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36화
2021. 4. 10. 07:34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36화
☞ 운석(隕石)에 새겨진 글, 시황사이지분(始皇死而地分)
소주(蘇州)는 예로부터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기후 또한 온화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이곳에는 다른 지방에 비교하여 훨씬 더 아름다운 여인이 많다는 점이다.
조고가 시황제를 꾀어 예정에도 없던 소주에 들르게 한 것은 이곳 미녀들을 실컷 안겨주어 시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겨울이 한창임에도 소주 지방은 기후가 따뜻하여 산과 들에는 기화요초(琪花瑤草,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가 만발해 있었다.
한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어~ 그거 참... 함양은 지금 추위가 한창인데, 이곳에는 이처럼 온갖 백화가 만발해 있으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구나!”
시황제가 행궁 정원의 꽃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자 조고가 허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황제 폐하, 이곳은 기후가 좋기로 소문나 있사옵니다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이 또 하나 있사옵니다.”
“그것보다도 뛰어난 것이라니 그게 무어란 말이냐?”
“그것은 해어화(解語花)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해어화라?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구나.”
“해어화란 예부터 이곳 소주의 미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옵니다.”
“옳거니! 소주의 미인들을 가리켜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한단 말이지? 고것 참!”
시황제는 입맛을 다시며 조고를 내려다보자, 조고는
“예부터 ‘소주의 계집을 안아보기 전에는 미인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이런 말이 있는 것만 보아도 이곳 여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 밤 기대를 좀 해야겠구나? 으흐흐흐...”
“예, 폐하!
오늘 밤 폐하를 모시게 하려고 소주의 미인들 중에서도 50명을 특별히 선발하여 지금 목욕(沐浴)을 시키고 있는 중이옵니다.”
“호오~ 오늘 밤을 위해서 50명이나? 50명까지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아니옵니다. 폐하의 정력으로는 50명도 부족하실 것이옵니다.”
“옛~끼, 이놈! 너는 짐이 물개인 줄 아느냐? 물개라면 수놈 한 마리가 백 마리의 암놈을 거느린다고 하더라만, 사람이 그렇게까지 왕성할 수는 없지 않으냐?”
“폐하는 인자가 아니고 천자이시옵니다. 자고로 천자의 정력은 끝이 없다고 들었사옵니다. 밤이 짧아 50명에게 골고루 승은(承恩)을 베푸시기 어려우시면, 내일 밤이 또 있지 않사옵니까?”
조고는 시황제의 방사(房事) 실력을 익히 알면서도 ‘초인적인 정력가’로 치켜세웠다.
시황제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초인적인 정력가’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환관 조고는 이처럼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이날 밤, 시황제가 침궁(寢殿)으로 들어가자 조고가 부리나케 쫓아오며 아뢴다.
“미인들을 지금 별실에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밤이 이슥하오니 미녀들을 입실시키는 것이 어떠하시겠사옵니까?”
시황제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름다운 여인이란 언제 보아도 반가우니라. 지금 들어오도록 하여라.”
“오늘 밤에는 폐하 전에 특별한 기쁨을 드리고자 미녀들을 모두 알몸으로 나오게 할까 하온데, 폐하께오서 윤허해 주시올지 매우 걱정스럽사옵니다.”
“뭐? 모두들 옷을 벗고 알몸으로 들어오게 한다고? 그것 참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로구나!”
“폐하께 보다 색다른 즐거움을 드리고자 소인이 착안한 것이옵니다.”
“그래, 네가 짐을 위해 이처럼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실로 고맙고 기특한 일이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본디 여인의 참다운 아름다움은 그 육체에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옷을 입혀 놓으면 정작 귀중한 육체미(肉體美)는 옷 속에 가려져 오직 얼굴만 감상하시게 되시는지라, 오늘 밤은 특별히 미녀들을 알몸으로 현신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오호! 그것도 없는 놈이 네가 알기는 아는구나. 계집이란 얼굴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그보다도 더 맛이 좋게 하는 것은 여인의 육체미에 있느니라. 얼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정작 온유지향(溫柔之鄕)이 없으면 별로니라. 온유지향의 맛이 좋으려면 결국은 피부가 곱고 부드러우면서도 전체적인 몸의 균형과 맵시가 S자 형이 되어야 할 것이야.”
조고는 연실 굽신거리며 다시 아뢴다.
“그러면 지금부터 한 명씩 호명현신(呼名現身)하게 할 터이오니, 폐하께서는 먼저 용안(龍眼)으로 감상하시옵소서.”
이윽고 50명의 미인들이 화려한 불빛을 받으며, 한 사람씩 알몸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와 시황제에게 큰절을 올리는데, 젊음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그녀들은 누구 하나 아름답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오호~ 소주의 미인들이 이처럼 천하의 절색일 줄은 미처 몰랐구나.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조고가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아뢴다.
“폐하! 천하의 미인 모두가 폐하의 소유물이오니 마음에 드시는 대로 골라 즐기시옵소서.”
“진수성찬이 이처럼 화려하니 무엇부터 먹을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멍청한 시황제는 관음증 환자인 조고가... 거시기가 없어 실제로 할 수 없음에 눈으로라도 즐기려는 계략을 알아채지 못하고... 조고를 옆에 둔 채 조고 좋은 일만 시키는 중인데... 쯧쯧~’
사실 시황제는 너무도 황홀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고, 이렇게 소주 미녀들에게 맛을 들이자, 시황제는 지방순행을 중지한 채 언제까지나 소주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였다.
약삭빠른 조고는 그런 눈치를 알아채고 시황제에게 품했다.
“폐하!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오니 지방순행을 잠시 중지하시고,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심이 어떠하오실지요?”
“으음~ 그래,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 겨울을 여기서 보내고, 봄이 오거든 지방순행을 다시 떠나기로 하자.”
이와 같은 일정 변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승상 이사였다.
제왕의 행행(行幸)은 지엄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한 번 공포된 여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음대로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사가 간언을 올리고 싶어도 조고가 중간에서 황제와의 면담을 가로막고 있으니 어찌하랴?
이사는 생각다 못해 조고를 정면으로 꾸짖었다.
“군주의 여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네. 그러하니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공표하신 대로 지방순행을 곧 떠나셔야 하네.”
그러자 조고는 비웃는 듯 한 어조로 대답한다.
“승상 합하(閤下)! 법도란 백성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 폐하께 어찌 법도라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사오리까?”
“그런 것이 아니라도 그러네. 황제께서 공포하신 여정을 중단하고 소주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계시면, 폐하를 영접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게 되겠는가?”
조고는 그 말이 비위에 거슬려 승상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말했다.
“누가 무어라 해도 황제 폐하께서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실 것이옵니다. 지금 소인이 승상께 드리는 말씀은 폐하의 황명이시오니, 그런 줄 아시고 다시는 여러 말씀을 아니 하시는 것이 신상에 이로우실 것이옵니다.”
조고의 방자스러운 언동에도 승상 이사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날 무렵, 소주에 놀라운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커다란 별똥별이 긴 꼬리를 끌며 소주에 떨어졌는데, 그 별똥별(隕石)에는 ‘시황사이지분(始皇死而地分)’이라는 여섯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글자는 ‘시황제는 죽고 진나라 영토는 여러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버린다.’는 뜻이었는데, 이것은 누가 보아도 ‘놀라운 괴변’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살아 있는 시황제가 죽는다고 쓰여 있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소문은 백성들 사이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퍼져 마침내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뭐?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그 같은 해괴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고?”
승상 이사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시황제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탈선행위와 조고의 방자(放恣)한 언동으로 미루어 보아 망국지조(亡國之兆)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고는 이 같은 소문을 듣고, 하늘이 낮다고 펄펄 날뛰며,
“어느 놈이 그와 같은 요망스러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는지, 그놈을 잡아 당장 물고를 내야 한다!”
하고, 그 사실을 그날로 시황제에게 고해 바쳤다.
시황제는 조고의 말을 듣고 대노했다.
“그런 글자가 새겨져 있는 운석이 있다면, 당장 그 운석을 가져오너라!”
관헌들이 총출동하여 문제의 운석을 찾아내 시황제에게 바쳤다.
문제의 운석은 길이가 한 자 가량 되는 말뚝 같이 길고 둥근 모양이었는데, 거기에는 ‘始皇死而地分(시황사이지분)’이라는 여섯 글자가 분명히 새겨져 있지 않은가?
시황제는 그 운석을 보고나더니 더욱 노했다.
“별이 떨어지다 타고 남은 운석이라면 빛깔부터가 새까매야 하건만, 이게 어디 타다 남은 돌이냐? 이것은 어떤 반역도배(反逆徒輩)들이 짐을 저주하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니, 그놈을 당장 색출해 내라!”
시황제의 불같은 명령 한마디에 소주 관헌들이 총동원되어 범인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을 하여도 범인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시황제는 그럴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 운석이 떨어진 곳이 어느 곳이냐?”
하고 물었다.
“여기서 5리쯤 떨어진 송백리(松柏里)라는 마을 한복판이 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돌이 아니라, 어떤 놈이 돌에 글씨를 새겨 넣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마을에 있는 선비 놈들은 모조리 잡아 죽여라.”
시황제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명령을 내리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한 가지를 덧붙여 명했다.
“가만, 그 마을 이름이 송백리라 했겠다? 송백리란 절개가 송백같이 굳다는 뜻이 아니냐?”
“마을 이름을 송백리라고 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그 마을은 사람이 얼마나 사느냐?”
“깊은 산속에 많은 집들이 흩어져 있어 자세히는 알 수가 없사오나, 대략 5~6천 명은 될 것이옵니다.”
“오냐, 그러면 앞으로 이런 불충지사(不忠之事)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송백리에 사는 백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불태워 죽여라.”
그리하여 송백리의 1만여 백성들은 ‘운석 사건’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당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잔학무도(殘虐無道)하기가 짝이 없는 인간백정 진시황의 폭정이었다.
※ 註) 로마제국의 폭군 네로(Nero)가 무색할 정도임.
운석 사건이 마무리된 뒤부터 시황제는 밤마다 몹시 사나운 꿈에 시달렸다. 어느 날 밤은 흉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나 보니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지 않은가?
시황제는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그동안 찾지 않던 승상 이사를 불러서 꿈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짐은 요즘, 밤마다 좋지 않은 꿈을 꾸는데, 왜 이다지도 밤마다 꿈자리가 사나운지 모르겠구려.”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온지요?”
“짐은 어젯밤 꿈에 동해 바다에서 해룡과 대판 싸우고 있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적룡 한 마리가 내려오더니 짐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덤벼들더란 말이오. 하여, 기겁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소.”
승상 이사는 고개를 무겁게 떨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흉몽임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마 황제에게 ‘흉몽’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둘러댔다.
“봄에 꾸는 꿈은 ‘개꿈’이라는 속담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오랫동안 지방순행으로 인해 옥체가 피로해지신 탓인 듯하옵니다. 꿈이란 것은 믿을 것이 못 되오니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지난번에는 산 위에 푸른 운기가 감돌아서 짐을 불쾌하게 하더니, 어젯밤에는 적룡이 짐을 삼키려고 했고, 푸른색과 붉은색이 짐과 무슨 원수지간인지 모르겠구려.”
시황제는 언젠가 꿈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동자와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옥새(玉璽)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던 일이 또다시 연상되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계시면 마음이 침체해지셔서 꿈자리가 뒤숭숭해지기 쉬운 법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이곳을 하루속히 떠나셔서 일단 함양(咸陽)으로 환궁(還宮)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짐도 환궁하고 싶기는 하오. 그러나 지방순행은 이미 공포해 놓은 일이니, 남은 지방도 잠시 잠시 둘러보고 환궁하기로 하겠소.”
그리하여 시황제가 소주에 머무른 지 석 달 만에 다시 지방순행의 길에 오르게 되자, 조고가 시황제 옆으로 다가와 귀엣말로 아뢴다.
“폐하! 평원진 별궁에서 천여 명의 궁녀들이 황제 폐하의 임어(臨御)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전갈이 왔사옵니다.”
- 제 3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