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99회

2021. 6. 11. 06:34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99화

☞ 옹왕 장한의 패주(敗走)

장한은 폐구성으로 간신히 돌아왔지만, 몸에는 지난 전투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어 당분간 싸울 의욕이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전군에 다음과 같은 대응책을 선포하였다.

“아군은 적들과 일절 싸울 생각을 말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후 오직 지키기만 하여라. 적은 조만간 대거 공격해 올 것이나 우리의 성은 워낙 금성철벽(金城鐵壁)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어도 결코 함락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왕년에 천하를 주름잡던 장한이 내린 명령치고는 너무도 굴욕적인 대응책이었다.

바로 그 다음 날 한나라 군사들은 폐구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본격적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공격은 놀랍도록 치열하였다.

그러나 폐구성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백수대강(白水大江)이 폐구성을 에워싸고 있어서 단순한 무력 공격만으로는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었다.
한군 대장 숙손통(叔孫通)과 장창(張倉) 등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효과가 없자, 대원수 한신에게 품한다.

“지금처럼 폐구성을 공격해서는 성을 함락시킬 가망이 없사옵니다. 게다가 사마흔과 동예의 지원군까지 몰려오게 되면 우리는 점점 불리해질 것입니다. 원수께서는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 주시옵소서.”
“그러잖아도 지금 새로운 계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오. 폐구성을 닷새 안에 함락시킬 계책을 생각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그리고 한신은 대장 조참(曹參)을 아무도 모르게 폐구성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폐구성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조참에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려주었다.

“지금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폐구성은 백수대강의 두 줄기 물길로 둘러싸여 있소. 산에서 흘러 내려오던 강물이 두 줄기로 갈리면서 한쪽 물은 폐구성의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다른 한 가닥 물은 폐구성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단 말이오. 내 말 알아듣겠소?”
“예, 알겠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무력만 퍼부어서는 폐구성을 함락시킬 가망이 없으니, 이제는 부득이 물로써 적을 함락시킬 방법을 써야 하겠소. 장군에게 군사 3천을 줄 테니 장군은 이제부터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동, 서 양 물줄기의 물을 가로막는 보(洑)를 높이 쌓아 올리도록 하시오. 때마침 장마 직후여서 물이 무척 풍부하므로 보를 높이 쌓았다가 일시에 터뜨려 버리면, 모든 물이 폐구성 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가 우리는 애써 싸우지 않고도 적을 순식간에 어육(魚肉,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을 것이오.”
한신은 조참에게 백수대강 원류(源流)에 보를 쌓으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손숙통에게 군령을 내렸다.

“장군은 폐구성을 포위하고 있는 군사들에게 앞으로 닷새 동안 계속 공격을 하도록 명령하시오. 그런 연후에 닷새째 되는 날 자시(子時, 자정 전후)부터 군사들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산상으로 철수시키시오.”
한신은 수공작전(水攻作戰)의 비밀을 은폐하기 위해서 물막이 보를 쌓는 기간 동안 공격을 계속하도록 위계 전술(僞計戰術)을 명령하였다.

한편, 장한은 일절 싸울 생각은 아니하고 성안에서 농성(籠城)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화살이 공중으로부터 빗발처럼 계속 쏟아져 내려오는 데는 불안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엿새째 되는 날 새벽이 되자, 갑자기 화살이 하나도 날아오지 아니하고 적진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아닌가?
장한은 지극히 의심스러웠다.

“적진이 별안간 조용해졌으니 이게 웬일이냐?”
“적은 화살이 떨어져서 아예 철수를 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장수 하나가 망루에 올라가 적정을 살펴보고 오더니

“개미 떼처럼 들끓고 있던 그 많은 한나라 군사들이 밤사이에 모두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한 놈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고 보고를 하며, 한마디 덧붙여 말한다.

“아무리 공격을 하여도 우리 쪽의 응전이 전혀 없으니까, 기진맥진하여 깨끗이 철수해 버린 것이 확실합니다.”
장한은 그 보고를 듣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 것들이 제 아무리 공격을 해본들 결코 함락될 우리의 성이 아니다. 이제는 마음 놓고 편히 쉬도록 하거라.”
장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홍수가 노도처럼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성안이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물이냐?”
군사들은 난데없는 홍수에 허우적거리며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랐다.

홍수는 시시각각 불어나 도도하게 흘러드는 물결에 인마가 둥둥 떠내려갈 지경이고 보니 성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을 방불케 하였다.
날은 멀쩡하게 개어 있건만 난데없는 홍수가 엄습해 오고 있는 괴이한 현상!

그것은 백수 대강의 물을 닷새 동안이나 가두어 두었다가 일시에 보를 무너뜨려 놓는 바람에 나타난 인위적인 대홍수였건만 장한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렴 장한은 영문 모를 홍수에 쫓겨 몇 사람의 장수들과 함께 북문으로 달려 나와 도림성(桃林城)으로 피난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신은 산 위에 몸을 숨기고 장한이 도망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참에게 명한다.

“장한이 폐구성을 버리고 도림으로 쫓겨 갔으니 이제는 성안의 물을 빨리 뽑아 버리고, 전투 정리를 신속히 하도록 하시오. 그런 연후에 대왕 전하를 폐구성으로 모셔 와야 하겠소.”
이렇게 한신은 폐구성을 수공 작전으로 점령한 후 한왕을 모셔다 놓고, 창고에 쌓여 있던 곡식을 백성들에게 푸짐하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오랫동안 가혹한 수탈(收奪)에 시달려 오던 백성들은 한왕의 성덕을 저마다 입을 모아 찬양하였다.

- 제 100화에 계속 -

'초 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한지101화  (0) 2021.06.13
초한지 100 회  (0) 2021.06.12
초한지 98화  (0) 2021.06.10
초한지 97화  (0) 2021.06.09
초한지 96화  (0) 202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