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35화
2021. 4. 8. 08:54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35화
☞ 항우(項羽), 드디어 등장(登場)하다.
진시황 37년 10월, 시황제는 오랜만에 지방 순행(巡幸) 길에 올랐다.
순행을 떠나는 목적은 저장성(淅江省) 후이지산(會稽山, 회계산)에 새로 세우는 자신의 송덕비(頌德碑) 제막식(除幕式)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길을 나서는 김에 멀리 호북성(湖北省) 운몽과 호남성(湖南省) 구의도 돌아보고, 귀로에는 평원진 별궁에 들러 며칠 동안 휴양을 할 계획이었다.
황제의 행차는 요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이번 순행 길에는 승상 이사와 황제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도 배행(陪行)하게 되어 행차가 한층 더 거창하였다.
환관 조고는 태자 부소의 상소문으로 사이가 멀어지자, 태자를 제거하고 호해를 후계자로 내세울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 일부러 이번 순행 길에 호해를 동행하게 만든 것이었다.
조고는 순행 길에 앞서 호해를 비밀리에 찾아가 귀띔을 해주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태자를 몹시 미워하시어 북방 만리장성 축조현장으로 정배를 보내셨습니다. 태자를 그곳에 보내신 것은 호해 공자님에게 대위를 물려주시려는 생각이 분명하오니 공자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 이번 순행 길에 정성을 다 하시옵소서. 소인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대위를 공자께서 물려받으시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시황제의 행차는 수행원과 호위병까지 무려 5만여 명이나 되는 대규모였다.
시황제가 운몽, 구의, 단양 등지를 돌아보고 후이지산[중국 저장성 사오싱현(紹興縣)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에 도착한 것은 그해 11월의 일이었다.
시황제의 송덕비가 세워진 곳은 회계산 정상으로 멀리 동해가 굽어보이는 산상봉이었다.
그 비석에는 아래와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 자세히 소개하기가 낯 뜨거울 정도로 아부성 글과 저속한 표현으로 써진 비문이다.
‘황제의 성업은 진실로 위대하시도다. 천하를 일거에 평정하시사 육국을 통일하시매, 육국 백성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황제의 치적을 찬양하노니, 이 어찌 태평성대가 아니랴.
그뿐 만인가, 백성들의 부부 관계도 종래에는 매우 어지러웠으나, 통일천하 이후에는 백성들도 황제 폐하의 덕행을 본받아 부부가 화합하여 음란지사(淫亂之事)가 일체 없게 되었으니, 이 모두가 황제 폐하의 은덕임이 분명하도다... 이하 생략.’
천하에 둘도 없는 아첨 글이 비석에 새겨졌지만 시황제는 그런 아부성 비문이 마냥 무한히 기쁘고 즐겁기만 하였다.
황제 일행이 거창한 송덕비 제막식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려는데, 저만치 맞은편 산봉우리 위에 푸른 빛깔을 띈 구름이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그 구름을 보자 별안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승상 이사를 불러 물었다.
“짐이 수년 전 이곳에 왔을 때도 산상에 이상한 운기가 감도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도 저 산 위에 푸른색 구름이 떠돌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이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구름이란 본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오니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구름이 변화하는 것은 짐도 알고 있지만 저기 보이는 저 구름은 빛깔이 푸르게 보이니 저것은 예사 구름이 아닌 것 같구려. 혹시 짐을 해하려는 괴한(怪漢)이 군중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군중들을 철저하게 수색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시황제가 이런 걱정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시황제가 언젠가 꿈을 꾸었을 때 청색과 적색 옷을 입은 두 명의 동자가 나타나 옥새(玉璽)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는 꿈을 꾼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시황제는 푸른색과 붉은색만 보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런데 이날 또한 산 위에 푸른 구름이 떠돌고 있어 매우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를 알 턱이 없는 승상 이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런 일도 없는데 백성들을 함부로 수색하면 오히려 소란만 일으키게 될 것이오니 그것만은 아니 하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황제는 그 말에 수긍이 가자, 백성들에 대한 수색을 단념하고 하산하니 그곳에는 미리 지방관이 동원한 황제를 환영하는 수만 명의 백성들이 운집해 있었다.
황제는 온량거를 천천히 가게 하면서 군중들의 환호에 손을 높이 들어 답했다.
이때 군중들 가운데 황제를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며,
“여기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저놈이 저렇게 거드름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거야?”
하고 거침없는 말을 해대는 청년 하나가 있었다.
그는 항우(項羽)라는 이름을 가진 20세를 갓 넘긴 듯 한 약관의 젊은이였는데, 키는 여덟 자가 넘어 보이고, 몸집은 천하장사와도 같이 거대한데 얼굴에는 시꺼먼 수염이 뒤덮여 있어서 마치 괴수(怪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가문은 진에 의해 망했으나 초나라의 명장 항연 장군의 일가라 진시황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는 청년이었다.
항우는 시황제를 환영 나온 백성들이 그의 위풍에 눌려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고 비위가 뒤틀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항우는 시황제를 노려보며 다시 한 번 거친 소리를 쏟아냈다.
“저 자식을 없애버리고 저놈 자리를 내가 빼앗아 버릴까?”
항우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자, 별안간 항우의 입을 손바닥으로 잽싸게 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놈아! 우리 가문이 멸문지화 당하는 꼴을 보려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씨부려대고 있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항우의 삼촌인 항량(項梁)이었다.
항량은 초나라의 명장이었던 대장군 항연의 막내아들로 일찍이 진나라의 침략으로 아버지와 둘째 형(항우의 아버지)을 잃게 된 원수도 갚을 겸 초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어려서 부모를 잃은 조카 항우를 자신의 집에 데려다가 글도 가르쳐주고, 검술도 가르치면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글과 검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글이란 자기 이름이나 쓸 줄 알면 그만이고, 검술은 한 사람만 상대하는 기술에 불과하니, 그런 것보다 만인을 상대하는 병법이나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고집을 부리는 고로 항량은 그때부터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날은 둘이 함께 진시황의 행차를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항우가 큰일 날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고 있는 것을 보고, 항량은 조카의 입을 막으며 호되게 꾸짖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오히려 삼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투덜거렸다.
“제깟 놈이 뭔데, 삼촌은 진시황이란 자를 이렇게나 무서워하시오?”
그러면서 솥뚜껑같이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 주먹 하나면 진시황 따위는 한 번에 때려죽일 자신이 있소.”
항량은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한 번 호통을 쳤다.
“이놈아! 어리석은 소리 작작해라. 진시황 한 놈만 때려죽인다고 진나라가 네 것이 될 줄 아느냐? 진나라를 거꾸러뜨리고 초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군대를 양성하며 병법을 연구해서 힘으로 정벌해야 하는 것이야. 오늘 소문을 들으니 진승과 오광 등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모으고 있다고 하더라. 이것은 진나라가 머지않아 망하게 될 징조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군사를 시급히 키워나가야 한다. 누가 뭐래도 진나라를 멸망시킬 사람은 초나라 사람인 우리들뿐이다. 그러니 이런데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병법이나 착실히 공부하도록 하여라. 내 말 알아듣겠느냐?”
“알았어요, 숙부. 진나라를 언젠가는 내 손으로 거꾸러뜨릴 테니 두고 보십시오.”
항우는 자신만만하게 투덜거리며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시황제가 가는 곳마다 환영 나온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따라서 일정이 예정보다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다. 지금 시황제가 순행 중인 땅은 옛날에는 초나라의 땅이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정복자 시황제를 진심으로 환영할리 없었지만 지방관들이 강제로 동원하는 바람에 수만 명이 끌려 나왔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진시황으로서는 백성들이 자기가 가는 곳마다 수만 명씩 몰려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환영 나온 인파를 바라보며 안내하는 지방관에게,
“웬 환영 인파가 저렇게도 많이들 나왔는고?”
하고 물어보면 지방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옛날에는 초나라의 학정(虐政)이 워낙 가혹했기 때문에 폐하의 적자(赤子)가 된 후로는 모두들 성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앞 다투어 폐하를 환영하러 나온 것이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멀쩡한 거짓말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성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앞 다투어 환영 나왔다’는 말에 마음이 더욱 흡족하였다. 게다가 비서실장 조고조차 시황제를 더욱 기쁘게 해 주려고,
“황제 폐하! 소주(蘇州)와 항주(杭州) 지방에서도 백성들 수십만 명이 운집하여 폐하의 임어(臨御)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예정에는 들어 있지 아니하오나 그곳에도 잠시나마 들러 주심이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시황제는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더욱 좋았다.
“짐을 그처럼 환영한다니 매우 기특한 일이로구나. 그러나 예정에도 없는 곳에 들르다가 평원진 별궁에는 언제쯤 들르게 되겠느냐?”
“예정이 다소 지연되시더라도 폐하의 성은을 만백성들에게 골고루 베풀어 주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이처럼 조고는 순행지역을 자꾸 확대해 가며 환영 인파를 점점 더 동원시켜 나갔다.
조고가 이렇게 순행 지역을 확대해 나가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순행 지역의 지방관들을 자기의 심복 부하로 만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상 이사는 순행 지역이 자꾸 확대되는 조고의 계획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황제 폐하의 여정을 이렇듯 마음대로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하고 나무라자, 조고는 대뜸
“모든 것은 폐하의 황명이시옵니다. 황명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불평을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옵니다.”
하고 나오는 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개 환관에 불과한 조고가 승상의 말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으니 진나라의 명운이 끝나가는 말세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 제 3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