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33화
2021. 4. 6. 07:33ㆍ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33화
☞ 장량(張良), 창해역사(蒼海力士)와 함께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그 무렵 옛 한(漢)나라 땅에는 장량(張良)이라는 지사가 있었는데, 그는 전국시대인 서른세 살 때 ‘한’나라의 재상까지 지냈다.
※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핀란드에 33세의 최연소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데, 장량은 무려 2,000여 년 전에 벌써 재상을 지냈음.
장량(張良)은 진시황에게 나라가 멸망(滅亡) 당하게 되자, 그 길로 초야(草野)에 묻혀 살며 때를 기다리는 불세출의 재사였다.
※ 註)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싸워 이겨 한(漢)나라를 건국하는데 있어서 한신(韓信, 유방의 부하), 소하(蕭何)와 함께 결정적인 공을 세운 ‘유비의 제갈량(諸葛亮)’ 같은 책사임.
어느 날 장량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동자가 급히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선생님! 초나라의 ‘진승’이라는 사람이 진시황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 초나라 수복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누구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었느냐?”
“조금 전에 만리장성 노역부로 끌려갔다가 도망쳐 온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알았다. 물러가 있거라.”
장량은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속으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숲속을 혼자 거닐며 혼자 중얼거렸다.
“梧葉一落盡知秋(오엽일락진지추), 오동잎 하나 떨어짐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가 있다더니, 천하의 진시황도 이제 그 운이 다할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이제 서서히 움직여야 하겠구나.”
장량이 산중을 한 바퀴 돌고 산 아래로 내려오니 마침 노인들이 주막(酒幕)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개탄한다.
“5백 년 전만 하더라도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이 잘 살았다는데, 전국시대 이후로는 세상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니,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태평성대(太平聖代)란 어떤 시대를 말함인가?”
다른 노인이 물어 오자 그 노인은,
“해 뜨면 농사짓고 우물 파서 물마시며 배불리 먹으면서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던 그런 시대가 바로 태평성대가 아니겠는가? 옛날 태평성대에는 도둑도 없었고, 백성들이 싸움터에 끌려가는 일도 없었으니 얼마나 좋았던 시절이냐는 말일세.”
“그러면 지금의 진시황 시대와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
“생각해 보시게! 진시황이라는 자는 백성들을 법대로만 다스리고자 하는데, 그 법이란 것도 제 마음대로 만든데다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어 자나 깨나 백성들을 들볶는 데만 쓰이고 있으니 이 무슨 개 같은 세상인가?”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장량이 옆에서 듣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장량을 염탐꾼으로 알고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장량은 노인들의 어색해진 분위기를 달래듯 노인들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노인장께서는 진시황의 학정(虐政)을 성토하다 말고 왜 중도에 그치십니까? 저를 염탐꾼으로 아시고 겁이 나신 모양이구려.”
“아, 아닙니다. 늙은 것이 취중에 쓸데없는 말을 잠깐 씨부려 보았을 뿐이오.”
“하하하, 겁을 몹시 내시는 것을 보니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시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제가 진시황의 학정을 한 번 말해 볼까요?”
“예? 선생이 진시황의 학정을?”
“노인장 대신 제가 진시황의 죄상(罪狀)을 말할 터이니, 노인장께서는 맞는지 들어보아 주십시오.”
하면서 장량은 좌중에 이런 말을 해주었다.
“진시황은 잔학무도하기가 이를 데 없어 남정네들은 들에 나가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짓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여자들은 길쌈을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부자강리(父子强離), 부부강별(夫婦强別)이 다반사(茶飯事)라, 젊은이들은 모조리 징발하여 만리장성이나 아방궁 쌓는데 노역부로 혹사 시키더니, 이제는 분서갱유(焚書坑儒)까지 자행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역천지죄(逆天之罪)를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으리오? 그러니 이제 우리들은 마땅히 들고 일어나 천하의 폭군을 우리의 손으로 진멸해야 할 것입니다.”
장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모두들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더니 부리나케 일어나 제각기 뿔뿔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장량은 그 광경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아~아! 진시황의 폭정이 얼마나 가혹하면 늙은이들조차 저렇듯이 겁을 내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장량의 말을 잠자코 들으며 홀로 술잔을 비우던 키가 9척이나 되어 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장량 앞으로 다가오더니 장량의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말한다.
“지금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 시황제는 살려두어서는 안 될 폭군 같구려. 그렇다면 왜 그런 자를 없애버릴 생각은 아니하고 방치하는 게요? 만약 선생에게 그런 뜻이 계시다면 내가 앞장서서 선생을 도와주겠소.”
장량은 그 말을 듣자, 그 사람을 다시 보고 크게 기뻐했다.
오래 전부터 찾던 장사(壯士)를 이제야 만났기 때문이었다.
장량은 그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수인사(修人事)를 나눈다.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귀공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오?”
장사가 대답한다.
“저의 본명을 아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저는 어려서부터 바닷가에서 살아왔는데, 남들과 달리 기골이 장대(氣骨壯大)한 탓으로 사람들이 ‘창해공(蒼海公)’이라고 불러오고 있지요. 보아하니 선생께서도 예사 어른 같지는 않은데, 함자는 어떻게 되십니까?”
“나의 이름은 장량(張良)이고, 자는 자방(子房)이라 하오. 한(漢)나라가 망하기 전에 한나라의 재상으로 있었소. 일찍이 진시황을 죽이고 나라를 되찾을 생각으로 사람을 찾고 있던 차에 오늘 귀공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구려.”
“좋소이다. 선생의 뜻이 그러시다면 내가 진시황을 없애보도록 하겠소.”
“고맙소이다. 귀공이 진황제를 없애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육국(六國)의 원수를 한꺼번에 갚는 것이 되니, 귀공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오.”
“나는 이름을 알리려고 사람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진황제라는 자가 백성들을 몹시 괴롭힌다기에 없애버리려는 것뿐이오.”
“그런데 본명을 알려주시지 않는 까닭이 있는지요?”
장량은 ‘창해공’이 본명 대신 별명만을 말하는 것이 궁금하여 묻자, 자 자신을 ‘창해공’이라 소개했던 力士(역사)는
“만에 하나, 진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하는 날이면, 그는 나에게 엄청난 고문을 가해서라도 모의에 가담한 사람은 물론 삼족을 멸하려 들 것이오. 그러니 서로 더 이상 깊게는 알려고 하지 맙시다.”
‘창해공’이라는 역사(力士)는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이었으나 그 심지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형형한 눈빛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믿음직스런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우연이라기에는 참으로 기막힌 타이밍에 언약이 성립되자, 장량은 진시황의 동태를 알아보았다. 아마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때마침 진시황은 지방을 순행하는 중이었는데, 다행히도 며칠 후에는 옛 한나라 땅인 양무현(陽武縣)을 지난다는 소식이었다.
며칠 후 장량이 창해역사(蒼海力士)와 함께 양무현으로 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진시황의 행렬이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황색 비단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온량거(轀輬車)를 중심으로 여러 대의 비슷비슷한 수레가 앞뒤에 따르고 있었고, 전후좌우에는 수천 명의 기마 병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창해공이 시황제의 행렬을 바라보며 묻는다.
“진시황이라는 자는 황색 비단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저 수레 속에 타고 있겠지요?”
“아마 그럴 것이오. 전후좌우에 호위병의 경계가 삼엄한데, 저런 경계를 뚫고 들어가 시황제를 능히 살해하실 수 있겠소?”
“염려마오. 철퇴(鐵槌)를 휘두르며 번개같이 달려 들어가 일격에 작살을 내버리면, 호위병들이 손 쓸 사이가 어디 있겠소이까?”
창해공은 장담하였다.
“그러면 꼭 성공하고 돌아오시길 바라오.”
“잠깐 다녀올 테니 선생은 이곳에 몸을 숨기고 구경이나 하고 계시오. 그러나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 하여도 선생은 섣불리 뛰어들지 마시고 몸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후일을 도모하여 억조창생을 구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창해공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열 자가 넘는 철퇴를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산을 내려가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이것을 숨어서 지켜보는 장량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러 성공을 빌 뿐이었다.
곧이어 창해공은 진시황 순행 대열 속으로 질풍(疾風) 같이 뚫고 들어가 호위병들을 비롯하여 온량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철퇴로 때려죽였다.
목적은 진시황을 없애는 데 있었지만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온량거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를 때려죽인 것이었다.
온량거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엄숙하던 행렬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자객이다! 자객을 잡아라!”
온량거 앞뒤의 호위병들이 순식간에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창해공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러자 창해공은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좋다. 나를 잡아가라. 천하의 폭군을 내 손으로 잡아 죽였으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창해공은 진시황을 죽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오였다.
진시황은 워낙 의심이 많은 자라 지방 순행을 다닐 때에는 자객들의 기습이 두려워 온량거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태우고 자신은 뒤따르는 수레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택에 진시황은 화(禍)를 면할 수 있었다.
진시황은 밧줄에 묶인 창해공을 꿇어 앉혀 놓고 불호령을 내렸다.
“여봐라! 이놈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짐을 죽이려고 했는지 실토할 때까지 사정없이 고문하여 배후를 당장 밝혀내라!”
시황제 앞에서 창해공의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무지막지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창해공은 의연한 자세로 시황제를 당당하게 꾸짖는다.
“이 금수(禽獸)보다 못한 놈아! 나는 무도한 너를 하늘의 뜻으로 벌(罰)하려 했을 뿐이다. 천하의 의장부(義丈夫)인 내가 어찌 남의 사주를 받아 네놈을 죽이려 했겠느냐?”
창해공은 고문으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끝내 장량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시황제는 창해공을 죽인 뒤에도 배후의 인물을 색출해내고자 대사 조고를 불러,
“‘조정의 시책을 비방하는 자들을 고변하는 자에게는 상금 일만 냥씩을 하사한다.’고 전국에 방을 써 붙여라!”
고 명령하였다.
이리하여 진나라 전국에는 돈에 눈이 먼 고자질꾼들로 인하여 이웃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또 그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의 수가 부지기수에 이르렀다.
이렇게 밀고 된 불평객들의 명단에는 장량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언젠가 주막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진시황의 학정을 비난한 것을 그 노인들이 돈에 눈이 멀어 고변(告辯)한 것이 분명하였다.
장량은 화를 면하기 위해 부득이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장량은 막역한 친구인 초나라의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의 장남 항백(項佰, 머지않아 등장할 항우의 백부)이 있는 옛 초나라로 피신하였다. 항백을 만난 장량이 피신해 온 사정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항백은
“걱정 말고 내 집에 얼마든지 머물게. 내가 자네를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는가?”
그리하여 장량은 항백의 신세를 지게 된 어느 날 ‘이교’라는 다리를 건너가는데, 8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 한 사람이 다리 위에 앉아 있다가 장량을 보더니,
“여보게 젊은이! 내가 개천에 신발 한 짝을 떨어뜨렸는데, 자네가 저것을 좀 주워다 주겠는가?”
하고 개천에 떨어진 신발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행색은 초라하고 바짝 말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두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나는 노인이었다. 장량은 개천으로 내려가, 노인의 신발을 공손히 집어다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신발을 신다가 다시 개천에 떨어뜨리고 장량에게 또다시 주워달라는 것이 아닌가? 장량은 두 번째도 신발을 공손히 집어다 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또다시 신발을 떨어뜨리고 다시 신발을 주워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장량이 또다시 신발을 공손히 주워다 바치니 노인이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는 가히 내가 가르칠 만한 인재로다. 내가 그대에게 귀중한 책을 한 권 주고 싶으니 그대는 지금부터 닷새 후 이른 새벽에 저기 보이는 저 숲속 바위 앞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게나. 그런데 나보다 늦게 와서는 안 되네.”
그로부터 닷새 째 이른 아침에 장량이 숲속 바위 앞으로 달려와 보니 그 노인이 먼저 와 있다가 장량을 보고 꾸짖는다.
“젊은 사람이 늙은이를 기다리게 하다니... 자네를 무엇에 쓰겠나? 닷새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세.”
장량이 두 번째는 꼭두새벽에 나갔지만 그때도 노인이 먼저 와 있다가 다시 닷새 후를 기약하고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장량은 세 번째는 아예 전날 초저녁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동이 틀 무렵 예의 그 노인이 가죽 관에 황금 도포를 입고 바람처럼 나타나는데, 그야말로 신선처럼 거룩한 모습이었다.
신비스러운 생각이 든 장량이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하면서 말했다.
“선생께서는 소생에게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자 노인은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황석공(黃石公)’이라고 하네.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네. 그대는 학문을 닦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 볼 뜻이 있는가?”
장량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하늘의 뜻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소생이 비록 불민하오나 어찌 하늘의 뜻을 받들 생각이 없으오리까? 선생께서는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황석공은 호쾌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대가 이처럼 올바른 뜻을 품고 있다니 내 어찌 그대의 부탁을 거절하랴.”
장량이 또다시 절을 하며 부탁한다.
“지금 진황제는 극악무도하여 백성이 살아가기 어렵고 천하가 어지러우니 어떻게 하든지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할 텐데, 소생은 의욕은 있으나 계략(計略)과 지모(智謨)가 너무도 부족하옵니다.”
황석공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말한다.
“내가 관상을 보니 자네는 열심히 공부하면 장래에 제왕의 스승이 될 상일세. 그러한 자네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나로서는 다시없는 기쁨일세.”
그러면서 죽간서(竹簡書) 세 권을 내주면서 말했다.
“이 책은 태공망(太公望, 강태공)의 ‘삼략(三略)’이라는 귀중한 책일세. 이 책 속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하는 온갖 방법이 모두 들어 있으니, 오늘부터 이 책을 열심히 공부하여 대성토록 하게. 세상 사람들은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자병법(吳子兵法)’을 소중히 여기지만, 이 책은 그런 것과는 또 다른 천하를 경륜하는 훌륭한 신서(神書)라네. 자네가 이 책으로 10년 동안만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때에는 참다운 군주를 만나 그 명성(名聲)을 만고에 떨치게 될 걸세.”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제가 만약 성공하여 후일에 선생님을 찾아 뵈오려면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황석공 노인은 그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한다.
“허허허, 자네가 세상만 바로 잡아주면 그만이지, 나 같은 늙은이를 무엇 때문에 다시 찾으려고 하는가?”
“스승님을 찾아뵙는 것이 제자의 도리가 아니옵니까? 선생께서는 부디 거처하시는 곳을 알려주시옵소서.”
“나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행운유수(行雲流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과 같음) 거주(去住)가 무심한데, 나에게 무슨 일정한 거처가 있겠는가?”
“그러시다면 10년 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는 장소라도 말씀을 해 주시옵소서.”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야. 자네가 후일 나를 굳이 만나보고 싶다면, 이 말 한 마디만 해줌세. 지금부터 13년 후에 천곡성(天谷城)이라는 곳을 찾아가면 성문 동쪽에 ‘황색 바위’가 하나 있을 걸세. 그 바위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아시게.”
황석공 노인은 그 말 한 마디만 들려주고는 바람처럼 표표히 사라져 버렸다.
※ 註) 글에 등장하는 ‘황석공’은 본명이 아니며, ‘황색 바위’가 자신이라고 한 말에서 ‘黃石公(황석공)’이라 높여 부른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후일 장량은 천곡성 성문 동쪽에서 ‘황색 바위’를 발견하고, 스승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 시간을 갖게 된다.
- 제 34화에 계속 -