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2021. 4. 11. 08:03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38화

☞ 시황제에게 독약을 먹이는 嫦娥(상아)

“오늘부터 너는 짐의 곁을 한시라도 떠나지 말거라. 너는 짐의 최후의 애인이로다.”
시황제는 상아에게 반해 상아를 ‘최후의 애인’이라 부르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아는 최후의 애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비밀이 탄로 난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시황제는 결코 한 사람의 여인만으로 만족할 사내가 아니지 않은가? 그의 주변에는 항상 수 천, 수 만 명의 미인들이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시황제의 입에서 상아를 두고 ‘최후의 애인’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시황제 자신도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상아는 생각이 이에 이르자, 시황제를 살해할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게 되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상아는 시황제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된다.
상아는 색마(色魔)에게 몸을 더럽히기는 죽기보다도 괴로웠다. 그러나 커다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피할 수 없었다.

‘시황제를 없애기 위해 아버지까지 희생시켜 온 내가 아니던가? 나을 낭군의 원수도 갚고, 수 천, 수 만 명의 불행한 여성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나의 희생은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닐 것이다.’
상아는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을 붉히며 옷을 벗었다.

촛불 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숫처녀의 풍만한 몸매와 우윳빛 피부는 문자 그대로 성녀(聖女)와 같은 거룩한 인상을 주었다.

“오오~~~! 너야말로 월중 선녀가 분명하구나!”
시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며 능글맞은 미소를 흘렸다.

상아는 자신을 경이로운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황제의 눈동자를 얼핏 보았다.
촛불에 비친 아롱진 그의 눈동자 가운데에는 자신의 알몸이 여지없이 비쳐 보였다.

또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시황제의 얼굴은 징그럽기조차 한데 그의 입이 헤벌레 벌어지고 있었다.
순간, 상아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바로 마음을 다잡고 아예 눈을 감았다.

‘나는 어차피 희생의 제물이 되기로 각오한 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수난이라도 참고 견디자’
시황제는 알몸의 상아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상하며 감탄한다.

“네 몸은 너무도 아름답구나. 짐은 일찍이 수 천 계집을 대해 왔건만, 너처럼 아름다운 육체를 대하기는 이 밤이 처음이로다.”
라고 말하며, 상아 쪽으로 다가와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자 그때, 저편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폐하께서 이처럼 감탄하시기는 오늘 밤이 처음이시옵니다. 상아 아가씨는 이름 그대로 월세계에서 하강(下降)하신 선녀가 분명한가 보옵니다.”
하고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상아는 난데없는 사람의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으며,

“거기 있는 사람이 누구요?”
하고 겁에 질린 소리를 질렀다.

설마 황제의 침실에 외인이 잠입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시황제는 웃으며 상아를 달랜다.

“아가! 너무 놀라지 말거라. 저 구석에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환관이로다. 환관 조고는 밤이면 언제든지 짐의 침실에서 불침번(不寢番)을 서게 되어 있느니라.”
상아는 그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환관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도 놀랍거니와, 남녀가 동침하여 사랑을 나누는 밀실에 불침번을 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궁중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상아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상아는 기회를 보아 시황제에게 비방 사약을 먹여야 할 판인데, 옆에 사람이 있어 가지고서야 사약을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상아는 이불 속에서 얼굴을 살며시 내밀어 조고를 찾아보았다. 그러자 저편 어두컴컴한 구석에 조고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아는 용기를 내어 시황제를 불렀다.

“폐하!”
“왜 그러느냐?”
“이처럼 사람이 옆에 있으면 신첩은 부끄러워서 폐하를 모실 수가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환관을 밖으로 물러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조고가 시황제를 대신하여 대답하였다.

“소인이 폐하의 침실에서 불침번을 서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궁중 법도입니다. 소인은 사람이 아니옵고, 단지 환관일 뿐이오니, 마음 놓고 폐하를 모시옵소서.”
상아는 조고의 말에 또다시 등골이 오싹해 왔다.

조금 전에는 시황제가 ‘조고는 환관일 뿐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을 하더니. 이번에는 조고 자신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서 ‘마음 놓고 정을 나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고가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시가 성불구자인 것은 알고 있지만, 성불구자도 사람인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설사 그가 유령이라 치더라도 사람이 동물이 아닌 이상, 제3의 인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떻게 남녀 간의 은밀한 성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조고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볼 것인데, 어떻게 시황제에게 사약을 먹일 수가 있단 말인가?’

상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고를 침실에서 쫓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시황제는 조고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해 버린 듯

“얘야! 조고는 불침번을 서는 환관일 뿐, 사람이 아니래도 그러는구나. 그러니까 마음 놓고 오늘 밤을 즐기자꾸나.”
하고 말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와 상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상아는 황제의 손길을 매정하게 뿌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신첩은 폐하와 단둘이 되기 전에는 결단코 폐하를 모시지 못하겠사옵니다.”
그 말에 시황제는 노기(怒氣)를 띠며 말했다.

“예끼 이것아! 너는 결벽성(潔癖性)이 지나치게 강한 계집이로구나. 지금까지 수많은 계집들은 환관을 옆에 두고도 짐과 더불어 아무 말도 없이 밤을 즐겨왔거늘, 너만 그렇게 못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
“다른 궁녀들은 어떻게 해 왔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매우 외람된 말씀이오나 신첩은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하겠사옵니다.”
“뭐?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너는 짐이 누구인 줄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 소리에 상아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나 이 판국에 이르러서 비겁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폐하께오서는 만백성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한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신 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폐하의 어명(御命)이라도 여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이 지켜보는 앞에서 몸을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환관을 옆에 두고서는 죽어도 짐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여자의 덕목의 하나인줄 알고 있사옵니다. 신첩을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계집으로 취급하시려면 차라리 폐하의 손으로 죽여주시옵소서. 신첩은 폐하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것을 다시없는 영광으로 알겠사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더니 별안간 소리를 크게 내어 통쾌하게 웃는다.

“하하하, 짐은 오늘 밤에야 처음으로 계집다운 계집을 만났구나!”
시황제는 상아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감싸 안으며 감격어린 어조로 다시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임이 분명하다. 짐은 지금까지 수 천 계집과 즐겨왔으되, 너처럼 부끄러움을 제대로 알고 있는 계집은 처음 보았다. 여자의 수치심을 죽음으로써 지켜나가려는 너의 뜻은 진실로 고귀하기 짝이 없도다. 이처럼 고귀한 네 뜻을 내 어찌 무시할 수가 있겠느냐!”
그리고 이번에는 저편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조고를 향하여

“조고야! 오늘 밤은 불침번이 필요치 않으니 물러가 있거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조고는 선뜻 물러가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폐하! 소인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뭐가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냐?”
“폐하께서 주무시는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불침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옵니다. 지난 10여 년 이래로 소인이 불침번의 임무를 직접 맡아 온 것은 그것 때문이었사옵니다.”
“네 충성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밤만은 물러가 있거라.”
“폐하! 소인이 물러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거사 후에 뒷물 처리는 누가 해드릴 것이옵니까? 상아 아가씨는 실정을 잘 모르셔서 고집하시는 모양이오나, 소인이 없으면 폐하께서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실 것이옵니다.”
‘조고 이놈이... 다른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으면서... 황제에게는 이리 둘러 대는구나. 좆도 없는 놈이 밝히기는... 쯧쯧쯧...’
황제는 거기까지 듣다가 별안간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물러가라면 곱게 물러갈 일이지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조고는 그제서야 허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폐하의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아를 향하여 말한다.

“상아 아가씨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방사(房事)하신 후 반드시 보약을 드시오니, 여기 준비된 보약을 진상해 주시옵고, 뒷물은 준비된 대야의 물로 깨끗이 닦아드리기 바랍니다.”
하며 약사발과 대야를 자기 앞쪽에서 상아가 보이도록 밀어 놓는다.
마침내 조고가 나가고 침실에는 황제와 상아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네 소원대로 조고를 내보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오늘 밤을 즐기기로 하자.”
시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굶주린 매가 꿩을 덮치듯 상아의 가냘픈 허리를 굵은 팔로 감아 안았다.
상아는 다시 한 번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에

“신첩은 폐하를 흠모해온지 너무도 오래 되었사옵니다.”
하고 말하며, 난생처음으로 이성을 온 몸 가득히 받아냈다.

실로 괴롭기 짝이 없는 첫날밤이었다.
그러나 괴로움을 나타낼 수 없는 상아는 억지로 고양이 소리를 내는데, 이 또한 이중의 괴로움이었던 것이다.

“아~ 아~”
시황제는 놀랍도록 정력이 절륜한 사내였다. 그런데도 이성의 경험이 전혀 없는 상아에게 유난히 매혹되어

“이 세상에 너처럼 뛰어난 계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후~ 훅!”
하면서 상아의 온몸을 사정없이 만지고 주물러댔다.

그러자 남자라고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인 상아에게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농염한 상아의 몸에서 한없이 애액이 흘러나와 시황제와의 교합을 부드럽게, 때로는 격하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제는 상아의 입에서도 자연스레 암고양이 소리가 나오는데, 이 소리에 시황제는 더욱 기고만장하여 상아를 탐한다.

“아~~ 아~~ 앙~ 폐하~ 어~~~흑!”
“그래, 아가야~ 기분이 좋으냐? 어~헝~~”
이렇게 광란의 밤이 지나고 폭풍의 시간이 멎자, 상아는 침전 구석에 있는 보약에 품어온 사약 한 봉지를 타 넣었다.

그 약은 세 봉지만 먹으면 피가 말라 한 달 안에 죽게 된다는 비방의 사약이었다.
상아는 약사발을 시황제에게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약은 환관이 달여 놓은 보약이옵니다. 옥체를 돌보시와 지금 곧 드시옵소서.”
시황제는 밤마다 들던 보약이므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단숨에 마시고,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상아는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이래도 되는 걸까? 더구나 내가 몸을 허락한 남자는 오직 이 사내 한 사람뿐이 아닌가?’

상아는 잠든 시황제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 이상야릇한 연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상아는 흔들리는 감정을 자신의 머리를 흔들며 매섭게 부인해 버렸다.

‘아니다! 이 사나이는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약혼자를 죽게 만든 원수일 뿐만 아니라, 수 천 수 만의 여성들을 유린해 온 무서운 색마다. 죄 없는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 자를 죽여 없애야 한다.’
다음 날 아침 시황제는 평소보다 한 시간쯤 늦게 일어났고, 조고가 재빠르게 달려와 아침 인사를 올리며,

“폐하! 오늘 아침에는 기침이 매우 늦으셨사옵니다. 어젯밤 보약은 드셨사옵니까?”
“응, 먹었다.”
“오늘 아침 따라 기침이 늦어지신 것을 보면 어젯밤은 매우 피로하셨던 모양이옵니다.”
“하하하... 아니다, 피곤함은 싹 사라지고 어젯밤에는 매우 만족스러웠느니라.”
“폐하께오서 매우 즐거우셨다고 하오니 소인도 기쁘기 한량없사옵니다. 지금 평원진 별궁에는 천하절색인 궁녀들이 천 명씩이나 대기하고 있사오니, 오늘 밤에는 상아 아가씨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궁녀로 모시도록 하겠사옵니다.”
조고는 어젯밤 상아로 인하여 추방당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서 오늘 밤은 상아를 추방시켜 버릴 계획이었다.

솔직히 조고는 자신이 성불구자인 관계로 직접 성행위를 할 수는 없지만, 밤마다 시황제의 성행위 장면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시없는 기쁨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은 상아가 그것을 못 보게 했으므로 상아가 밉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황제는 여전히 상아에게 미련이 남아 있어서,

“오늘 밤은 다른 아이로 바꿔 주겠다고? 글쎄...”
하며 고개를 젓자, 조고는 황제의 애매한 대답을 듣고 적이 당황했다.

“폐하, 이 별궁에는 절색(絶色)의 궁녀들이 얼마든지 있사온데, 무엇 때문에 상아 아가씨 하나에게 그토록 애착을 가지시옵니까? 소인이 오늘 밤에는 더욱 좋은 궁녀를 선별하여 진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기를 절단하여 환관이 된 조고는 자신은 비록 여인과 관계를 할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의 성행위의 현장을 지켜보며 쾌락을 느끼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수많은 처녀들 중에서 선발된 궁녀들이었던 고로 조고가 시황제의 잠자리를 직접 보고 느끼는 쾌감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사실 황제가 누구를 좋아하든 조고는 상관이 없었다. 매일 밤마다 궁녀를 황제에게 진상하고 두 사람의 적나라한 성행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대만족이었던 것이다.

‘남의 성행위를 보고 쾌락을 느끼는 치유 불가능한 관음증(觀淫)症 환자! 불쌍한 인간 조고이다’
그러나 상아는 그러한 자신의 취미를 황제를 통하여 일언지하에 뭉개버렸기 때문에 조고는 가슴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네가 감히 나를 무시했겠다? 오냐, 두고 보자. 내가 황제의 은총을 다시는 못 받게 하리라.’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조고에게 황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네가 모르는 소리로다. 상아라는 아이는 보통 계집아이가 아니야. 오늘 밤도 그 아이를 들도록 하여라.”
그러자 조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폐하! 여인은 새로울수록 좋다고 합니다. 천 명의 궁녀들이 한결같이 폐하의 승은을 학수고대하고 있사오니 폐하께서는 은총을 골고루 베풀어 주셔야 하실 것이옵니다.”
“닥쳐라. 잔소리 그만두지 못할까? 궁녀란 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짐이 궁녀를 위해 존재한단 말이냐? 짐은 상아에게 아직 미련이 있어 당분간은 그 애만 부를 것이니 그리 알거라.”
이리하여 상아는 당분간 시황제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조고는 그럴수록 상아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어디 두고 보자! 네년은 언젠가는 내가 반드시 죽여주리라.’
조고는 시황제를 상아에게 빼앗겨 버린 것 같아서 기회만 있으면 상아를 죽여 버릴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극심한 조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아는 시황제를 연달아 모신 덕택에 그에게 사약 세 봉지를 모두 먹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나자, 시황제의 몸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정력이 그토록 왕성하던 황제가 약 세 봉지를 다 먹고 난 다음부터는 얼굴에 노란 꽃이 피면서 상아가 옆에 있어도 건드릴 기력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재빠르게 알아챈 사람은 조고였다.
조고는 크게 걱정을 하며 황제에게 품한다.

“폐하! 상아는 폐하의 기를 빨아들이는 요녀가 분명하옵니다. 그런 계집은 마땅히 죽여 없애야 하옵니다.”
“으음... 네 말을 들어 보니 그런 것도 같구나. 웬일인지 짐도 이제는 그 애가 보기 싫어졌구나.”
“그것 보시옵소서. 그러니까 상아를 없애 버리셔야 하옵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네가 알아서 하여라.”
그리하여 상아는 폭군(暴君)이자 천하의 망나니 시황제란 인간이 죽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도 구만리 같은 꽃다운 인생을 펴보지도 못하고, 조고라는 일개 내시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아! 안타깝도다. 열혈녀(熱血女) 상아의 죽음을...
자객 형가의 비수도, 창해역사의 철퇴에서도 살아남은 진시황이었건만 연약한 여인의 한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진시황의 죽음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약혼자 ‘나을’을 죽게 만든 진시황에 대한 복수, 만백성을 폭정에서 구하겠다는 포부, 궁녀라는 이름으로 생지옥에서 허덕이고 있는 수 천, 수 만의 처녀들에게 해방을 맞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빚어낸 결과였다.

- 제 3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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