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101화

2021. 6. 13. 09:03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01화

☞ 장한의 최후

한왕이 고노성(高奴城)에 입성하자, 한신의 전공을 크게 치하하며 말한다.

“삼진왕의 거점인 폐구, 역양, 고노의 세 성을 단시일에 모두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대원수의 탁월한 계책 덕분이었소. 내가 워낙 불민하여 원수의 대재(大才)를 미처 모르고 있었던 데다 승상의 천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오.”
한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우리가 삼진을 쉽게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신의 공로라 할 수 있으오리까? 모든 것은 대왕 전하의 천위(天威) 덕택인 줄로 아뢰옵니다.”
“무슨 말씀을! 원수의 겸허하신 마음가짐에 거듭 탄복만이 있을 뿐이오.”
그리고 한왕은 말머리를 돌려

“우리가 삼진을 평정하였으니 이제는 함양을 평정해야 할 게 아니오. 함양은 언제쯤 공략하시려오?”
“함양을 취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장한이 폐구성을 버리고 지금은 도림성(桃林城)으로 쫓겨 가 칩거 중이므로 우리가 군사를 모두 함양으로 이끌고 가게 되면, 장한은 폐구성을 다시 탈환하여 우리의 보급로를 차단할 위험이 농후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함양성 공략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 계시면서 민심을 수습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신이 도림에 은거 중인 장한을 먼저 처치하고 난 뒤 함양으로 떠나갈 것이옵니다.”
다음날 한신은 조참, 주발, 시무, 신기 등 네 대장을 대동하고 1만 군사로 도림성 정벌에 나섰다.

이때, 장한은 도림성에서 전상(戰傷)을 치료하며, 팽성에서 지원군이 오게 되면 폐구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연 한신이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니 장한은 크게 분노하며, 대장들에게 말한다.

“남의 사타구니 밑이나 기어 다니던 한신이라는 ‘고부’가 폐구성을 빼앗고 나더니 기고만장하여 이곳까지 쳐들어온다고 하니, 이번만은 그대들이 힘을 모아 설욕을 해줘야 하겠다.”
그러자 대장 손안이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우리는 병력이 열세하고 지난 전투로 인해 피해가 막심한 터이니, 팽성에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성을 지키고만 있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섣불리 싸우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술책에 말려들기 쉬울 것이옵니다.”
손안의 진언은 지극히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팽성에 여러 차례 지원군을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원군이 언제 와 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장한은 얼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지원군을 급히 보내주도록 팽성에 여러 차례 요청을 했지만, 항왕은 이 순간까지도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고 있소. 어쩌면 거리가 먼 관계로 지원군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와 주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오. 왜냐하면,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적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면, 우리는 군량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어려워지기 전에 되도록 빨리 승부를 결해야 될 것이오.”
이리하여 장한은 여마통, 계포, 계향, 손안 등 네 장수와 함께 5천밖에 안 되는 군사를 거느리고 비장한 각오로 성을 나와 적진을 향하여 출동하였는데, 한신은 장한을 보자 가까이 다가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장한 장군은 폐구성을 빼앗긴 주제에 아직도 나와 싸울 용기가 남아 있는가?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니 이제는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장한은 조롱을 당하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 쓸개 빠진 고부놈아! 용기가 있거든 우리끼리 겨뤄보자!”
하고 외치며 한신을 향하여 질풍같이 덤벼들었다.

그러자 조참과 주발이 등 뒤에서 번개같이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 맡아 양군 사이에는 치열한 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

군사의 숫자에서 밀리다 보니 싸움이 오래 계속될수록 장한의 군사들이 밀리게 되자, 모두 말머리를 돌려 도림성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한신이 그 광경을 보고 붉은 깃발을 높이 흔들자, 뒤에서는 조참과 주발이 장한을 맹렬히 추격해 오는데, 홀연 전방에서는 신기와 시무가 많은 군사들로 퇴로를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독 안에 든 신세가 되어 버린 장한은 계포, 계향과 함께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싸우면 싸울수록 만신창이가 되어 마침내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아!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내뱉은 장한은 자신을 향해 점점 조여 오는 포위망을 도저히 뚫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순간 그는 자기의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비장하게도 자진(自盡)하고 말았다.
진실로 무장다운 부끄러움이 없는 최후였다.

이로써 진황(秦皇) 때부터 군인의 길로 들어서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항우에게 투항하여 자기 자신의 본향(本鄕)인 진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항우에 의해 옹왕(壅王)으로 봉해졌던 장한은 한신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었다.

장한이 죽고 나자 계포와 계향은 최후까지 싸움을 계속하다가 한나라 군사들에 의해 목이 달아나 버렸고, 여마통과 손안은 백기를 높이 쳐들고 항복하였다.
한신은 전투 중지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여마통과 손안을 가까이 불러 말한다.

“그대들은 천명을 알고 순순히 항복해 주어서 고맙소. 장한 장군도 항복을 했더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오.”
손안이 대답한다.

“장한 장군은 자신의 용맹을 너무도 과신한 탓으로 오늘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옵니다.”
한신이 여마통에게 물었다.

“도림성을 지키는 병력은 얼마나 남았는가?”
여마통이 대답한다.

“성의 수비 병력은 4, 5백 명뿐이옵니다. 그러나 그들도 군량 부족으로 모두가 굶주려 있기 때문에 제가 대원수를 모시고 들어가면 모두가 저항 없이 대원수께 굴복할 것이옵니다.”
한신이 여마통과 손안을 앞세우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도림성으로 다가가니, 과연 군사들은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쌍수를 들어 한신의 입성을 환영해 주었다.

한신은 성안으로 들어오자, 굶주린 백성과 군인들에게 구휼미를 골고루 나눠 주어 민심을 안정시킨 뒤에 고노성으로 다시 돌아와 한왕에게 아뢴다.

“장한을 처치함으로써 후환을 없앴사오니, 이제는 안심하고 함양으로 진군할까 하옵니다. 그런데 출전하기에 앞서 대왕전에 특별히 앙탁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한왕은 장한을 제거하였다는 소식에 크게 놀라면서

“무슨 일인지 어서 말씀해 보시오. 원수의 부탁이라면 내 어찌 마다하겠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실은 이번에 제게 항복해 온 여마통과 손안은 비록 적장(敵將)이기는 하오나 그들은 재능이 비상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충성심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 그러하니 그들 두 사람을 특별히 대장으로 발탁했으면 싶사오니 대왕께서는 윤허를 내려주시옵소서.”
한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포로로 잡아 온 적장을 대장으로 발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지난번에 장평과의 대산관 전투 때는 장평이 우리의 가짜 귀순병을 호위대장으로 썼다가 우리에게 완패당한 일이 있었는데, 원수께서는 그 일을 어느새 잊어버리셨단 말씀이오?”
적의 포로를 대장으로 등용하자는데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한신은 자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 일을 신이 어찌 잊어버렸사오리까? 그러나 그 일과 이번 일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옵니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이오?”
“함양을 공략하려면 그들을 반드시 이용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기에 특별히 앙탁드리오니, 대왕께서는 신을 믿으시고 윤허를 내려 주시옵소서.”
한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원수께서 그처럼 말씀하시니 내 어찌 끝까지 반대야 하겠소. 나는 원수만 믿으니 원수가 알아서 생각대로 하시오.”
이리하여 한신은 여마통과 손안을 그날로 한나라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포로로 잡은 적장들을 대장으로 발탁하여 무엇에 쓰려는지 그 내막은 오로지 한신 자신만이 알고 있는 깊은 계략이었다.

※ 註 : 1. 옹왕(雍王) 장한(章邯)에 대하여

장한은 원래 진(秦)나라의 명장이었다.
문무를 겸비한 용맹과 지략이 있는 장군이었는데, 이런 백전노장이 어쩌다가 항우의 밑에 들어가 이처럼 죽게 된 것일까?

때는 진시황의 폭정과 조고의 전횡이 극에 달하여 전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즈음 특히, 진승과 오광의 반란으로 옛 초나라 땅부터 점차 민중봉기의 기세가 커질 때 실권을 쥐고 있던 내시 조고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장한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사마흔과 동예를 부장 삼아 20만 대군을 출병시킨다.

정예병인 장한의 진병은 한 싸움에서 진승과 오광이 이끄는 의병(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고 다만 의기로만 뭉친 군대이니 사실상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병사)을 물리친다.

이렇게 봉기가 일어난 지역을 좌충우돌로 평정해 가며 싸움에 진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진의 조정에서는 장한의 명성이 오르내리고,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을 휘두르는 환관 조고의 입장에서는 장한이 큰 걸림돌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뒤이어 출병한 항우와의 싸움에서 그는 항우의 용력에 밀려 일패도지(一敗塗地)한다.
이 싸움이 그가 패한 첫 싸움이라고 하는데, 결국 2세 황제에게 구원병을 추가 요청하나 황제에게 올린 장계는 조고가 중간에서 가로챈다.

이에 조고는 장한이 전쟁에 이겨 귀환하게 되면, 강력한 실권자가 되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으로 판단,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게 된다.
원병은 오지 않고, 막강한 항우는 계속 싸움을 걸어온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진나라의 충신 장한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항우에게 패하여 사마흔, 동예와 함께 초나라에 귀순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초패왕 항우 밑에 들어간 세 사람을 항우는 삼진왕(三秦王)에 임명하게 되는데, 장한은 옹왕, 사마흔은 새왕, 동예는 적왕이 된다.

이때 장한의 부하인 진나라 병사 20만 명을 항우가 산채로 생매장하는데, 이런 치욕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던 장한이었다.
어쨌거나 삼진왕은 항우에 의해 파촉으로 쫓겨 들어간 한왕(漢王) 유방이 다시 함양을 거쳐 중원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파촉의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진창으로 빠지는 샛길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삼진왕은 그 길로 나온 한신과의 싸움에서 사마흔과 동예는 귀순을 하고, 장한은 한 많은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한에게 귀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그는 왜 자결했을까?
아마도 과거 20만 명의 부하를 생매장시키면서 자신은 왕으로 살아남은 것을 마음속의 치욕이라 여겨 평생 두 번째 패전에서는 귀순하지 않고 자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 註 : 2. 장한이 죽은 이후 계속된 싸움에서 죽은 계포와 계향

계포일낙(季布一諾)의 고사성어로 유명한 계포(季布)는 초나라 장군으로 항우가 죽을 때까지 항우를 섬기다가 초나라 멸망 후 유방을 피해 숨어 지내게 된다.

유방은 초나라의 잔당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계포의 목에 현상금까지 걸고 그를 찾는다.
그 후 하후영과 연이 닿게 되고, 하후영의 천거로 그는 한나라 관리로 등용하게 되어 천수를 누린다.

그러므로 한신과 장한의 싸움에서 죽은 계포는 동명이인으로 다른 사람이다. 아니면 소설가 정비석이 착각하여 이 싸움에서 계포를 죽였을 개연성이 있다.

한편, 계포와 함께 항우의 장군이었던 종리말(鍾離眜)도 숨어 지내다 나중에 한신을 찾아가게 되고, 이로 인해 한신은 적장을 숨겨준 것으로 유방의 오해를 받는다. 결국 유방의 토사구팽을 받는 한신이다.
이 모든 것이 잘 짜여 진 유방의 계획은 아닐 런지...

※ 종리말(鍾離眜) : 성은 鍾離, 이름은 眜이다. 종리매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안사고의 ‘한서’ 음주에 따르면 종리말이 옳다. 물론 정비석 초한지나 이문열 초한지에서는 종리매로 등장한다.

중국을 재통일하여 漢(한)나라의 고황제(高皇帝)가 된 유방은 그 후 자신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힘 있는 장수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데, 이것이 정녕 권력의 속성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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