왕 유방“
오주는 한왕의 친서를 받아 보고 한왕의 인자함에 탄복하여 그날로 형양성을 넘겨주었다.
한왕이 형양성에 두 번째 입성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종이매가 1만 군사를 거느리고 30리 밖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왕은 왕릉, 주발, 조참, 관영 등 네 사람의 장수로 하여금 종이매를 즉시 쳐부수라 명했다.
종이매는 먼 길을 오느라고 몹시 피로해진 군사들인데다 한왕이 형양성을 무혈점령했다는 소식을 듣자, 형편없이 사기가 저하되었다.
게다가 호랑이 같은 장수 네 사람이 일시에 총공격을 퍼부어 오니 초군의 대응은 처음부터 탄탄하지 못했다.
싸움은 싱겁게 초군의 지리멸렬로 귀결되었으나 종이매는 간신히 목숨만 살려 줄행랑을 놓았다.
한편, 항우는 대군을 몰아쳐 성고성으로 와보니 수장(守將) 조구는 싸우다 전사를 해버리고, 지금 성고성은 그 이름도 쟁쟁한 영포가 진동과 함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 아닌가?
항우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않는다.
“아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성을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말라고 그토록 말했건만, 조구는 어찌하여 군령을 어기고 싸우다가 성을 빼앗기고 자진했단 말인가?”
항우는 울화통이 터져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이번에는 군사들의 방향을 돌려 형양성으로 향하자, 곧 비마가 달려와 말하기를
“종이매 장군이 형양성을 공략하다가 크게 패하여 행방불명이 되었고, 형양성 수장 오주는 자진 항복하여 형양성은 이미 유방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하고 알렸다.
항우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고로 일단 광무(廣武) 땅에 진을 치고 다음 작전에 골몰하였다.
- 제 13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