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40회ㅡ

2021. 4. 13. 09:06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40화

☞ 태자 부소의 억울한 죽음과 몽염의 반발

태자 부소는 학문과 덕망이 높고 효성이 지극한 젊은이였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커서 아버지 시황제의 분서갱유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간언을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멀리 만리장성 축조현장으로 정배되어 왔던 것이다.

태자의 정배지는 현장 총책임자인 몽염 장군과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부소는 날마다 공사현장을 찾아 몽염 장군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것을 일과의 하나로 삼아오고 있었다.

부소와 몽염은 20여 세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위국위민(爲國爲民)의 마음은 똑같아서 두 사람은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서로 드러내 보이는)하는 사이가 되었다.

부소가 태자의 몸으로 정배지 생활을 계속한 지도 4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이날도 부소는 황제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함양을 향해 요배(遙拜)를 올리고, 우울한 심정을 달래며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몽염 장군이 찾아왔다.

“장군께서 바쁘실 텐데 어인 일로 여기까지 왕림해 주셨소?”
몽염은 부소에게 큰절을 올리고 나서 말한다.

“황제 폐하께서 칙사(勅使)를 보내셨다는 기별을 받고 달려왔사옵니다.”
부소는 놀라면서 물었다.

“아바마마께서요? 무슨 일로 소자에게 칙사를 보내신 것일까요?”
“모르기는 하오나 황제 폐하께서 태자 전하의 유배를 푸시고 함양으로 불러올리시려고 칙사를 보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태자 전하께오서 어느덧 유배생활이 4년이나 되었으니, 귀하신 몸 그동안 고초가 너무도 많으셨사옵니다.”
“죄 지은 몸으로 벌 받는 것을 어찌 고생이라고 할 수 있겠소.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몽염 장군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기쁘오.”
“말씀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옵니다. 후일 태자 전하께서 등극하시면 소장(小將)은 신명을 다하여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태자 부소는 몽염 장군의 손을 정겹게 잡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등극하는 날이 오거든 우리 두 사람은 선정을 베풀어 태평성대를 이루어가도록 하십시다. 그러나 그런 날이 과연 언제나 올 것인지 나는 믿어지지가 않는구려.”
“태자께서는 그 무슨 불길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태자께서 등극하실 날은 머지않아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옵니다.”
그때 멀리서 요령(搖鈴) 소리가 들리더니, 종자(從者)가 문 밖에서 달려 들어와 급히 아뢴다.

“태자 전하! 함양에서 황제 폐하의 칙사가 오셨사옵니다.”
태자와 몽염은 부랴부랴 예복을 갖춰 입고, 정중히 조서(詔書)를 받들 방 한 가운데에 서안(書案)을 차렸다.
이윽고 당도한 칙사는 서안 위에 조서를 올려놓으며 서슬퍼런 소리로 말했다.

“황제 폐하의 조칙(詔勅)이오. 태자와 몽염은 조칙을 봉독하고, 즉시 황명(皇命)대로 거행하시오. 지체 말고 분부대로 거행하라는 폐하의 특명이오.”

태자에게 이렇게 호령한 칙사는 실상인즉, 조고의 심복 부하인 염락(閻樂)이라는 불한당이었다.
태자 부소는 옷깃을 바로잡으며 무릎을 꿇고 조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시황 37년 7월 13일, 짐은 일찍부터 일러오기를 경세의 대본은 효를 근본으로 삼아 윤리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항상 일러 왔노라. 그러므로 자식 된 자는 마땅히 아비를 공경하고, 아비에게 복종하여야 마땅하거늘 진 황실의 장자인 너 부소는 자기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황제인 짐에게 방자스러운 국정비방(國政誹謗)의 상소문까지 올려 국가의 기강을 크게 문란하게 하였으니, 이는 조종지법(祖宗之法)으로 보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로다. 이에 짐은 호해를 태자로 책립함과 동시에 그대를 태자에서 폐위(廢位)하고, 서인(庶人)으로 격하여 사약(賜藥)을 내리노니 그대는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마땅히 자결의 길을 택하라.
그리고 몽염은 만리장성 공사를 책임을 맡은 지 이미 7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완공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변방에서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날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만 일삼고 있다 하니 그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몽염도 그대와 함께 자결하기를 명한다. 황명은 추상같은 법이니 지체 없이 실천에 옮기도록 하라.’
부소는 조서를 읽어 보고 눈물을 흘리며 옆에 앉아 있는 몽염 장군에게 말없이 조서를 넘겨주었다.
몽염은 조서를 자세히 읽어 보고, 침착한 어조로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 이 조서는 태자와 소장을 죽여 없애려고 거짓으로 꾸며 보낸 가짜 조서임이 분명하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변방을 순시 중이신데, 순행 중에 이러한 조칙을 내리셨을 리가 만무하옵니다. 소장 휘하에 있는 30만 대군으로 태자 전하를 끝까지 지켜드릴 것이오니,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몽염의 추측은 과연 정확하였다.

그 조서는 조고가 이미 서거한 시황제의 이름으로 조작해 보낸 가짜 조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부소는 워낙 고지식한 인물인지라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누가 감히 황제의 이름으로 가짜 조서를 꾸며 보낼 수 있겠소.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오.”
몽염은 부소가 고지식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말한다.

“태자 전하! 이 조서는 태자를 폐위시키고, 호해 공자를 태자로 옹립하려는 간신배들이 거짓으로 꾸며 보낸 조서임이 틀림없사옵니다. 그러니 의연히 대처하시고 사람을 함양에 보내 황제 폐하의 진의를 확인하셔야 하옵니다.”
그러나 부소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 조서에는 황제 폐하의 옥새가 분명하게 찍혀 있는데, 어찌 가짜라고 의심할 수 있겠소. 나는 아바마마의 명에 따라 자결하기로 결심하였소.”
“자결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황제 폐하 전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시고 자결하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자결하라는 황명을 받은 몸이 조서의 진위(眞僞)를 문의해 본다는 그 자체가 효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건...”
“나는 불효의 죄를 또다시 범할 수는 없는 일이오. 몽염 장군은 나의 자결을 방해하지 말아 주시오.”
부소는 이미 결심한 바 있었는지 그 자리에서 사약을 마셔버렸다.
몽염은 부소의 시신을 부등켜안고 통곡하며 한탄했다.

“아~아! 어떤 간악한 무리가 성인군자 같으신 태자 전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단 말이냐? 황제께서 천신만고로 천하를 통일하신지 불과 10여 년, 태자께서 등극하시면 태평성대를 이루게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태자께서 이미 불귀(不歸)의 객이 되셨으니 대진제국이 망할 날도 이제 멀지 않았구나.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만리장성을 쌓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냐!”
몽염은 태자의 시신을 끌어안고 한바탕 울고 나서 칙사 염락을 노려보며 말했다.

“칙사는 돌아가서 이렇게 전해주시오. 내가 이 조서가 진짜라고 판단했다면 나도 황명에 따라 서슴치 않고 자결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조서가 진짜라고 믿지 않기에 자결을 하지 않겠소. 나는 황제 폐하로부터 변방을 수호하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까닭에 금후에도 변함없이 변방 수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소.”
염락은 몽염의 명석한 판단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칙사의 위신상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장군은 황명을 끝까지 거역하겠다는 말씀이오?”
그러자 몽염은 염락을 노기(怒氣)에 찬 눈으로 노려보며 벼락같은 호통을 친다.

“내가 황명을 거역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요. 다만 기군망상(欺君罔上)하는 간신배들의 속임수에 놀아나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더 이상 잔말을 하면 그대가 비록 칙사라도 가차 없이 목을 베어버릴 것이니 당장 돌아가시오.”
가짜 칙사 염락은 그 소리를 듣자, 간이 콩알만해져서 다시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쫓기듯 돌아왔다.
칙사 염락이 변방에서 돌아와 조고에게 사실대로 고하니, 조고는 일희일비하면서 승상 이사와 상의했다.

“부소가 자결했다니 그것은 커다란 성공이옵니다. 그러나 몽염이 ‘누가 이 같은 가짜 조서를 만들어 보냈느냐?’며 호통을 치면서 자기는 절대로 자결하지 않겠노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사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해하면서 물었다.

“무어라? 몽염이 그 조서를 가짜라며 호통을 치더라고요? 그렇다면 몽염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에게 쳐들어올지도 모를 일이 아니오?”
“소인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만약 몽염이 의심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다면, 우리들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승상께서는 목숨을 보존하시기조차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조고는 사태의 위급성을 느끼자 이사를 빠져나갈 수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었다.

승상 이사는 원래 몽염, 몽의 형제와 함께 시황제의 총애를 받는 충신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평소 개인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조고와 결탁하여 태자를 죽여 버린 지금은 누구보다도 두려운 사람이 몽염 장군이었다.
그러기에 몽염까지 없애버리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몽염은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태자 부소의 심복이오. 태자가 우리 손에 죽은 줄 알면 몽염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소인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옵니다.”
“그러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몽염을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하오.”
“어떤 수단을 써야 몽염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는 한동안 심각한 생각에 잠겼다가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객(刺客)을 보내 죽일 수밖에 없을 것 같구려. 몽염이 30만 대군을 휘몰아쳐 올지 모르니 특사(特使, 자객)를 급히 보내야 하오.”
“좋으신 생각이시옵니다. 그러나 자객을 보내더라도 몽염이 만나 주지 않으면 일이 꼬일 것이 아니옵니까? 승상께서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옵니까?”
“으...”
이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몽염에게 보내는 친서(親書)를 자객이 가지고 가도록 하시오. 내 친서를 가지고 가면 몽염이 반드시 만나 줄 것이오.”
“명안이시옵니다. 그러면 친서를 곧 써 주시지요.”
그리하여 승상 이사의 친필 서한을 가지고 떠난 자객이 몽염 장군을 만난다.

자객은 승상 이사의 서신을 읽고 있는 몽염의 빈틈을 노려 품에서 비수를 꺼내 몽염의 가슴을 찔렀으나 천하의 맹장인 몽염이 일개 자객 따위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몽염은 몸을 옆으로 비틀며 자객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몽염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이 간신(奸臣) 무리의 농간임이 분명하다고 진정하는 한편, 3대 째 나라에 충성해온 집안의 내력을 내세우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호소는 조고와 승상 이사의 방해로 호해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
몽염은 하늘을 우러러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스스로 독배를 들어 목숨을 끊었다.

※ 註) 몽염과 관련하여,

몽염은 오늘날 산동성 동쪽에 위치한 제나라 몽음현(蒙陰縣)을 고향으로 둔 무장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은 희(姬), 씨가 몽(蒙), 이름이 염(恬)이다. 중국은 성(性)과 씨(氏) 두 가지를 사용하다가 후에 성으로 통일하였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인 몽오(蒙骜) 장군 때부터 진 소왕(昭王)을 섬기면서 눈부신 전공을 세운 명문가였다.
몽오(蒙骜)는 장양왕(莊襄王) 때 주변국들을 쉴 새 없이 공략하여 수십 개의 성을 탈취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의 아버지 몽무(蒙武) 역시 명장 왕전(王翦)과 함께 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몽염은 3대에 걸친 명문가의 명성과 후광에 힘입어 천하가 통일된 B.C 221년에 장군이 되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후에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북으로 쳐들어가 흉노(匈奴)를 물리쳐 하남 땅을 수복했다.

그 뒤 서쪽 농서(隴西), 임조(臨洮, 간쑤성 민현)에서 동쪽 요동(遼東, 랴오닝성 경내)에 이르는 만리장성 축성에 참여함으로써 원래 연(燕), 조(趙), 진(秦)이 각각 쌓았던 장성을 하나로 연결하는 웅장한 방어선을 완성하였다.

몽염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고향인 산동성 린이(臨沂)시 멍인(蒙陰)현이 1995년에 ‘몽염고리비(蒙恬故里碑)’와 ‘장군정(將軍亭)’을 세우면서 이곳을 몽염의 고향으로 공식화했다.

이리하여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를 이용하여 대진제국의 실권(實權)을 사실상 한 손에 장악하게 된다.

- 제 4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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