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00 회
2021. 6. 12. 06:51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00화
☞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의 귀순
한편, 역양성(塞 땅의 도성)에 있는 새왕(塞王) 사마흔은 장한이 폐구성을 빼앗기고 도림성으로 쫓겨 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대장 이지(李芝)를 불러 긴급 대책을 논의하였다.
“한신이 폐구성을 점령했다니 이제는 우리에게 덤벼 올 게 아닌가! 저들은 우리보다 군사가 많고 화력이 앞서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므로 고노성(高奴城)으로 사람을 보내어 적왕(翟王, 동예)과 합동작전을 펴면서 항왕(項王)께 구원병을 요청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사마흔은 동예와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 놓고 좋은 소식을 고대하고 있는데, 돌연 비마가 달려오더니,
“한나라 군사들이 지금 유가진(劉家鎭)으로 진격해 오고 있는 중이옵니다.”
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사마흔은 크게 놀라면서
“한나라 군사들이 어느새 유가진까지 진격해 왔다는 말이냐? 여기서 유가진까지는 몇 리나 되느냐?”
“백 리 거리밖에는 안 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니 마주 달려 나가서 중도에서 섬멸시켜 버려야 하겠다.”
사마흔은 대장 경창(耿昌)과 오륜(吳倫)을 선봉장으로 삼아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역양성에서 50리 밖에 진을 치게 한 다음 자신도 1만 군사를 이끌고 30리 밖까지 나와 후진(後陳)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역양성으로 진군을 하다 보니 저 멀리 산중에 적의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기가 지금부터 정벌하려는 사마흔의 군사임이 분명하였다.
한신은 행군을 멈추고, 몸소 진두로 달려 나와 적진을 향하여 외쳤다.
“사마흔 장군은 들으시오. 한나라 군사는 본시가 천병(天兵)이오. 따라서 우리가 가는 곳에는 적이 없는 법이오. 그런데 장군은 어찌하여 순순히 항복할 생각은 아니 하고, 우리와 정면으로 싸우려 하고 있소? 이는 천명(天命)에 어긋나는 일임을 어찌 모르시오?”
그야말로 적의 기세를 말로 꺾어 버리려는 오만불손하고도 모욕적인 공갈이었다.
사마흔은 후방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한신의 공갈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봉대장 경창과 오륜은 공갈에 크게 분노하여 한신에게 마구 덤벼들었다.
한신이 4, 5합을 싸우다가 몸을 뒤로 피하니 번쾌와 주발이 번개처럼 달려 나와 싸움을 가로맡았다.
경창과 오륜도 녹록치 않은 장수들인지라, 네 장수의 싸움은 불을 뿜는 듯이 격렬하였다.
쫓고 쫓는 격렬한 싸움이 30여 합쯤 계속되었을 무렵, 번쾌가 돌연 장검을 휘둘러 경창의 목을 날려 버리니 오륜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려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도망가는 적을 그냥 내버려 둘 한신이 아니었다.
“적을 가차 없이 추격하라.”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30리를 추격하니 사마흔이 1만 기를 이끌고 마주 달려 나오며 한신에게 외친다.
“한신은 듣거라, 옹왕이 어쩌다가 너에게 폐구성을 빼앗겼지만, 너 같은 겁쟁이에게 성을 빼앗길 내가 아니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놈은 당장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너는 장한의 졸개가 아니냐! 나는 장한조차 대번에 정벌해 버렸거늘, 네가 주제넘게 무슨 큰소리를 치고 있느냐?”
한신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마흔은 장창을 꼬나 잡고 한신에게 덤벼들었다.
한신이 사마흔을 상대로 5, 6합을 싸우고 있는데, 번쾌와 주발이 또다시 말을 달려 나와 싸움을 가로 맡았다.
그리하여 10여 합을 더 싸우다가 사마흔이 힘에 겨워 도망을 치고 있는데, 홀연 신기와 관영이 앞을 가로막으며 마주 달려 나왔다.
혼비백산한 사마흔이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성문 앞까지는 무사히 돌아왔으나 한나라 군사들이 어느새 성을 점령해 버렸는지, 그들은 사마흔을 보자 성벽 위에서 입을 모아 이렇게 놀려대는 것이었다.
“역양성은 이미 함락되었으니, 성주는 빨리 항복이나 하시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사마흔은 전신에 힘이 쭉 빠져나가 버려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아, 나도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마흔의 입에서 그와 같은 한탄이 나왔다.
순간 한나라 군사들이 벌떼처럼 무섭게 덤벼들어 사마흔의 몸에 결박을 지어버렸다.
그리하여 한신의 앞에 꿇어 앉혀 놓으니, 한신은 사마흔의 결박을 손수 풀어주며 부하들에게
“이 어른을 나와 똑같은 상좌(上座)로 모셔 올려라!”
하고 정중하게 대해 주는 것이 아닌가?
사마흔은 패군지장인 자기를 이처럼 깍듯이 대해 주는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한신에게 배복(拜伏, 엎드려 절)하며 말한다.
“망국의 포로인 나를 무슨 까닭으로 이처럼 정중하게 대해 주십니까?”
한신은 사마흔을 대청마루로 모셔 올려놓고 동등하게 대좌하며 조용히 말을 한다.
“장군은 진나라 때부터 명장으로서 지금은 왕위에까지 오르신 분이오. 장군이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우리에게 귀순을 해 오신다면, 그로서 전쟁도 피할 수가 있고, 백성들도 고통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장군께서 저희와 협력해 주실 수만 있다면, 장군과 나 사이에 신분 고하가 어찌 있을 수 있겠소이까?”
사마흔이 한신의 간곡한 설득에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원수께서 나를 이처럼 후하게 대해 주시니, 내 어찌 보답이 없을 수 있으오리까? 이제부터는 초를 버리고 한왕을 위해 원수의 명령에 따르기로 하겠나이다.”
한신은 크게 기뻐 사마흔의 손을 마주 잡으며 다시 말한다.
“장군이 이제부터 한왕을 위해 공로를 세우신다면, 후일에 또다시 왕위에도 오르실 수 있으오리다.”
“이제부터는 한왕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다할 결심이니 원수는 명령만 내려주소서.”
“고맙소이다. 나는 앞으로 장군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걸겠습니다.”
한신은 이렇게 말하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이번에는 사마흔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말했다.
“우리가 역양성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 정식으로 입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승자요, 장군은 패자라고 하지만, 우리가 이미 뜻을 같이하기로 맹세를 하였으니, 우리 사이에 승자와 패자의 구별이 어찌 있으오리까? 역양성 주인은 어디까지나 장군이었으니까, 오늘의 입성식(入城式)에는 장군도 나와 함께 자리해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
너무도 뜻밖의 요청에 사마흔은 얼른 대답할 바를 몰라 하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
“역양성은 이미 한나라의 영토요. 우리 두 사람은 모두가 한왕의 신하이니, 조금도 거북하게 여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장군께서는 부디 나의 요청을 들어주소서.”
한신은 사마흔이 한나라에 귀순한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하고, 또 사마흔의 위신도 세워주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날의 입성식에는 한신과 사마흔이 똑같은 자격으로 참석하였고, 한신은 입성식이 끝나는 대로 백성들에게 한왕의 이름으로 많은 구휼미를 나눠 주었다.
백성들은 구휼미를 받아가며 저마다 ‘한왕 만세!’를 외쳐대니, 사마흔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말한다.
“한왕께서 덕망이 높으신 분이라고 들어 왔지만, 백성들이 한왕을 이렇게나 사모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한왕에게 모든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말한다.
“장군이 한왕을 위해 애써주셔야 할 일이 꼭 하나 있소이다.”
“제가 한왕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어떤 일이옵니까?”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는 적왕(翟王) 동예를 귀순시키는 일이오. 우리가 고노성(高奴城)으로 쳐들어가면 동예는 반드시 항전해 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피차간에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고노성 백성들의 고통도 막대할 것이오.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드시 전쟁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오. 따라서 전쟁 대신 화해를 하는 것이 좋겠는데, 장군께서는 동예와 매우 절친한 사이시니, 그에게 서한을 보내시어 스스로 귀순해 오도록 설득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옵니다. 동예와 저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므로 제가 이해로써 설득하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사마흔은 동예에게 ‘항복 권고문’을 써서, 대장 이지를 시켜 동예에게 보내었는데, 항복 권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새왕 사마흔은 삼가 적왕 동예 휘하께 글월을 올립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옛날 모두가 진나라 장군이었건만, 진황(秦皇)이 무도하여 초군의 손에 패망하는 바람에 우리는 옹왕(雍王, 장한)을 따라 초패왕(항우)에게 귀순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왕은 성품이 관인대도(寬仁大度)한데다 천하의 민심이 오직 그분에게만 쏠려 있는 형편입니다. 항왕(項王, 항우)은 그분에게서 관중왕의 자리를 억지로 빼앗고 난 뒤 한왕을 파촉으로 쫓아 보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명(天命)이란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법이라 이제 한신 장군은 한왕을 받들고 동정(東征)해 왔는데, 알고 보니 한신 장군의 용병술은 손자나 오자보다도 더욱 뛰어나 대산관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폐구성도 수공작전으로 쉽게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에 본인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미 한왕에게 귀순하여 왕작(王爵)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귀왕 혼자만이 고립된 형편인데, 끝까지 버티기는 피해만 커질 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으니 귀왕도 나와 같이 귀순하시어 여생의 운명을 나와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나의 신임하는 대장 이지를 일부러 보내 이 글을 전해드리오니 기쁜 화답을 꼭 보내 주소서.“
그 당시 동예는 한나라 군사들이 역양성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노성 30리 밖에 진을 치고 한신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동예는 진중에서 사마흔의 서한을 받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나는 한신과 단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싸워보지도 않은 나에게 항복을 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따위 글을 가지고 온 저놈을 당장 쫓아내라!”
하고 불호령을 내리며, 이지의 눈앞에서 사마흔의 서한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무장의 기개로서는 당연한 분노였을지 모를 일이나 국가의 흥망은 감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지는 죄인 취급을 당하는데 크게 반발하며, 동예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장군을 위해 진실로 개탄해 마지않는 바이오. 장군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오. 장한 장군은 한신 장군에게 패망해 버렸고, 사마흔 장군은 한나라에 귀순해 버렸으니 이제 장군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소. 그런데 2, 3만의 병력과 3, 4명의 대장만 가지고 한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어떻게 감당하시겠다는 말이오? 게다가 장군은 지략에서 한신을 당해 내지 못하고, 용맹에 있어서는 번쾌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오. 만약 한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날이면, 장군은 나라는 물론 성도 잃고, 가족도 잃게 될 것인데, 그때에는 몸을 어디에 의탁할 생각이란 말이오?”
그러자 동예는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치를 떨면서 부하들에게 벼락같은 호령을 내린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결박 지어 옥에 가두어 버려라. 내 당장 적진으로 달려가 한신과 번쾌를 한꺼번에 사로잡아다 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놈의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이지는 결박을 당하고서도 동예를 여전히 비웃었다.
“한신과 번쾌를 생포해 오기는커녕 그들의 졸병 한 명이라도 잡아 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장군의 손에 죽어 주리다. 보나 마나 싸움이 붙기만 하면, 장군은 대번에 한신의 손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오.”
동예는 더욱 화가 동하여
“내 네놈에게 나의 용맹함을 직접 보여주고 말겠다.”
하고 큰소리를 치고 나서 유림(柳林)과 왕수도(王守道) 두 장수와 함께 3만 군사를 이끌고 한나라 진영으로 달려 나갔다.
한편, 이지의 수행원들은 이지가 동예에게 곤혹을 당하고 옥(獄)에 갇히는 꼴을 보고 황망하게 돌아와 한신에게 모든 사실을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한신은 보고를 다 받고나서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무지(無智)처럼 무서운 만용이 없다더니 동예가 꼭 그런 꼴이구나. 그렇다면 내 기필코 동예를 사로잡아 보여주리라.”
마침 그때 부관이 급히 달려 들어와 한신에게 아뢴다.
“동예가 3만 군사를 이끌고 우리 진지 5리 밖까지 접근해 와서 원수와 직접 승부를 결하자고 호기를 부리고 있사옵니다.”
그때 번쾌가 달려 들어오며 말한다.
“동예가 소장을 생포해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라옵건대, 원수께서는 소장으로 하여금 그자를 생포해 오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동예를 생포하려다가 거꾸로 장군이 생포를 당하면 어떡하지요?”
“원수께서는 무슨 말씀을? 어떤 일이 있어도 소장이 그자를 생포해 오고야 말겠습니다.”
“직접 싸워서는 생포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내가 알려드리는 대로 하시오.”
그리고 한신은 번쾌에게 귀엣말로 작전 계획을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번쾌는 한신의 비밀 지령을 받고 나자, 일선으로 나가는 대신에 사마흔에게 찾아가 사마흔의 감정을 이렇게 건드려 주었다.
“동예라는 자가 장군의 서한을 읽어 보고, 많은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모욕이 어디 있겠소. 게다가 장군이 가장 총애하는 이지 장군까지 옥에 가두고 돌려보내 주지 않으니 동예를 우리가 생포해 오지 않으면 장군의 위신이 말이 아닐 것이오.”
사마흔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동예가 나를 이렇게까지 모욕할 줄은 나 역시 몰랐소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동예를 내 손으로 사로잡아 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를 생포해 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그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지요.”
그리고 번쾌는 한신에게 들은 계략을 사마흔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장군의 아드님 한 분을 볼모로 해서 우리들 백여 명이 한밤중에 동예의 진영으로 귀순해 가는 형식을 취하면 됩니다. 그러면 동예는 우리들의 귀순을 기꺼이 받아 줄 것이니, 다음날 장군께서 아드님을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공격해 오셨을 때, 우리들이 내부에서 들고 일어나 동예를 생포해 버리면 될 것입니다.”
사마흔은 그 계략을 듣고 크게 감탄하며 말한다.
“그야말로 절묘한 계책이오. 다행히 동예는 나의 맏아들 동식(董式)의 얼굴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그 애를 결박 지어 끌고 가도록 하시오.”
번쾌는 크게 기뻐하며, 그날 밤 백여 명의 정병들과 함께 동식을 볼모로 앞세워 동예의 진영으로 넘어가 동예에게 볼모를 내보이며 말했다.
“저희들은 본래가 초나라 백성이었는데, 사마흔 장군이 한나라에 항복을 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한나라에 끌려갔던 병사들이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날로 간절하여 비밀리에 한나라를 탈출할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사마흔 장군의 아들이 야간 순시를 나왔기에 그를 볼모로 잡아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장군께서는 저희들의 충정을 생각하시어 부하로 받아주시옵소서.”
동예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볼모로 잡혀 온 동식을 눈앞에 두고 호되게 꾸짖었다.
“네놈의 아비는 나와 함께 항왕을 충성스럽게 받들어 온 덕택에 왕작(王爵)의 지위까지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항왕을 배반하고 한나라로 변심해 갔으니 내 기필코 네놈의 아비를 생포하여 팽성에 계신 항왕에게 선물로 바치기로 하겠다.”
다음 날 아침 사마흔은 한나라의 상징인 붉은 기를 높이 들고 동예의 진영으로 달려와 동예를 보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천하의 대세를 그렇게도 모르는가? 항우는 진황제를 죽이고 진나라의 군사들까지 생매장으로 죽였으니 우리들의 진짜 원수는 항우가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나의 충고 서한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이지를 잡아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까지 생포해 갔으니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란 말인가? 더구나 그대는 한신 장군을 죽이고 번쾌를 생포하겠다고 장담을 했다고 하는데, 정작 싸움이 시작되면 생포될 사람은 그대가 될 것임을 알아라.”
그러자 동예가 크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번쾌라는 자가 어떤 놈인지 내가 그자를 보는 대로 단박에 사로잡아 보일 테니 번쾌라는 자나 빨리 내보내 보아라.”
동예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예의 등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번쾌가 번개처럼 달려 나와 동예를 말 위에서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이놈! 네가 찾던 한나라 대장군 번쾌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디 네 놈의 손에 내가 붙잡힐 성싶더냐? 껄껄껄...!”
동예는 번쾌의 얼굴을 보고 기절초풍을 하였다.
어젯밤 동식을 볼모로 귀순해 왔던 바로 그 사람이 한나라의 맹장 번쾌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동예의 부장 유림(劉林)과 왕수도(王守道)가 그 사실을 알자, 칼을 뽑아 들고 번쾌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번쾌와 시무가 덤벼들던 유림과 왕수도를 간단히 한칼에 베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번쾌와 사마흔이 동예를 역양성으로 끌고 오니 한신은 동예를 타일러 말한다.
“그대는 본래가 진나라의 장성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그대가 진나라의 원수인 초나라를 도와 한나라와 싸운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니 그대가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친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그대를 참형에 처할 수밖에 없겠소.”
그러자 번쾌가 앞으로 나서며 한신에게 품한다.
“일시적인 과오는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오니 원수께서는 동예에게 특별 은총을 내리시어 한왕께 귀순할 기회를 주소서. 동예는 반드시 우리에게 귀순할 것이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번쾌가 동예를 옹호하고 나서자, 동예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번쾌에게 큰절을 올리며 참회의 눈물만 흘렸다.
한신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번쾌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리하여 삼진왕의 마지막 사람이었던 동예마저 귀순함으로써 삼진은 깨끗이 평정되었다.
- 제 10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