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17화

2021. 6. 29. 06:58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17화

☞ 장량의 계략

다음날 장량은 한신, 소하 등과 함께 함양을 떠나 형양성에 도착하여 그 길로 한왕을 찾아뵙고, 지금까지의 경과를 소상히 보고한 뒤에

“한신과 소하를 만나시거든 이러이러하게 말씀하시옵소서.”
하고 미리 말을 일러주었다.

이윽고 소하와 한신이 입궐하였다.
그러자 한왕은 소하의 손을 반갑게 붙잡으며 말했다.

“승상은 포중에 계시면서 백만 군사들의 군량을 공급해 주시느라고 참으로 노고가 많으셨소이다.”
그런 다음 다시 한신의 손을 정답게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장군의 충고를 듣지 않고 대군을 일으켰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으니 부끄러워 장군을 대할 면목이 없소이다.”
그러자 한신이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대왕께서 팽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은 아무런 도움도 되어 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사옵니다. 장량 선생의 말씀을 듣자옵건대, 우리가 점령한 관중의 봉토를 항우에게 반환하신다고 하옵는데, 그런 일은 아니 하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나 역시 점령한 관중 봉토를 되돌려 주고 싶지는 않소. 그러나 태공 내외분과 왕후를 돌려받자니 그 길밖에 없는 것을 어찌하겠소?”
그러자 한신이 결연히 말한다.

“그 일은 걱정을 마시옵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이 태공 내외분과 왕후를 제 손으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한신의 얼굴에는 패기가 넘쳐 있었다.

한신의 그런 모습을 보자, 한왕은 내심 크게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한신의 사기를 더욱 부추겨 주기 위해서 일부러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장군의 용맹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러나 항우는 지금 연(燕)나라와 제(齊)나라까지 항복시켜서 그 기세가 등등하기 이를 데 없으니, 장군 혼자서 어찌 막강한 초나라를 당해 낼 수가 있겠소? 얼마 전에 항우가 ‘한신이라는 자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에 사로잡아 버리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고 하오. 그래서 나는 아예 싸우기를 단념하고, 장량 선생과 소하 승상에게 관중 봉토와 포로로 잡힌 나의 가족을 교환하자고 하였던 것이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울분을 금치 못하며 호소하듯 말했다.

“항우가 어떤 호언장담을 했어도 대왕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마시옵소서. 대왕께서 출정명령만 내려 주시면 신은 맹세코 항우를 격파하고야 말겠습니다. 만약 제가 항우에게 패하고 돌아오게 되면 그때는 신을 군법에 돌려 중죄를 내려 주시옵소서.”
한왕은 그제야 적이 기뻐하며 말한다.

“원수가 그처럼 말씀하시니 어떤 묘책을 가지고 계신지 우선 그 내막을 좀 들어 보기로 합시다.”
“신은 함양에 있는 동안에 파초대전(破楚大戰)에 대비하여 이미 수백 대의 전차(戰車)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서(兵書)를 보게 되면 ‘평지에서는 전차를 써야 하고 험악한 산중에서는 보병(步兵)을 써야 하고, 적을 추격할 때에는 기병(騎兵)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형양성과 팽성 사이는 끝없는 평지가 이어지므로 우리가 전차를 이용하면 적을 모조리 격파할 수 있사옵니다.”
한왕은 한신의 계략을 지극히 만족스럽게 여기며 물었다.

“전차라는 것은 어떻게 생긴 것이오?”
“전차의 외형은 보통의 수레와 다름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앞머리에는 저수통(貯水桶)을 달아서 적의 화공(火攻)을 방지할 수 있고, 뒤에는 포장을 쳐놓아서 포장 속에는 철포(鐵砲)와 궁시(弓矢)를 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옵니다. 이와 같은 전차 수백 대를 철갑을 입힌 말(馬)에게 끌게 하여 일시에 적진을 향하여 달려 나가며 공격을 퍼부으면, 제아무리 항우라도 패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한왕은 새삼 감탄의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한다.

“장군이 그토록 대단한 전차를 수백 대나 미리 준비할 줄을 나는 전혀 몰랐소이다. 아무튼 상대가 워낙 막강한 적이니까, 이왕이면 실수가 없도록 전차를 더 만들어 훈련시켜서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소?”
“대왕 전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형양성 안에서는 그날부터 군사들을 동원하여 전차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전차를 부지런히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훈련을 맹렬하게 계속하기를 무려 60여 일이나 이어졌다.

승상 소하는 그동안 함양으로 돌아가 군수물자를 풍성하게 보내왔기 때문에 이제는 50만 군사가 언제든지 출동해도 좋을 만큼 되었다.
이에 한신은 한왕에게 아뢰었다.

“이제는 싸울 수 있는 태세를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항우에게 선전포고문을 당당하게 보내주시옵소서. 포고문의 내용은 될수록 항우를 분노하게 쓰셔서 항우가 우리에게 먼저 덤벼오도록 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항우를 쳐부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한왕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말한다.

“마침 항우의 사신이 지금 객사(客舍)에 와 있으니 선전포고문을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은 어떻겠소?”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놀란다.

“항우의 사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사옵니까?”
“함양을 접수하려는 사전 교섭을 위해 사람을 보내왔는데, 항우가 왕릉(王陵) 장군의 노모(老母)를 볼모로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항우가 왕릉 장군을 유인해 가려고 사람을 일부러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오.”
“그렇다면 신에게 그자를 좀 만나 볼 기회를 주시옵소서. 신이 그자를 매수하는 공작을 써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신은 대궐에서 물러 나오는 길에 객사로 항우의 사신을 직접 찾아간 연후에 좌우를 물리고 나서 황금 열 덩이를 넌지시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공도 알고 계시다시피 나는 오랫동안 항왕을 섬겨온 관계로 지금도 초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오. 그래서 항왕에게 밀서를 한 통 보내고 싶으니 나의 밀서를 꼭 좀 전해주시면 고맙겠소.”
금덩이를 보자 항우의 사신은 얼굴에 희색이 가득 떠오른다.

“그런 일이라면 틀림없이 전해드릴 테니 걱정 말고 밀서를 내게 주시오. 장군이 귀순하시겠다는 말씀인데, 사실 항왕께서는 왕릉 장군의 능력보다는 한신 장군을 더욱 높게 평가하고 계신다오. 한 장군께서 귀순해 오신다면 항왕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큰일을 맡기게 되실 것이오. 그러면서 장군의 의도를 알린 나의 공로도 빛날 것이 분명하니 밀서를 빨리 써 오시오.”
한신은 ‘밀서’가 아닌 ‘선전포고문’을 손수 써서 항우의 사신을 다시 찾아와 주면서 말한다.

“이 밀서의 내용에는 중대한 사연이 담겨 있으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항왕에게 직접 전해주셔야 하오. 만약 밀서의 내용이 알려지는 날이면 공도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염려 마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밀서만은 내가 항왕께 직접 전달하겠소.”
항우에게 보내는 밀서의 내용이 ‘한신의 귀순 사연’으로 철석같이 믿은 사신은 한신에게 건네받은 서신을 품속 깊이 간직하고 초나라로 총총히 귀환하였다.

- 제 11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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